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전하는 일상의 기적)
저자: 신순규
출판사: 판미동
출판일: 2015.10.27
페이지: 228
ISBN: 9791158880194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기적이나 신에 대한 믿음과 감사 등과 같은 단어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충분히 공감했는지 의문스럽지만, 책 전체에 흐르는 저자의 엄청난 에너지와 비범한 삶의 태도에 감탄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저자처럼 성공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부분을 따로 떼어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 전에 출판사 측의 책소개 글을 보자:
저자 신순규는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아홉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을 배웠다.[본다는 것] 피아노에서 공부로, 맹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의사에서 애널리스트로, 현실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꿈을 포기하기보다는 유연하게 꿈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길렀다.[꿈]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지 못할까 봐 늘 걱정하며 살았고, 또 실제로 이성과의 만남에서 좌절도 겪었지만, 그럴 때마다 “결혼은 오래도록 서로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나의 결정임을 역시 기억하고 사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가슴에 되새겼다.[가족] 또 직장에서도 맡은 업무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려 애쓰면서도, 그 일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일종의 수단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일]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들로부터 무수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 여기며, 다시 그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나눔]
저자가 이 책에서 차례로 제시하는 다섯 가지 가치는 그대로 그의 인생의 이력이 된다. 그가 겪은 좌절의 목록이며, 동시에 너무나 절실히 원했던 기적과도 다름없는 일들이다. 그밖에도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겪은 9/11테러 당시의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p.133)와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시험 제도를 바꿔 나가야 했던 이야기(p.84)도 빼놓을 수는 없는 에피소드다. 이 책은 ‘역경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성공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성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비춰 주는 거울이 되어 줄 것이며, 또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 진정성 있는 인물만이 전해 줄 수 있는 인생의 깊은 지혜와 울림을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신순규는 기적을 이룩해 낸 사람이다. 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모든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는 이야기 그 자체는 물론 감동적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쳤다면 나는 따로 소감문을 쓸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나는 저자가 남에게 말할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삶의 원칙 그 자체가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고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을 잃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길을 잃을 위험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게 된다.
평범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은 짜여진 대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방향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는지 생각할 기회를 갖기 힘들다. 그렇게 20여 년 살다 보면 성인이 돼서도 한 번 길을 잃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못찾아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비법을 소개한다.
"길을 잃어도, 케인을 잃어버려도 괜찮다. 현재 내 위치만 알고 있으면 아무리 혼잡한 가운데서도 목적지에 가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삶에서 길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즉 길을 잃지 않으려면 목적지를 볼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번쯤 자신이 살아가면서 길을 잃지 않는 비법을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는 스무 살 무렵 방을 나서는 문 옆에 큰 거울을 걸어놓고 그 거을 위에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너는 누구냐?"라고 치기 어린 문구를 써 놓았던 생각이 난다. 무슨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덕분에 그나마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이 책에는 일부러 멋스럽게 만든 충고의 글귀 같은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책을 다 덮고 난 뒤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감흥 같은 것이 있다. 특히 자녀 교육이나 세상 살이에 대해 저자가 보여주는 자세는 내 평소 생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녀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해 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났을 때, 삶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더 나아가 나는 함께 하는 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갖는 특징은 저자가 오랜 동안 미국에서 살았고 영어를 원어민 처럼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정말 미국인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하는 상태라는 점과, 직업이 월가 분석가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즉 이 책은 한글로 쓰여졌지만 최대한 말장난이나 쓸 데 없는 꾸밈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배운 15세 전후의 소년이 정직하게 쓴 것 같은 소박하고 진실된 글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끝으로 저자가 만들어낸 말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말로 저자가 소개하는 다음 글(테레사 수녀의 글로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켄트 케이트의 시를 테레사 수녀가 담벼락에 옮겨 적어 즐겨 봤다고 한다)을 나로서는 처음 접하게 되었고 큰 감동을 받았다:
사람들은 자주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네가 만일 친절하다면,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너를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만일 정직하고 진솔하다면, 사람들은 너를 기만하려 할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진솔하라.
네가 만일 평온과 행복을 얻었다면, 누군가는 질투할 것이다.
그래도 행복하라.
네가 오늘 한 선행을 사람들은 곧 잊을 것이다.
그래도 선행을 하라.
네가 가진 최고의 것을 세상에 베풀어도,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최고의 것을 베풀어라.
(참고로 케이트의 시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Paradoxical Commandments
by Dr. Kent M. Keith
People are illogical, unreasonable, and self-centered.
Love them anyway.
If you do good, people will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Do good anyway.
If you are successful, you will win false friends and true enemies.
Succeed anyway.
The good you do today will be forgotten tomorrow.
Do good anyway.
Honesty and frankness make you vulnerable.
Be honest and frank anyway.
The biggest men and women with the biggest ideas can be shot down by the smallest men and women with the smallest minds.
Think big anyway.
People favor underdogs but follow only top dogs.
Fight for a few underdogs anyway.
What you spend years building may be destroyed overnight.
Build anyway.
People really need help but may attack you if you do help them.
Help people anyway.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you'll get kicked in the teeth.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y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