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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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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김영삼정부의 책임은?
- 이번에도 깁니다....
김영삼 대통령 서거 이후,
"IMF 사태의 책임은 김영삼에게 있다, 아니다"로 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시적 사건의 원인을 미시적인 곳에서 찾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만 듭니다.
1. 단기외채의 의미를 몰랐던 관료와 대통령
2. 금융감독권한 뺏기기 싫어서 파업했던 한국은행
3. 기아자동차 회장의 대국민사기
4. 오보를 냈던
등등 미시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자면 수백가지나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고,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오늘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1997년 그 당시 어떤 사람 OO가 이랬으면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게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게다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IMF사태'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위기의 원인과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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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무엇인가?
- 종금사와 기업의 '단기외채' 차입
- 태국발 금융위기 발생 → 충격의 여파가 한국으로 확산
- 통화가치 하락에 이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부담의 증가
▶ 금융자유화에 이은 기업과 종금사의 단기외채 차입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이해하려면 1990년대 초반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당시 한국은 '금융자유화'(Financial Liberalization) 정책의 일환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하였고,
국내 기업들과 종금사들은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빌렸습니다(자본유입, capital inflow).
이들이 빌린 자금은 '만기가 짧은(단기)',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외채) 였습니다.
기업들은 외국계은행에서 빌린 자금으로 투자를 증가시켰고,
종금사들은 외국에서 낮은 금리로 빌린 자금을 국내에서 높은 금리로 대출하여서 차익을 챙겼죠.
▶ 1997년 7월, 태국 금융위기 발생
그러던 와중에 1997년 7월, 태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사건이 일어났죠.
태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을 목격한 투자자들은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위기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확산되어 나갔고, 한국에게마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 갑작스런 상환요구가 불러온 유동성위기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의 '상환능력'을 의심하게된 외국계 은행들은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고 서둘러 자금회수에 나서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상환요구'(sudden stop)를 겪게된 일부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는 '유동성문제'를 겪게 되었고, 결국 파산하고 맙니다.
그러자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어 나갔습니다.
이제 외국계 은행은 '재무상태가 비교적 건실한' 기업들의 상환능력도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서둘러 자금회수에 나서게 됩니다. 결국 다른 기업들 또한 유동성위기를 겪게 되었죠.
▶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이 초래한 원화가치 하락, 외채부담을 증가시키다
한국경제 전체적으로는 외국계 은행의 상환요구로 인해 '급작스러운 자본유출'(disruptive capital outflow)이 발생하였고,
원화가치는 크게 하락(환율상승) 하고 맙니다.
원화가치 하락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킵니다.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들이 빌렸던 자금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였습니다.
따라서, 원화가치 하락은 대차대조표상 부채부담을 증가시켰던 것이죠.
쉽게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일때 1달러를 빌렸다면 기업이 지고 있는 부채크기는 1,000원 입니다.
그런데 환율이 1달러당 2,000원으로 상승(원화가치 하락) 한다면 부채크기는 2,000원이 되어버리죠.
1997년 6월 당시 환율은 1달러당 1,000원 미만이었으나, 1997년 12월 환율은 1달러당 2,000원 수준으로 2배 가까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했었습니다.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상환 & 원화가치 하락 막기가 초래한 외환보유고 고갈
국내 기업들과 종금사들은 달러화로 그들의 부채를 상환하였죠.
그리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해서 달러화를 팔아야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제 외국계은행에서 빌린 외채를 갚을 수도 없었고, 원화가치 하락을 막을 수도 없었죠.
달러화가 필요한 한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쳥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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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특징은?
- '동아시아'의 위기
- 만기 불일치, 통화 불일치
- 급작스런 자본유출에 이은 유동성위기
앞서 스토리로 살펴본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 'IMF 사태'가 아니라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겪었던 경제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외환위기' 입니다.
IMF는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한국정부에 달러화를 빌려준 기관이었을 뿐입니다.
(물론,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긴축정책을 두고 논란이 많지만, 이는 논외로 합시다.)
1997년 당시 한국이 겪었던 위기를 'IMF 사태'로 부른다면,
위기의 특징과 원인을 제대로 모르게 됩니다.
(특징과 원인은 바로 밑에서 다룹니다.)
또한, 당시 위기가 마치 '한국만의 사건'이었던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 만기 불일치와 통화 불일치
당시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들은 '단기'(short-term) 자금을 외국계은행으로부터 빌린 다음에,
'장기투자'에 나서거나 '장기'(long-term)로 다른 곳에 다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즉, 한국 기업과 종금사는 '단기부채'와 '장기자산'을 가지고 있던 셈이죠.
외국계은행이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고 '단기부채' 상환을 요구했을때, 유동성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라 합니다.
또한, 당시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들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쉽게 말해 '외채'를 빌렸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통화인 원화를 빌렸다면, 가지고있던 원화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통해 부채를 대신 상환해 줄 수도 있었죠.
그러나 '외채' 였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은 소용이 없었고 한국 기업과 종금사 또한 돈을 쉽게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원화가치 하락이 일어났을때 외채부담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통화 불일치'(currency mismatch)라 합니다.
