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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스크랩) 행동하는 용기

새나의 창고 | 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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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용기
작가 벤 버냉키 
출판 까치 
발매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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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동에 대해 솔직한 글을 쓰는 용기는 부족했다.

'스트레스 테스트'와 많은 부분이 겹치는 책이다. 평소에 내 업무와 연관이 깊기도 하고 해서, 무려 700페이지에 걸친 책인데도 생각보다 꽤 빨리 읽을 수 있었다(사실 그래도 2주 걸렸다). 일단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인상비평'은 책을 다 읽기 전에 써 놓긴 했다.

http://blog.naver.com/neolone/220609342392

하지만 본격적인 서평을 쓸 시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새 이 책을 읽은 지 두 달이 훨씬 넘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글을 쓰기로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스트레스 테스트'에 비해 힘이 없게 느껴졌다. 두 저자의 성격 차이를 반영한 듯하다. 둘째, 이 책이 특히 자세히 다루었어야 할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설명이 미흡해 보였다. 물론 버냉키와 가이트너 두 사람이 미국 경제의 금융위기 탈출을 공동 지휘한 것이 맞다. 다만, 가이트너가 주력한 분야가 금융구조조정(TARP, 스트레스 테스트, 금융개혁법 입법)이었다면, 버냉키가 주력한 분야는 양적완화를 비롯한 통화정책 조치였다.

사실 두 사람 다 금융위기 직전 몇 년 동안의 신용 팽창에 책임이 있는데도 이를 회피한 듯한 느낌이 있다. 버냉키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연준 이사회 멤버('총재')였으며, 2006년부터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였다. 가이트너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연준에서 거의 넘버 투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으로 일했다. 둘 다 2000-07년 미국의 신용 팽창, 가이트너 자신이 이름붙인 '후지산'이 올라가는 데 관여를 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최종 책임자는 '금융 대통령'으로 추앙받던 그린스펀이겠지만, 버냉키와 가이트너도 그린스펀의 '좌청룡 우백호'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특히, 나는 버냉키가 2002-03년 디플레이션 우려를 전면에 내세우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등장했던 때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를 주도한 것이 그 이후 나타난 신용 팽창과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낳은 측면이 있다고 옛날부터 생각해 왔다. 갑자기 우리나라 같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대처 과정 처음부터 배제당하지나 않았을까.

서문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연방준비제도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으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전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도전받고 있다. 일단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눈에 띄게 상실한 듯하다. 미국 포함 세계 주요국의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금융시장 상황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지난주 내가 다니는 SG의 금리 리포트는 아예 이렇게 썼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아니라 S&P 500 주가지수 목표제라고. 정치적인 독립성도 차차 훼손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일본은행의 '양적 질적 완화' 정책을 '구로다노믹스'가 아니라 '아베노믹스'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상징한다. 한국도 이제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를 여당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들어 중앙은행의 '소통'을 강조하는 것도 독립성 후퇴의 증거로 느껴진다. 진정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면 정책 결정 그 자체만 보여주면 그만이지 '소통'을 위해 구구절절 이 결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예 중앙은행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까지 다 내보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적어도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의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다'라는 격언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되었다. 물론 세상이 바뀌었다. 다들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시대이니 고성장과 인플레이션 시대의 산물인 중앙은행 독립성은 이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옛날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이 적어도 '정부로부터의 독립'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앙은행도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정부의 일원임을 생각할 때, 중앙은행과 다른 경제정책 주체(재무부, 금융감독기구)와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적어도 금융시장으로부터는 독립적으로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나아가 경제정책 당국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 바로 신용 주기(credit cycle)의 관리이다. 신용 주기는 금융시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만약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이 금융시장에 휘둘린다면 경제정책 당국은 신용 주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물론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금융감독당국은 거시건전성정책'으로 분업을 하면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찬 물과 더운 물을 동시에 트는' 식의 정책 분업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다.

