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한국은 가족 및 혈연 위주의 사고방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나이를 묻고 본적지를 물으면 대충 관계 설정이 끝난다. "결국 내가 네 삼촌 벌이다"라고 한다든지, "너는 아비 어미도 없냐?"라고 하는 말 등이 바로 단일민족국가이면서 가족 위주의 사고방식이 깊이 자리잡은 한국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문제도 생겨난다. 사회의 동질성 유지를 위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우리는 5천여 년간 하나의 민족이었으며 신라의 3국통일 이후 60여 년전 분단까지 하나의 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생각 때문에 "동질성" 유지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한과 북한 주민들 사이는 차치하고 남한 내에서만 보더라도 사회의 동질성은 이미 하나의 민족이라는 허울만 남았을 뿐 많은 측면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지나가는 여자 아이를 내 딸이나 다름 없다고 여기고 성인 남성이 안아주기도 하고 예쁘다며 쓰다듬어주는 것이 그저 같은 민족 구성원으로서 훈훈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랬다가는 성추행 혐의를 받을 수도 있고 다른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과거에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인을 보면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다고 여기고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시 됐다. 그러나 요즘에는 특정 자리를 지정하거나 양보를 규칙으로 만들어 가까스로 지켜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윤리의식의 약화라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바로 맹목적 단일민족 의식에 대한 갈등이 일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사회적 약자인 임신부 등 특별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요즘 건장한 장년 및 노년 인구가 많아지면서 60-70대 노인 가운데에는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강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가족 관념을 떠나서 보면 이들이 좌석을 우선 차지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이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느라 녹초가 된 젊은이는 요금을 지불한 만큼 이미 차지한 좌석을 유지할 권리가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장유유서" 같은 가치는 이미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받고 있다. 웬만한 민간 기업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가 많다. 게다가 많은 사회적 가치가 이제는 더 이상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거나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로 강제될 수 없다. 더구나 많은 부문에서 이제는 한 가지 가치만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이제 민족이나 가족관계와 같은 것에서 가치판단의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이의 가치를 결정짓는 근거가 돼야 할까? 그것은 바로 시민의식이다. 나이나 혈연을 떠나 이제는 누구나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이며,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자신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 그 어떤 행위보다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 따라서 법을 위반한 사람은 그가 효심이 깊은지 가난한지의 여부를 떠나 동료 시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면에서 처벌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각종 복지 혜택을 불법으로 수령한 사람은 "얄미운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각종 편법으로 적정한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세무당국 등 정부의 적이 아니라 성실한 납세자에게 즉각적인 피해를 입한 사람이므로 모든 시민에 대한 범죄자인 것이다. 생활 형편상 세부담이 과도하다면 이는 제도를 고쳐서 해결해야 한다. 그 때까지는 미안하지만 소위 "생계형"이니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사례로 든 내용은 편의상, 그리고 내 경험상 알고 있는 분야에만 국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외에도 한국 사회는 이제 "동질성" 유지를 그저 단일민족이나 강력한 가족제도 전통에 의지해 달성하기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법을 이제는 가르쳐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각종 복지 혜택을 불법으로 수령한 사람은 "얄미운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각종 편법으로 적정한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세무당국 등 정부의 적이 아니라 성실한 납세자에게 즉각적인 피해를 입한 사람이므로 모든 시민에 대한 범죄자인 것이다. 생활 형편상 세부담이 과도하다면 이는 제도를 고쳐서 해결해야 한다. 그 때까지는 미안하지만 소위 "생계형"이니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사례로 든 내용은 편의상, 그리고 내 경험상 알고 있는 분야에만 국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외에도 한국 사회는 이제 "동질성" 유지를 그저 단일민족이나 강력한 가족제도 전통에 의지해 달성하기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법을 이제는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