▶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입
자, 만기 불일치든 통화 불일치든, 외국계은행이 '갑작스럽게 상환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한국 기업들과 종금사들이 유동성위기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외국계은행들이 그냥 '만기연장'(roll-over)을 해주었더라면, 평온한 상태가 지속됐을 겁니다.
그러나 외국계은행들은 부채상환을 요구하고 외화자금이 빠져나가자, 유동성문제와 원화가치 하락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즉, 1997년 당시 한국이 겪었던 위기는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입'(disruptive capital flows)이 불러온 유동성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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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일까?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을까요?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 금융감독 기능의 부재
1997년 당시 한국은 '금융감독'(financial supervision) 기능이 부재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금융감독원'이 금융시장을 감시하지만,
당시에는 은행감독, 보험감독, 증권감독 등 금융감독 기능이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금융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감독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었죠.
이런 이유로 인해, 기업들과 종금사들이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빌리는지도 몰랐습니다.
외국계은행에서 빌린 돈을 국내 다른 기업들에게 얼마만큼 재대출 해주는지도 몰랐죠.
그리고 당시에는 재무제표 공개 등 기본적인 '공시기능'도 없었습니다. 기업들의 회계조작 등이 성횡하였죠.
▶ 정부의 지급보증 관행
1960년대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래로 한국경제는 '정부의 지급보증'(government guarantee)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빌린 뒤 파산하여도 결국에는 정부가 막아준다는 생각을 하였고,
돈을 빌려주는 외국계은행 또한 "이렇게 많이 빌려줘도 한국정부가 갚아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였죠.
▶ 금융시장 자유화와 자본유출입이 가져오는 페해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 한국정부와 관료, 그리고 세계 경제학자들은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1997년 이전 IMF는 개발도상국 등에게 '금융시장 개방'을 주문하였습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어서 선진국 자본이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다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 자본을 바탕으로 투자를 증가시켜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였죠.
그러나 이렇게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들어온 자본이 '갑작스럽게 유출'(disruptive outflows) 되었을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세계 경제학자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와 관료들 또한 이를 모르고 있었고, '단기외채'(short-term external debt)를 집계하는 통계조차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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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교훈
1997 외환위기가 발생한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이 1997년생이죠.
한국정부와 세계 경제학자들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요?
▶ 3세대 금융위기 이론의 발전
1997년 당시 세계 경제학자들이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가져오는 폐해'를 몰랐던 이유는
그러한 방식의 금융위기를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간 자본이동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입'(disruptive capital flows)와 '단기 대외부채'(short-term external debt)가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 생각치 못했었죠.
이전의 금융위기는 크게 2가지 형태였습니다.
1세대 금융위기 모형은
해당국 정부의 방만한 거시경제 운용으로 인한 '거시경제 기초여건의 문제'(fundamental)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1970-80년대 중남미 국가들의 저성장, 재정적자와 하이퍼 인플레이션 등의 사례이죠.
2세대 금융위기 모형은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한 투기적공격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1990년대 초반 영국 파운드화 폭락 사태 등이 이를 보여주죠.
1세대, 2세대 모형을 생각한다면,
1997년 당시 한국경제 상황은 낙관적이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긴 했으나,
경제성장률, 재정적자 규모, 인플레이션율 등 거시경제 기초여건은 안정적이었죠.
그리고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긴 했으나, 투지적공격은 없었습니다.
생각치도 못했던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입'(disruptive capital flow)과 '단기 대외부채'(short-term external debt)가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지나고 나서야,
경제학자들은 3세대 금융위기 모형을 내놓았고,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자본이동의 규제와 금융감독 기능의 강화
1997년 이전,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주창했던 IMF는 오늘날에 "특정상황에서는 자본통제(capital control)도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감독하기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을 각국에 강조하고 있죠.
1997년에 위기를 겪었던 한국은 두번 다시 똑같은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대비를 철저히 해놓고 있습니다.
'단기 대외부채'를 철저히 감독하고 있으며,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자본이동을 어느정도 규제하고 있죠.
세계 경제학계내에서 거시건전성 정책 모범사례로 매번 한국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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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김영삼정부의 책임인가?
자, 맨 처음했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김영삼 대통령 서거 이후,
"IMF 사태의 책임은 김영삼에게 있다, 아니다"로 말들이 많습니다.
"(IMF 사태가 아니라)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정말 김영삼정부의 책임일까요?"
김영삼정부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기 대외부채 현황에 대한 통계자료 조차 없었으며, 태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때도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바라봤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거시적 사건의 원인을 특정 타겟에게 돌려서 비난하는 것이 과연 유의미한 행위일까?" 입니다.
금융감독 기능 부재는 이전부터 문제였으며,
정부의 지급보증 관행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깨 했던 것입니다.
기업의 과잉차입, 과잉투자, 회계부정 또한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문제였죠.
그리고 당시 세계 경제학계 또한 '급작스러운 자본유출입'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 집권했던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저 화풀이, 분풀이로 끝나고 말겁니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차근차근 문제원인을 분석한 다음에,
"아 그 당시 이 점이 문제였구나.", "그 당시 정부가 이 점을 고려하지 못했었어." 등을 깨닫고,
오늘날에는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말이죠.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자면, "김영삼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문제를 현재에 고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차분하게 논의를 해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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