버냉키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을 강조한 것은 정치인들이 양적완화 정책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돈 찍어내기'요 '메인 스트리트가 아닌 월 스트리트만을 살리는 정책'으로 비난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맥락이 좀 달라졌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남발'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은 오히려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 것은 아닐까. 올해도 여전히 세계 금융 시장은 유럽, 일본, 영국 등지의 양적완화를 '디폴트'로 생각하는 가운데,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옐렌 풋'을 기다리는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문부터 내 말이 너무 길어졌다.

버냉키는 대공황 당시의 통화정책 연구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례적인 상황에 직면한 정책 입안자라면,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공황 당시 '완전히 새로운 정책'으로 그는 1933년의 금본위제 철폐를 지목한다. 그리고 그는 2008년의 '대불황'에 직면하여 세계 주요 중앙 은행이 펼친 양적완화 등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행을 진두 지휘했다. 대공황의 재연 가능성을 줄여서 대불황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양적완화가 단시일 내에 끝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공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중앙은행의 소통을 강조한다. 비밀주의가 시장을 혼란시키고 음모론을 발생시킨다고 비판한다. 소통에 있어서의 관건으로 그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지목한다. 물가안정목표가 중앙은행, 금융시장, 그리고 대중 사이에서 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최근 10-20년간 세계 중앙은행에 유행으로 번진 물가안정목표제를 저자도 지지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다만, 최근들어 물가안정목표제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도 지적해야 한다. 첫째,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 물가안정목표제가 유명무실화되어 있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가 약속한 인플레이션 2%는 언제쯤 달성될 것인가?) 둘째, 고용과 인플레이션의 '이중 목표'를 두고 그 중 인플레이션 목표는 근원 민간소비(PCE) 디플레이터를 사용하는 등 전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물가안정 목표제를 채택한 미국의 경우, 현재 고용과 인플레이션 모두 목표치에 가까와져 있는데도 시장 불안을 이유로 금리 인상을 주저하여 유연성을 남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국은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고, 그나마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미국도 다른 나라와 금융 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물가안정목표제에 의한 정책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가안정목표는 소통의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그럼 무엇을 기반으로 소통해야 하나? 역시 주가지수? 아니면 다른 시장 변수인 환율? 역시 제대로 된 소통은 항상 어렵다.

