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개발의 조건, 방글라데시 사례
개발현장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속한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정책 당국자들과 많이 나누게 된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열에 아홉은 정치 안정, 청렴한 정부와 함께 전력, 교통, 상하수도, 통신 등 인프라를 선결 조건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문제는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개도국들이 이런 선결 조건을 충족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 안정이나 부정부패는 외생변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프라 또한 막대한 재원 조달 능력뿐만 아니라 사업 집행 능력의 부족으로 손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결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개도국에서의 경제개발은 불가능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경제개발에 꼭 하나만의 정해진 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이 가능하다. 여기선 한 사례로 방글라데쉬를 들고자 한다.
방글라데쉬는 보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개발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추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1,200불에, 미국 뉴욕 주보다 조금 큰 연면적에 인구 1억 6천만으로 도시국가들을 제외하곤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이다. 또 홍수, 사이클론 등 자연 재해도 빈발하다. 게다가, 정치 불안으로 시도 때도 없이 동맹 휴업하고 (지난 20년간 연평균 46일 정도의 하탈이 있었다), 부정부패가 심하고, 전력, 교통 등의 인프라 부족도 심각하다.
방글라데쉬는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최근 10년간 연 6%라는 대단한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빈곤 지수 (poverty head count index)도 1992년 57%에서 2010년 31%로 급하락하는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고, MDGs 목표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쉬 경제가 어려운 성장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놀라운 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이 방글라데쉬 수수께끼에 대한 다음 세 가지에서 찾고자 한다.
첫째, 지속적 교육 투자이다. 방글라데쉬는 90년대 이후 교육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기본적 문해력과 수리력을 갖춘 성실한 노동력을 국내외에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초∙중등학교 총등록률이 20년 전 65%, 20%대에서 2011년114%, 51% 대로 급상승했다. 이에 힘입어 방글라데쉬는 의류 등 저임금 산업과 해외 인력송출 부분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90년 이후 조혼 방지 목적으로 중고등학교 여학생에 대해 실시한 장학금 제도는 70년대 6.6이었던 출산율을 이슬람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인 2.2로 낮추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참여율 제고, 가정 보건위생 수준 향상이란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둘째, 역동적이면서 끈질긴 내성을 갖춘 민간 부문의 존재이다. 정치 불안, 열악한 인프라 기반 시설과 만연한 부정부패 등 최악 조건에서도 민간 부문들은 아주 끈질기면서도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당초의 기우와는 달리 의류 봉제 산업은 2005년 포스트 MFA 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고속 성장을 거듭해 이젠 세계 제2위로 부상했다. 생산시스템도 기존의 단순 CMT (cut, make and trim) 중심에서 Free on Board-1 (현지 업체가 디자인만 빼고 중간재와 생산을 모두 담당)로 발전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조선, 세라믹, 의약품 산업과 더불어, 최근 연 20-30%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IT 산업에선11개 회사가 CMMI Level 3 인증을 받아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중 DataSoft는 올 초 CMMI Level 5 인정받았고Tiger IT는 바이오메트릭 분야에서 세계 5-6위 안에 든다.
셋째, 개방적 산업 정책이다. 방글라데쉬 정부는 80년대 수출자유지역을 통한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을 장려했다. 이런 개방 정책에 편승, 섬유 쿼터를 피하기 위해79년 대우, 80년 영원기업을 선두로 한국 의류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글로벌 밸류체인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 명문 다카대학 출신 등 고급 인력이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한국에 오면서, 한국으로 부터의 선진 기술 및 경영 기법의 습득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방글라데쉬 국내 자본의 투자가 의류산업에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1985년 이후 방글라데쉬 의류산업의 현지화가 진행되었다 .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런 국내 자본과 기술이 결합된 현지화 과정은 다른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80년대 초반 정부의 개방 정책 (비록 이후엔 제대로 지속되지는 못했지만)과 민간 투자를 유인한 산업 정책, 그리고 외국 기술을 체화할 수 있었던 우수한 인력이라는 삼박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방글라데쉬의 사례는 경제개발이 꼭 인프라가 완비되고 정치가 안정된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수준의 경제개발이 인프라나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방글라데쉬 경험은 매우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가 불안하고 인프라가 열악한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국가들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시사점이 많다.
