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6

(보고서) 아베노믹스 정책의 원조는 80년 전 이미 실패한 적이 있다

(※ 금융연구원은 『일본의 디플레 극복 노력: 1930년대와 최근 경험의 비교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20년간의 디플레이션을 종식하겠다고 야심차게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아베노믹스 정책의 핵심이 사실은 1930년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성 장관이 시행했던 정책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다카하시 장관의 정책은 결국 성공적인 마무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정책 실패 때문에 마무리짓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순조로운 출구전략은 시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베노믹스의 출구전략에 대한 의구심을 지적하는 견해가 새삼 눈길을 끈다.)

※ 일본의 디플레 극복 노력: 1930년대와 최근 경험의 비교 및 시사점 ※
요약: 최근 디플레 극복을 위한 양적완화정책의 강도를 둘러싸고 일본은행(BOJ) 내부적으로 이견이 노정되고 있는데, 지난 1930년대 초반 쇼와공황 당시 대장성 장관을 지낸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시행했던 통화정책의 성과와 부작용이 재조명되고 있음. 다카하시정책의 유산은 디플레 극복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 후에는 자산시장 거품 및 붕괴를 방지할 수 있는 출구전략의 수립과 시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음.
■ 최근 아베 정부의 필사적인 디플레 탈출 정책은 1930년대 초반 당시 대장성 장관이었던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가 통화증발을 통해 재정정책을 과감하게 지원함으로써 쇼와공황(昭和恐慌)을 극복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이후 거품 발생과 붕괴를 막는 데에는 실패했던 경험을 재조명하게 만들고 있음.
•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중앙은행의 역할 수행과 관련하여 가장 의견이 분분한 인물 중 하나로, 과거 디플레 탈출에 대한 공적을 크게 인정받으면서도 과도한 인플레이션 발생을 차단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음.
* 당시에는 대장성 장관이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었음.
■ 80여년이 경과한 현재 일본은행(BOJ)은 재차 디플레(소비 감소→물가 하락→기업 이윤 및 임금 감소의 악순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막대한 정부부채 누적으로 인해 양적완화정책을 어느 정도까지 실시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이견이 노정되고 있음.
• 일본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핵심적인 정책목표를 넘어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춘 재정정책 지원을 위해 얼마만큼 공격적으로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됨.
• 아베 정부가 정부지출 축소와 소비세 인상 등을 통해 재정건전화를 추진하되 동 정책이 경기회복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양적완화정책이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음.
• 그러나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정책의 확대는 과거 쇼와공황 극복 직후와 같이 초인플레(hyperinflation)를 동반하거나 약 8조 달러에 달하는 일본 국채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
■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정부부채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미국 다음가는 정부부채 수준을 보이고 있음.
• 20년에 걸친 디플레와 저성장, 재정적자 누적으로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0% 이상으로 높아져 세계 최고 수준임.
• 이에 따라 금년 6월 아베 총리는 2020년까지 균형재정 달성을 위한 재정건전화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채 신용등급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본은행의 재정정책 지원을 위한 역할 확대가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음.
■ 이와 관련하여 쇼와공황 당시 다카하시 대장성 장관이 시행했던 통화정책과 그 영향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음.
• 1929년 세계공황 여파에 따른 쇼와공황 당시 대장성 장관에 임명된 다카하시는 전임자들이 금본위제도 유지에 초점을 맞추어 금융긴축·재정긴축·엔고 정책을 시행했던 것과 달리 금본위제도를 포기하고 금융완화·엔저·재정완화로 정책기조를 전환하였음.
• 다카하시 장관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실시한 유통시장에서의 국채매입과 달리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재정정책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음.
* 중앙은행의 발행시장을 통한 국채매입은 ‘정부 부채의 화폐화(Debt Monetization)’라고 불리는데, 이는 통화정책 담당기관인 중앙은행을 정부의 재정 부족분을 보충하는 일에 동원하는 것이고, 나아가 본원통화의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재정 부담이 민간 주체에게 이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일본을 제외하고는 금기시되어 왔음.
• 다카하시 장관의 과감한 통화정책에 힘입어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앞서 디플레와 경기침체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후 군비 축소 위주의 재정긴축을 추진했던 다카하시 장관이 군부에 의해 암살되고 재정긴축 정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일본은 두 자리 수의 초인플레를 경험하고 거품붕괴와 더불어 장기불황에 빠지게 됨.
■ 다카하시 장관 사망 이후 최근까지 당시 거품붕괴 발생을 차단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져왔음.
• 지난 1982년 발간된 일본은행 금융백서에는 다카하시 장관의 새로운 통화정책 시도를 중앙은행 100년 역사상 최대의 정책실수였다고 명기하고 있음.
• 그러나 2000년대 초에 일본은행에 보다 적극적인 디플레 대응을 주문했었던 벤 버냉키(Ben Bernanke) 전 미 연준 의장은 2003년 도쿄 연설에서 “다카하시 장관은 훌륭한 솜씨로 일본경제를 공황국면에서 탈출시켰다”고 극찬한 바 있음.
• 반면 지난 2011년 당시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과거 다카하시 장관이 시행한 중앙은행의 정부국채 직접매입을 통한 재정정책 지원을 ‘쓰라린 경험(bitter experience)’에 비유한 바 있음.
• 이에 비해 아베 총리는 지난 2012년 총선 승리 직후 취임연설에서 디플레 탈출을 위한 새로운 통화정책에 대한 영감(靈感)을 다카하시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바 있음.
• 지난 2013년 아베 총리에 의해 임명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 역시 다카하시 장관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일본경제를 쇼와공황에서 건져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림.
■ 그동안 일본은행은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정책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국채매입을 실시하였는데, 아직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제로 내지 마이너스 수준을 보이면서 아베노믹스(Abenomics)가 다카하시정책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모습임.
• 이와 같이 아베노믹스와 다카하시정책 간의 차이를 초래한 원인으로는 디플레 극복과 재정건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은 정책이 지적됨.
■ 향후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 양적완화정책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은데, 과거 다카하시정책 유산은 정책 목표 달성 시 나타날 수 있는 거품경제 발생 및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출구전략의 선제적 수립과 시행에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남김.
• 다카하시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실물경기 부양을 위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이었으나, 장기적으로 재정팽창주의의 극복을 어렵게 만들고 재정개혁 의지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으로 평가됨.
※ 아베노믹스의 미래에 관한 우려를 지적하는 이전 글은 아래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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