연준이 미국 금융 위기를 야기한 신용 거품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에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 통화정책은 자산 가격 버블에 맞서기 위한 적절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대응한다. 최근 유명해진,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2010년 금리를 올렸다가 오히려 디플레이션에 빠진 스웨덴의 예를 들기도 한다. 주택 버블의 원인이 저금리가 아니라 심리적 요인이라는 로버트 실러의 말도 인용한다. 결국 그는 내가 맨 위에 제시한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의 분리를 신용 거품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첫째, 저자 본인도 인정했듯이 금융위기 이전의 미국 금융감독 체제는 '개판 5분 전'이었다. 상품거래위원회(CFTC), 통화감독청(OCC), 저축기관감독청(OTS), 연방주택기업감독청(OFHEO)에 각 주의 보험사 감독기관까지, 정말 엄청나게 복잡했다. 심지어, AIG가 소규모 저축대부조합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OTS가 감독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한숨만 나왔다. 위기 신호에 대해 통화정책이 아닌 금융감독정책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 복잡한 감독 체제부터 정비해야 했다. 버냉키는 뭘 하고 있었나? 물론 위기 이후 금융감독체제의 정비, 그러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전이 있기는 했다. 둘째, '찬물과 더운물을 동시에 튼다'는 기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된 것이 없다. 스웨덴의 예는 기본적으로 경기가 위축되어 있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전 미국 상황에서, 특히 디플레 우려를 지적하면서 계속 금리를 인하했던 2002-03년 과연 가계(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후지산'과 같은 가계부채의 급증세가 조절되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산 가격 버블 및 그 기반이 되는 신용 버블의 통제 및 관리를 위해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정책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2007년 7월 서브프라임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때부터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까지, 그 1년여 동안 연준은 도대체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했을까? 초기에는 경기 지표가 괜찮다는 것을 핑계로 금리 인하를 주저했지만, 고용지표가 악화되자마자 2007년 9월부터 금리 인하 행렬을 시작하게 된다. 경기 지표가 점차 나빠지는 가운데 어떤 이벤트나 이로 인한 금융 시장 혼란이 있을 때마다 금리를 계속 인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통화 완화 정책, 즉 금리 인하로 불황이나 금융위기를 '방지'하거나, 적어도 초기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 보았다. 매 FOMC 회의마다 정말 고심하면서 금리에 대한 결정을 내렸음이 책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나는 이러한 불황이나 위기 직전 상황에서 통화정책이란 것이 너무나 무력함을 느꼈을 뿐이었다. 통화 완화 정책은 불황이 시작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선제적 대응'이다. 하지만 경제 예측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경제학자/정책 당국자들이 과연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설사 1년 뒤의 엄청난 '대불황'을 미리 100% 예측하여 2007년 말 금리를 제로로 확 내렸다고 해도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2008년 상반기 유가 폭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올라갔을 때, 제로 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런지도 의문이다. 저자 자신도 고백하듯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성장의 조합은 전통적 중앙은행가에게 영원한 딜레마니까.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2009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 때까지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서술한 부분은 '스트레스 테스트' 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의 G-7 회의에서 더 이상의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의 파산이 없게 하겠다고 각국이 합의했기 때문에 씨티그룹을 반드시 구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예금보험제도가 은행 예금 중심의 '고전적' 뱅크런을 막을 수는 있지만 도매금융, 기업어음, MMF 등 예금보험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 중심의 뱅크런을 막기는 불가능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연준은 1)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금리 인하, 2)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한 긴급 유동성 대출, 3) 주요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 4) 은행들의 상태를 점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공개 등 네 가지의 정책 대응으로 금융위기에 대처했다고 저자는 차분하게 정리한다.

맨 앞에도 밝혔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 가진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한 설명의 부족이다. 저자는 단기금리가 제로에 도달한 다음에도 채권의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낮춤으로써 신용거래 비용(credit cost)을 광범위하게 축소시킬 수 있다고 간단히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실시한 양적 완화가 통화량(본원통화) 증가를 목표로 한 데 비해 미국 연준이 2008-9년 시행한 '대규모 자산 매입'은 장기금리 하락을 목표로 한 '신용 완화'였다고 저자는 주장하지만, 어차피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이 본원통화 증가를 가져온다면 두 정책은 일맥 상통할 것이다. 저자 입장에서는 대학에 있을 때부터 줄곧 '비정통적' 통화정책을 연구해 왔기에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을 휩쓸고 이제는 우리나라에까지 상륙한 이 '양적 완화'라는 정책 수단을 사실상 처음 소개한 사람인 버냉키는 내가 볼 때 적어도 이보다는 더 자세하게 양적 완화의 도입을 설명했어야 한다.

덧붙여 양적 완화에 의한 본원통화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가져오지 않은 이유라든가 (나는 '밑빠진 독에 물을 계속 넣어도 넘치지 않는다'는 비유를 써서 경제의 신용 창출 시스템이 고장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헬리콥터 머니'와 양적완화의 차이점 (저자에 따르면 '헬리콥터 머니'는 대규모의 재정 적자를 국채 발행이 아닌 중앙은행의 통화 증발로 직접 메꾸는 것을 뜻한다.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인수하는 것이며, 재정적자의 확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등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양적 완화와 그 배경이 된 디플레이션 우려를 명시적으로 연결하지 않은 점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뻔한 설명 같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책이니 확실하게 서술했어야 한다.

