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의역이 포함돼 있다.)
부채 즉 빚이 얼마나 많으면 문제가 되나?
부채를 소득이나 GDP 대비 비율로 나타냈을 때 얼마까지 안전하다고 할 수 있나? 부채가 너무 많으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 몇 퍼센트가 넘으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지만, 사실 2000년대 들어 급증한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에 대해 최근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에 제기한 문제가 다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부채에 대한 관심 자체보다 정부 부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라고 하고 싶다.
컨설팅 업체 매킨지社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가운데 많은 나라들의 경우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가계부채가 두 배로 늘었다. 그 후 2008-2009 금융위기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은 나라에서는 가계부채가 일부 조정을 거쳤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계부채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부 부채는 2008-2009 금융위기 이후 급증했다. 실례로 영국의 정부 부채는 2007년 GDP의 40%를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후 증가해 현재 92% 선에 이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도한 정부 부채를 해소하려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GDP 자체가 축소되면서 부채 비율은 오히려 상승한 나라도 있는데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경우도 적자를 축소하려다 보니 경기 회복이 지체돼 부채 비율은 상승하게 됐다.
오늘날 금융의 발달로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하지만 과거에는 빚을 진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폴로니우스는 아들에게 "빚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언제까지나 성장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면서 이런 풍조에 변화가 왔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생소했던 모기지대출은 오늘날 선진국 가계부채의 74%나 차지하게 됐으며,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43%나 차지하게 됐다. 은행은 빌려주기 바쁘고 가계는 빌리기 바쁜 것이 현실이다. 양쪽 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마찬가지로 정부 입장에서도 과거에는 예산 수입과 지출은 꼭 일치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는 전쟁을 치르는 때였을 정도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고 정부도 이제는 세율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내려도 예산 수입은 계속해서 늘기만 할 것으로 믿는 것처럼 행동하게 됐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가계부채와 정부부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그런 믿음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렇기는 해도 빚이 소득이나 GDP 대비 비율 면에서 어느 선까지 괜찮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때 그때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덴마크와 미국의 사례를 보면 그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2007년 당시 덴마크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무려 269%였던 반면 미국은 125%였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가계부채 부도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왔고 미국에서는 모기지 대출의 담보 주택 가운데 1/4 정도는 이른바 "깡통주택"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일부 집주인들은 고의로 부도를 택함으로써 주택가격 하락을 부추겼고 다른 채무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이런 차이는 채무자 구성과 관련이 있었다. 덴마크의 경우 부채비율이 높은 계층은 주로 고소득층이었으며 담보 가액 대비 대출 비율은 80%로 엄격하게 관리됐다. 반면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의 부채비율이 고소득층보다 높았으며 담보대출도 마구잡이로 이루어졌다. 미국 뿐 아니라 스페인이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에서도 은행과 가계 모두 고정자산을 놓고 벌이는 투기꾼이 돼 버렸다.
정부 부채에 대해 살펴 보자.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는 230%로 그리스의 177%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그리스는 위기에 빠져 일본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경우 둘 사이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서로 채권자 구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채권자들은 대부분 자국민 및 국내 법인으로 정치적 안정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의 경우 채권자들은 대부분 외국계 은행들이었다.
오늘에 와서는 경제 성장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각국 정부는 다음 위기에 대비를 게을리했다. 은행에 경기대응적 자본 및 지불준비금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거시건전성 조치를 도입하려 해도 금융산업 내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무력화되곤 했다. 또 일부 국가의 경우 정부는 부채 구조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가계들에게 차입을 늘려 경기를 떠받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앞의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를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의 경우 앞으로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논리는 사실 잘못된 경우가 많다.
즉 정부 지출은 무조건 비생산적이고 미래 세대에 부담만 지울 뿐이라는 주장은 허위에 가깝다. 실례로 정부의 기반시설 투자는 현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인 만큼 미래 세대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
부채를 논할 때 진짜 중요한 문제는 부채의 용도다. 경상비용 충당을 위해 부채를 늘린다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실질금리가 제로 내지 마이너스인 지금이야말로 각국 정부가 빚을 늘려서라도 시설투자에 나서야 할 때다. 빚을 내서 경제 생산에 기여하는 자산을 늘리는 경우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모든 나라가 재정수지 흑자를 내 빚을 줄이려 하고 있다. 얼핏 보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기 회복은 여전히 미흡하고 성장은 정체돼 있는데 세율을 인상하고 복지 지출을 감축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재정 건전화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많은 나라에서는 재정 정책은 디플레이션 효과를 내도록 운용하면서 돈을 찍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하지만 매킨지 보고서 지적대로 "수요는 위축돼 있고 저축성향은 높은 가운데 은행은 부채 축소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유동성을 늘린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정부 부채를 더욱 늘린다는 차원에서 터부시되고 있다. 하지만 계산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리 볼 수도 있다. 실례로 2014년 영란은행이 보유한 영국 정부 채권은 전체의 24%에 달했다. 이것을 빼고 보면 영국의 실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92%가 아니라 63%에 그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보유한 정부 채권을 제외한 순 부채비율이 중요한 것이다. 정부 지출 재원을 중앙은행으로부터 조달하는 일은 터부시돼 왔지만 경기 회복이 멈춘다고 가정하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점점 그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는 언제든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상환할 의향이 없다고 말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 원문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rising-debt-unfounded-fears-by-robert-skidelsky-2016-01
Robert Skidelsky
Robert Skidelsky, Professor Emeritus of Political Economy at Warwick University and a fellow of the British Academy in history and economics, is a member of the British House of Lords. The author of a three-volume biography of John Maynard Keynes, he began his political career in the Labour party, became the Conservative Party’s spokesman for Treasury affairs in the House of Lords, and was eventually forced out of the Conservative Party for his opposition to NATO’s intervention in Kosovo i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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