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견임)
평소 종말론 같은 논조의 책은 멀리해 왔지만 어떤 책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만큼 왜 인기를 누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양한 논리를 접해 보려고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두 책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은 한국 경제를 이야기할 때 여지 없이 "주택 가격 거품이 붕괴"하는 것을 대전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택 가격이 거품 상태라면 언젠가는 거품이 해소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이 붕괴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거슬렸다.
사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한국 주택 가격 거품론을 왜 그토록 기정사실화하는지 책에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거품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문제지만, 일반인의 상식과 국제적 기준에 비춰 과도한 가격 상승을 거품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한국 주택 가격 거품론을 얘기할 때 미국 주택 가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큰 폭의 조정을 받았지만 한국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타당한 논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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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실질주택가격지수 추이다. 이렇게 2005년부터 비교해 보면 미국의 주택가격은 2007년 부터 급격히 하락해 2011년 중반까지 조정을 거친 후 최근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실질주택가격은 2006-2007년 사이 급등한 뒤 금융위기 이후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놀랄 정도로 견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후반부터 소폭 반등세도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만 보면 분명 한국 주택가격이 언젠가는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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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의 그림은 비교 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착각을 가져온다는 점을 잘 일깨워 주는 사례다. 이 그림은 같은 자료의 한국 실질주택가격지수 시점을 1986년으로 바꾼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면 한국 실질주택가격은 1991년까지 놀랄 만한 속도로 증가한 이후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 등으로 인해 2001년까지 무려 10년간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격은 거의 붕괴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2001년까지 횡보하다가 2004년까지 상승, 그리고 2006-2007년 소폭 상승했다. 우리가 이른바 "부동산 광풍"이니 어쩌니 하고 호들갑 떨었던 시기의 가격 상승도 이처럼 시기를 확대해 놓고 보면 다소 표현이 지나쳤거나 아주 제한된 지역의 제한된 사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그림과 앞의 그림을 함께 비교해 보면 한국 주택가격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조정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은 이미 대조정을 거친 뒤 횡보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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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 설명이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이 그림을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즉 미국 주택가격은 1990년대 말부터 2006년까지 무려 16년간 쉬지 않고 2배 가까이나 올랐다가 자국발 위기, 그것도 주택시장에서 촉발된 위기로 하락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주택가격이 단기간에 큰 폭 조정을 받았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벌써 큰 폭 조정을 받은 뒤였으며 장기간 비교해 보면 2001년 이후 가격 상승도 사실상 무시할 만한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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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한국의 경우 주택가격 움직임이 가구당 실질가처분소득 추이와 궤를 같이 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위기였기에 한국에서는 가구당 실질가처분소득 조정세가 크지 않았으며 2012년 후반까지는 이전 수준을 회복한 뒤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가구당 실질가처분소득만 놓고 보면 한국 주택가격은 오히려 최근에 비정상적일만큼 하락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
나는 한국 주택가격이 싸다거나 비싸다거나 하는 논란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 둘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한국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거나 오를 수 없을 것이라거나 하는 논란에도 끼고 싶지 않다. 변수가 너무 많고 또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국 양쪽이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주택가격이 "거품" 수준이며 그에 따라 "언젠가는" 거품은 붕괴할 수 밖에 없다는 비논리적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