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적 차원의 혁명적 변화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다수 일반인들의 경우 상황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업무상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짬이 나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도록 작게 만들어진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펼쳐 읽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저런 사색을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짜투리 시간은 물론이고 누구와 대화 도중에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직장인들도 과거에는 업무를 마치고 난 뒤에 도착하는 이메일은 다음 출근할 때까지 열어볼 생각도 안했고 보낸 사람도 그러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직장인들은 퇴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하철이나 개인적인 모임 도중에도 끊임없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새로 온 이메일에 답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음 날 일이 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이메일 점검하는 데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청소년들이다. 정보를 습득하는 것 못지 않게 습득한 정보를 검증하거나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주제에 대해 사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시기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제 짜투리 시간은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습득한 정보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혹시 잘못된 점은 없는지 의심하는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어떤 경로든 습득한 정보는 곧바로 사실로 믿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보의 습득 경로도 과거에는 나름대로 부모나 선배 세대로부터의 반복적인 검증을 거쳤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져나갈 위험이 적었다. 하지만 요즘은 청소년들로서는 정보를 습득할 경로가 많고 또 그런 정보를 그대로 사실로 믿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매체가 널리 검증된 언론사인지 검증되지 않은 어떤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인지에 관계 없이 청소년들은 마구잡이로 정보를 받아들일 위험에 처해 있다.
진위가 의심스럽거나 명백히 편향된 정보라 할지라도 제목이나 구성 면에서 자극적인 경우 더욱 청소년들에게는 큰 호소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더 많은 청소년에게 선택받고 다시 그럴 수록 더욱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악순환의 위험도 높다. 어떤 허위 정보의 경우 조금만 의심해 보고 검증해 보면 의외로 손쉽게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양과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머리 속까지 파고드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청소년들은 조금도 습득한 정보에 대해 사색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스마트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굳이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첫 직업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인터넷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고 할 수는 있겠다. 당시 나는 1980년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범시킨 케텔(KETEL)을 구축하는 일 가운데 일부를 담당했다. 훗날 이 서비스는 하이텔(HiTEL)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이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당시 우리는 인터넷이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돋보기와도 같은 안경을 쓰고 활자를 핀셋으로 한 자 한 자 뽑아가며 신문을 만들던 것이 PC에서 기사 입력부터 활자화까지 모두 처리되는 것을 보며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활자를 핀셋으로 뽑아 판을 만드는 분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 정도의 문제를 예상했을 뿐 오늘날과 같은 더 심각한 문제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은 아니다. 어느 정치인처럼 "미안하다, 후배들아~"하고 외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내가,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있다. 내 자녀, 내 후배들에게 사색의 전통을 넘겨 주고 사색의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것과 기기를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일이 바로 우리가 스마트한 아버지, 스마트한 선배가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배터리 방전 경고음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기에 이런 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 자녀 마음 속에서 작게, 그러나 애타게 울리고 있는 도움의 요청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 = =
※ 아래 사진 설명
PC통신은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에 PC를 이용하여 널리 통용하던 통신 방식이다. PC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통신망을 구축하여 통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PC통신 서비스 회사가 통신망을 설치하고 이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전자게시판(BBS) 등 각종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1984년 5월 데이콤의 '천리안'에서 전자사서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PC통신이 도입되었다. 이후 1986년 11월 '하이텔'이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에서 한국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을 개통한 뒤 1987년 4월 '한경 KETEL'로 변경하였고, 나우누리·포스서브·인포서브 ·유니텔 등이 등장하였으며, 개인이나 동호회 또는 단체가 개설한 사설 BBS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를 정점으로 2000년대 이후 초고속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하여 쇠퇴하였다. 대표주자였던 하이텔과 천리안은 2007년 서비스를 중단하였고, 나우누리도 명맥만 유지하다 2013년 1월 서비스를 공식 종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