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를 사놓고 다른 책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서평을 발견해 공유)
Posted on 2015년 12월 8일 by potatosay
행동하는 용기 – Ben Bernanke
읽은 지 거의 두어달 만에 정리하는 글을 쓴다. 책이 두껍기도 하거니와,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고심고심하면서 수많은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묵혀서 정리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일단 ‘행동하는 용기’란 제목은 FRB 의장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과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FRB 의장이야 말로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자리인데 말이다. 막강한 정보수집력, 노련하고 똑똑한 수 천명의 직원, 100년 동안 쌓아온 명성, 마지막으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발권력이 있는데 이 무슨 마음 약한 소리란 말인가. 어찌보면 학자출신인 그의 성향이 드러나는 제목 같기도 하다. 금융위기가 한참 진행 중이었을 때, 겁이 났다는 것 같기도 하고 한가한 느낌도 든다. 다르게 보자면, 그만큼 파국의 가능성이 컸고 전통적인 정책으로 위기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된다. 듣도보도 못한 정책을 들고 나올 때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위기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금융위기였고, 파급의 범위도 달랐고, 정책환경도 크게 달랐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이 관할하는 금융기관은 은행이다. 월터 배젖(Walter Bagehot ; 정운찬교수는 배그홋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배젖이 현대영국 발음인 듯 하다.)이 19세기에 주장했던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에 높은 금리로 자유롭게 담보를 받고 대출해주는 최종대부자 역할은 사실상 은행에 한정되어 있었다.
부분 지불준비금제도(fractional reserve)와 만기전환기능(단기로 돈을 조달해서 장기로 대출하는 기능) 때문에 건전성이 높은 멀쩡한 은행(solvent)이라도 금융위기가 닥치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담보를 받고 해당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피해갈 수 있도록 한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기관이 예금보험공사이다.(개념은 조금 다르지만 설립목적은 금융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암묵적이기는 하지만 유동성 지원대상은 국내법으로 설립된 은행이다. 외국계 은행은 가능하더라도 외국계은행의 본점은 최종대부의 대상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대출이 은행보다는 증권시장을 통해서 더 많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이 대처하기 어려웠다. MBS 시장이야 나타난지 오래되었지만 MBS는 Copula기법을 통해서 잘개 나눠지고 합쳐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CDO, CDO2 등) 여기에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이라는 대량살상무기까지 나타났다. 이처럼 전체 금융시장에서 증권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복잡성이 커지면서 대공황 등 여러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형성된 중앙은행을 중심으로한 금융제도가 대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TAL, TARP 등 생소한 정책수단이 나타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채권시장이 마비되며서 신용카드, 자동차금융 등 증권화를 통해서 실물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던 채널이 마비되어 버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정책수단이 새롭게 고안된 것이다.
규제의 관할문제도 빠질 수 없다. 지난 번에 썼던 글(경상수지가 흑자인데 왜 원화는 떨어지나)을 재활용해 보자. ” 2007~8년으로 돌아가 보자.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프랑스계 BNP파리바의 헤지펀드 청산이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했는데 정작 문제는 유럽에서 터졌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금융위기가 발생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2008년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의 달러가치는 오히려 크게 올랐다….. BNP파리바에서 벌어진 일을 그냥 금융세계화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는 좀 찜찜하다. 왜냐하면 이후 독일, 네덜란드 은행들이 줄줄이 엄청난 손실을 보고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이다. 까보니 유럽계 은행의 미국채권보유 금액이 엄청났다. 그것도 미국금융시장(wholesale)에서 단기로 조달해서 미국소비자들에게 장기(서브프라임)로 빌려준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보유채권에서 손실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달러조달난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경상수지 혹은 자본수지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유럽쪽에서 달러수요가 급격하게 늘어 이러한 현상이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으로므 미국 연준은 ECB와 무제한 스왑라인을 개설하게 되었다고 버냉키의장은 설명한 바 있다.” 금융의 세계화로 국경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문제가 유럽은행으로 번졌고, 유럽은행의 문제가 다시 미국금융시장으로 번졌다. 국내은행 중심으로 짜여진 금융제도 및 수단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규제 관할의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복잡한 금융규제가 그것이다. 최근까지 저축은행(S&L)은 OTS에서, 보험의 경우 소재지 주정부에서, 투자은행은 SEC에서, 금융지주회사 등은 연준(FRB)에서, 국법은행은 OCC(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심지어 선물위원회는 농업부에서 각각 관할하였다. 물론 금융정보가 공유되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규제차익(각 규제기관마다 규제의 수준이 서로 달라서 이를 이용하기 위해 법적인 지위를 바꾸는 행위)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형성된 이같은 누더기같은 규제체계는 금융위기를 가중시켰다. 특히 예금보험공사와 재무부 및 FRB의 대립은 가이트너의 책(스트레스 테스트)에서도 여러 차례 다루는데, 금융시스템의 안정보다는 예금보험 기금의 안정성을 우려한 쉴라 베어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몽니로 구제금융정책이 여러 차례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AIG에 대한 구제금융이었다. 막대한 규모의 CDS를 팔아제낀 AIG의 자회사 때문에 AIG를 구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보험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연준의 권한 밖이었고 보통주를 매입(국유화)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AIG가 무너지면 다른 회사들도 무너질 판국이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금융의 진화 혹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구태의연한 규제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주범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니 적대적이었다. Occupy 운동과 Tea Party는 구제금융을 반대했다. 심지어 집권당인 공화당은 무책임하게 모든 구제조치를 반대했다. 협의는 민주당과 햐야하는 우스운 상황이 이어졌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70년 이후 미국의 불평등은 계속 높아지고 있었고, 성장의 과실 중 대부분이 상위 1%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금융계는 탐욕의 중심지였다. 그러니 정치권은 구제금융에 미온적이거나 반대입장을 나타냈고, TARP 법안을 부결시키거나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두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또한 FRB에 대한 의회의 구속력을 높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이런 상황이니 법률에서 규정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비교할 때 전반적인 톤(tone)은 차분한 편이고, 정책에 대한 설명과 근거도 자세하다. 가이트너가 행정관료인 반면, 버냉키는 경제학 교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량은 많은 편이지만 그 당시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읽는데 어려움은 없을 듯 하다.
p.s Ben Bernanke의 ‘행동하는 용기’를 이해하는 네 개의 키워드
1. Walter Bagehot : Economist 편집자로 Lombard Street의 저자.
2. 대공황 :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
3. 금융가속기(financial accelerator) 이론 : 금융이 실물부문의 변동을 확대시킨다는 이론
4. Tea Party와 Occupy Wall Street : 미국 우파와 좌파의 populism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