개발현장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속한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정책 당국자들과 많이 나누게 된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열에 아홉은 정치 안정, 청렴한 정부와 함께 전력, 교통, 상하수도, 통신 등 인프라를 선결 조건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문제는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개도국들이 이런 선결 조건을 충족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 안정이나 부정부패는 외생변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프라 또한 막대한 재원 조달 능력뿐만 아니라 사업 집행 능력의 부족으로 손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결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개도국에서의 경제개발은 불가능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경제개발에 꼭 하나만의 정해진 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이 가능하다. 여기선 한 사례로 방글라데쉬를 들고자 한다.
방글라데쉬는 보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개발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추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1,200불에, 미국 뉴욕 주보다 조금 큰 연면적에 인구 1억 6천만으로 도시국가들을 제외하곤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이다. 또 홍수, 사이클론 등 자연 재해도 빈발하다. 게다가, 정치 불안으로 시도 때도 없이 동맹 휴업하고 (지난 20년간 연평균 46일 정도의 하탈이 있었다), 부정부패가 심하고, 전력, 교통 등의 인프라 부족도 심각하다.
방글라데쉬는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최근 10년간 연 6%라는 대단한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빈곤 지수 (poverty head count index)도 1992년 57%에서 2010년 31%로 급하락하는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고, MDGs 목표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쉬 경제가 어려운 성장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놀라운 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이 방글라데쉬 수수께끼에 대한 다음 세 가지에서 찾고자 한다.
첫째, 지속적 교육 투자이다. 방글라데쉬는 90년대 이후 교육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기본적 문해력과 수리력을 갖춘 성실한 노동력을 국내외에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초∙중등학교 총등록률이 20년 전 65%, 20%대에서 2011년114%, 51% 대로 급상승했다. 이에 힘입어 방글라데쉬는 의류 등 저임금 산업과 해외 인력송출 부분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90년 이후 조혼 방지 목적으로 중고등학교 여학생에 대해 실시한 장학금 제도는 70년대 6.6이었던 출산율을 이슬람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인 2.2로 낮추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참여율 제고, 가정 보건위생 수준 향상이란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둘째, 역동적이면서 끈질긴 내성을 갖춘 민간 부문의 존재이다. 정치 불안, 열악한 인프라 기반 시설과 만연한 부정부패 등 최악 조건에서도 민간 부문들은 아주 끈질기면서도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당초의 기우와는 달리 의류 봉제 산업은 2005년 포스트 MFA 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고속 성장을 거듭해 이젠 세계 제2위로 부상했다. 생산시스템도 기존의 단순 CMT (cut, make and trim) 중심에서 Free on Board-1 (현지 업체가 디자인만 빼고 중간재와 생산을 모두 담당)로 발전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조선, 세라믹, 의약품 산업과 더불어, 최근 연 20-30%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IT 산업에선11개 회사가 CMMI Level 3 인증을 받아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중 DataSoft는 올 초 CMMI Level 5 인정받았고Tiger IT는 바이오메트릭 분야에서 세계 5-6위 안에 든다.
셋째, 개방적 산업 정책이다. 방글라데쉬 정부는 80년대 수출자유지역을 통한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을 장려했다. 이런 개방 정책에 편승, 섬유 쿼터를 피하기 위해79년 대우, 80년 영원기업을 선두로 한국 의류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글로벌 밸류체인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 명문 다카대학 출신 등 고급 인력이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한국에 오면서, 한국으로 부터의 선진 기술 및 경영 기법의 습득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방글라데쉬 국내 자본의 투자가 의류산업에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1985년 이후 방글라데쉬 의류산업의 현지화가 진행되었다 .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런 국내 자본과 기술이 결합된 현지화 과정은 다른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80년대 초반 정부의 개방 정책 (비록 이후엔 제대로 지속되지는 못했지만)과 민간 투자를 유인한 산업 정책, 그리고 외국 기술을 체화할 수 있었던 우수한 인력이라는 삼박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방글라데쉬의 사례는 경제개발이 꼭 인프라가 완비되고 정치가 안정된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수준의 경제개발이 인프라나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방글라데쉬 경험은 매우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가 불안하고 인프라가 열악한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국가들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시사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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