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이른바 "끝장토론" 형식까지 빌며 규제 혁파 및 합리화를 강조했고 정부에도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라고 다그치고 있다. 투자와 고용창출을 막는 각종 규제를 개선 또는 철폐해 경기활성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이야말로 '경제혁신과 재도약'에 있어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유일한 핵심 열쇠이자, 각계각층의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나라에만 있는 규제와 낡은 규제 등은 하루 빨리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의 내용에 대해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나는 정부의 규제 개혁 움직임과 관련해 지나치게 공급자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불편하다. 한국은 인구나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소비 시장이 더 확대될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소비를 하는 데 장애가 되면서 합리성이 떨어지는 규제가 있다면 이를 혁파해 소비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가 늘면 관련 산업 활동과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도 소비자 불편을 언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인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공급자 차원이든 소비자 차원이든 결과적으로 기업활동과 소비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만 한다면 규제 개혁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나는 한국 사회에서 "소비자"라는 대상이 홀대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경제 주체를 가계ㆍ기업ㆍ정부로 나눈다. 가계는 곧 소비자를 말한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소비자"라는 단어와 이들이 지칭하는 집단에 대한 취급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소비자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을 정부가 우선시하거나 크게 고려할 때 일부에서는 "위화감"이나 "국민정서", 혹은 "우회적으로 기업 편들기"라는 비난까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단행된 이른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책만 보더라도 이것이 소비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단적으로 이들 규제책은 소비자가 특정 상권에서 소비활동을 하는 것을 "불편하게" 혹은 "일정 기간 불가능하게" 만들자는 것이 뼈대다.
▶ '소비'라는 단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그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골목상권으로 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현상은 그렇지 않다. A 할인점 영업을 제한하자 A 할인점과 같은 그룹이 운영하는 백화점으로 소비자들이 몰려가거나, 차라리 제한이 없는 날까지 아예 구매를 미루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를 위하는 것이 왜 그토록 환영받지 못할 일이 됐을까? 혹시 소비라는 단어를 "여유계층"의 전유물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학교 교육과정에서 이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소비자다. 그런데 소비자를 위하는 정책을 펼 때 "국민"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곤 한다.
소비자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주 귀에 들리는 "국민정서"와 "위화감"이라는 단어의 적절성 여부와 남용 여부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 빈부 격차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고충은 항상 해소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부자들의 소비활동까지 죄악시한다고 해서 빈부격차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빈부격차는 빈부격차고 소비는 소비다. 모든 국민은 소비자다. 소비자를 위하는 어떤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면 그것은 소비자를 위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를 "제대로" 위하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소비는 미덕이라고 하면 지나칠 지 모르나 소비는 경제의 아주 중요한 기둥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소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