이후 2009년 여름 미국 국채 10년 만기 금리가 4% 위로 올라간 것을 양적 완화 정책의 성공(=성장률 및 인플레이션 기대의 상승)으로 간주했다는 대목에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거의 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양적 완화는 '3탄' 까지 진행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1.7%로 낮아졌다. 과연 양적 완화 정책은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실패한 것일까? 장기금리를 낮추는 것이 어쨌든 직접적인 목적이었으니 성공인가? 아니면, 이렇게 낮은 장기금리 수준이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아져 이제 다들 '장기 불황(secular stagnation)'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니 실패인가? 양적 완화를 가장 빨리 수행한 미국이 어쨌든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탄탄한 회복을 보였으니 성공인가? 아니면,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보다는 금융시장의 자산가격의 '무차별' 상승(적어도 처음에는)을 야기하는 효과가 훨씬 더 컸으니 실패인가? 아마 버냉키 스스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추진한 금융규제개혁 과정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단 내 관심을 끈 것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3월 미 재무부가 제안한 보고서로, 개별 금융기관 규제 기구(OCC), 금융투자자 및 소비자 보호 기구(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통합하고 기존 감독기관들의 소비자 보호 기능을 추가), 금융체제 전체의 안정을 책임지는 기구, 이렇게 총 세 개의 감독 주체를 구상하고 있다. 중앙은행(연준)이 맡기로 되어 있는 세 번째 기구가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한 통화정책과 거시 금융규제(건전성) 정책을 통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 제안이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연준을 금융 안정 규제기관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는 OCC, SEC, CFTC 등의 기존 규제 기구는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A)이 신설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일각에서 제기한 글래스-스티걸 법 (상업금융과 투자금융 겸업의 제한) 부활이 금융위기를 방지하는 좋은 방법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물론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의 상징이었던 씨티그룹이 주요 금융기관 중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와코비아와 워싱턴 뮤추얼 같은 상업금융기관, 베어 스턴스나 리먼 브러더스같은 투자회사가 각각 파산 위기를 겪었으며, 오히려 글래스-스티걸 법이 살아 있었으면 JP모건의 베어 스턴스 합병과 BoA의 메릴린치 합병이 불가능해서 금융위기 해소가 힘들었을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나는 100% 동의한다.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금산분리'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화정책, 거시건전성정책, 그리고 각 금융기관에 대한 개별적인 규제로 충분하며, '금산분리'의 찬성 여부는 금융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극우' 정치인 론 폴 하원의원과 '극좌'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단합'하여 의회에 의한 연준의 회계감사를 주장한 것이 꽤 이채로왔다. 이 주장은 결국 의회의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금융권력의 집중'을 혁파해야 한다는 '포퓰리즘'에 좌우가 따로 없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라고나 할까. 론 폴이 금본위제를 오래 전부터 주장한다는 점도 그의 연준에 대한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마디로 통화정책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연준은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의 감사를 매년 받고 있고, 1978년 통화정책을 회계감사원 검토에서 제외하기로 결정된 바 있으며, 이는 두 의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다. 한국 상황을 찾아보니 일단 감사원이 한국은행의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을 담당하고, 한국은행은 국회 국정감사의 대상이기도 하며, 통화정책에 대한 예외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앙은행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는 결론이다.

은행 감독 업무의 조정은 대형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감독권을 연준에 부여하고 소규모 은행지주사 및 주 인가 은행들에 대한 감독권은 OCC와 예금보험공사(FDIC)가 가지는 선에서 합의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추세는 중앙은행들이 은행 감독과 금융 안정 양면에서 책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이었다'고 저자가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나는 통화정책, 거시건전성정책(금융안정), 미시감독정책(은행감독)을 하나로 통합한 '강력한 중앙은행'이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통화정책위원회(MPC)와 금융정책위원회(FPC)를 운영하면서 금융규제원(FCA)와 건전성감독원(PRA)을 산하에 두고 있는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을 모델로 하는 이야기이다. (금융규제원은 위에서 미국 재무부가 제안한 금융투자자 및 소비자 보호 기구이다.) 미국은 아직 금융안정과 은행감독 업무가 중앙은행과 다른 기관으로 분산되어 있는 셈이고, 한국은 이 두 업무가 중앙은행과 분리된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어 있다.

