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와 케인스의 삶을 비교 조명한 책은 경제학사, 인물사, 개론서 어느 쪽으로도 손색이 없다. 두 거장의 삶을 연대순으로 서술하면서 해당 기간 경제학 트렌드를 알려주며, 논쟁을 통해 오스트리아학파와 케인스주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한다. 경제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자. 두 거장들의 인간적 매력에 흠뻑 취할 것이다.
하이에크가 속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부개입을 죄악으로 본다. 정부는 경기가 어떤 상황인지 잘못 판단 할 수 있으며, 정부 지출 확대와 통화량 증대 따위의 인위적인 개입은 궁극적으로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재정 정책으로 실업이 약간 감소하더라도 물가 상승이 경제에 더 해롭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 해야한다. 1차대전 종전 후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물가 상승에 극도로 예민했다.
반면 케인스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고용과 지출을 확대하여 실업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약간의 물가 상승은 큰 문제가 없으며, 실업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먼저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케인스의 생각은 차후 '일반 이론'으로 구체화되어 거시경제학의 토대가 된다. 둘은 경기침체가 발생한 원인을 두고 충돌했다. 케인스는 총수요 부족을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보았으나 하이에크는 과도한 신용팽창으로 인한 과잉투자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책도 다른 법이다. 케인스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부족한 총수요를 보충해야 한다고 했지만, 하이에크는 과잉이 자연스럽게 조정 되도록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은 케인스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케인스를 만나 자문을 얻고, 케인스식 부양 정책을 실시한 것 이다. 미국은 '뉴딜' 정책을 통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에 힘 입어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반면 하이에크의 '순수자본이론'은 정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명백한 케인스의 승리였다.
케인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모두 옳았다. 전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에도 우리의 삶이 비참하지 않은 것은 프리드먼식 통화정책, 케인스식 재정 정책이 모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고달픔에도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체주의를 걱정했던 하이에크의 사상이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모두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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