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1

(기고문) 보통선거제도에서 부유층이 정책 주도권을 유지하는 비결

Dani Rodrik is Professor of Social Science at 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Princeton, New Jersey. He is the author of One Economics, Many Recipes: Globalization, Institutions, and Economic Growth and, most recently, The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민주주의가 발달해 철저하게 1인1표제 선거제도가 자리잡고 있는 나라에서도 정책 수립에 있어 부유층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글을 게재했다. 이 글에서 로드릭 교수는 미국의 마틴 길렌즈ㆍ벤저민 페이지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미국을 포함해 선거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라고 해도 이러한 현상은 확인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얼핏 보기에는 연구 결과 소득분포상 중위권에 있는 평범한 유권자가 선호하는 사항은 정부 정책에 반영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 즉 이러한 평범한 유권자의 투표 결과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길렌즈ㆍ페이지 교수는 이러한 분석 결과는 다소 성급한 결론일 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즉, 굵직한 주제에 국한해 볼 때 평범한 유권자의 생각과 부유층의 생각 사이에는 어차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욱 정확하게 부유층의 영향력을 살펴보려면 평범한 유권자와 부유층 사이의 견해가 엇갈리는 사례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 두 교수는 따라서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의 견해와 평범한 유권자의 견해가 다를 때 실제 정부 정책은 어느 쪽에 가깝게 내려지는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부유층의 견해가 압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주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평범한 다수의 유권자가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 당선되는 것이며, 더구나 재임중 부유층 견해를  주로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 다시 선거에서 당선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의 일환으로 우선 대부분의 평범한 유권자들은 정치 제도의 정확한 작동 구조나 부유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항상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쪽으로 결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정부 정책이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려 결정되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대부분 부유층의 견해가 우연히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유리한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유권자들은 정부 당국이 부유층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이 대중들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지 못하면서도 선거에서 당선되는 이유와 구조를 살펴보자. 대중의 이익보다는 부유층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선거에서 대중에 호소하기 위한 모종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 전략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들면 국수주의, 파벌주의, 소속감 등 문화 및 상징적 가치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의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는 대신 이러한 추상적인 가치에 기대 대중에게 호소한다. 그런데 선거 결과 이렇게 추상적이지만 호소력 높은 가치에 의존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후보들이 당선에 성공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 것이다. 즉 종교적 감정이 노동자 및 피착취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매일 겪는 물질적 박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선거 역사를 보더라도 '가족의 가치'라든가 이민 등 극단적인 감정 대립이 벌어지는 주제에 유권자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바람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중산층 및 저소득층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오랜 동안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정체성에 호소하는 정치는 모종의 특권이 보장되는 '내 편'이 되려면 다른 누군가(즉 외국인, 소수 가치 옹호자, 소수민족 등)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식을 조성함으로써 좋지 않은 폐해를 낳고 있다.  러시아, 터키, 헝가리 등의 나라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돋보이는데, 이들 지역의 경우 정치인들은 보통 국적, 문화 및 종교적 상징에 크게 의존한다. 즉 대중들의 삶의 질 개선보다는 종교ㆍ문화ㆍ인종 등의 차원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결국 다수의 표를 획득하는 것이다.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로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진행중인 부의 불평등 확대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첫째는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발언권 박탈이 촉진되고 있으며, 둘째, 부유층의 파벌주의적 정치 독점은 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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