2010년 초에 제로금리 및 양적완화에서 벗어나는 '출구 전략'을 논의한 기록을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 들었다. 현재 연준은 1년에 한 차례씩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에도 버거워하고 있으며, '대차대조표의 정상화' 즉 '양적 긴축(=보유 자산의 매도)'는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뉴 노멀'의 핵심인 셈이다. QE2를 거쳐 QE3이 진행중이었던 2013년 저자는 마침내 정책의 '수확체감'을 말하기 시작한다.

2010년 무렵 저자가 명목 GDP 목표제를 고려했다는 대목도 흥미로왔다. 인플레이션-고용 목표제에 비해 이해가 어렵다는 것 (명목GDP와 실질GDP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마치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정책으로 보인다는 우려 등에 의해 결국 명목 GDP 목표의 채택을 거부했다고 한다. 요즘 상황이라면 아마 '높은 인플레이션 용인' 운운하는 얘기가 사치로 들렸을 것이다. 찾아보니 미국의 명목GDP증가율(전년동기비)은 2014년 3분기 4.8%에서 고점을 기록한 후 계속 내려가 작년 4분기에는 3.1%를 나타냈다. 한 5% 정도를 목표로 한 명목GDP(성장률) 목표제를 시행했다면 금리 인상 얘기가 안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명목 성장률 3.1%과 비교할 때 정책금리 0.25~0.50%, 10년 만기 국채 금리 1.7%선이라는 현재 금리 수준이 '충분히 완화적인가' 라는 논란은 그래도 계속되었을 듯하다. 어쨌든, 명목성장률로 보니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그렇게 탄탄하지 못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2005년 미국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는 명목성장률이 6%를 훌쩍 넘어갔다.

제로금리, QE 등 연준의 통화완화정책이 소득과 부의 분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저자는 '저금리가 부자들의 자산소득(=이자소득)도 감소시칸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느슨한 통화정책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에 매우 유사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고 짧게 말하고 지나간다. 제로금리와 QE가 소득 증가 속도를 능가하는 자산 가격 상승을 가져와 부의 분배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는다. '저금리가 부자들의 자산소득도 감소시킨다'는 주장에 있어서는 솔직히 비겁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미국 부자들 중 우리나라 부자처럼 정기예금에 수십억씩 예금한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미국의 가계 자산 중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는데?

QE3의 축소를 시도할 때 발생했던 시장의 격렬한 반응, 즉 '테이퍼 탠트럼'에 대한 서술에서 하나 인상깊었던 대목은 연준의 정책 결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타진할 때 '우리의 경제학 박사들이 저들(금융기관)의 경제학 박사들을 조사한 셈'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딜러들의 반응을 알았어야 하는데, 경제학이라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금융기관의 이코노미스트들 의견만 묻고 말았기 때문에 QE가 무한정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던 시장 대부분 참가자들의 의견은 몰랐다는 얘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중앙은행이 시장 참가자들의 의견에 그렇게 크게 신경쓸 필요가 있는가가 의문이다. '테이퍼 탠트럼'이라고 얘기되는 금융시장의 약세로 인해 과연 미국 경기의 회복세가 얼마나 크게 꺾인 것인가? 시장 참가자들의 중앙은행 정책에 대한 예상을 물론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책 결정의 우선 순위가 시장 참가자들의 예상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많은 시장 참가자들이 내심 미국은 금리를 거의 못 올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연준의 금리 인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는 이러한 시장의 기대가 아니라 거시 경제 및 금융 시장 자체의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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