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WTI 기준 국제유가는 올해 2월 11일부터 6월 8일까지 95.4%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을 견인했던 요인은 주요 산유국의 생산량 합의 가능성과 미국 중심의 Non OPEC 생산량 감소, 미국 원유 재고량 감소, 달러화 약세, 쿠웨이트 파업과 캐나다 산불, 나이지리아 무장단체의 생산시설 공격 등 예상치 못한 생산차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국제유가는 올해 상반기 중 나타난 상승세가 지속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것으로 판단된다. 연중 공급과잉이 유지될 것이며, 매크로 변수도 우호적이지 않아 올해 말까지 배럴당 50달러를 추세적으로 상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중국 경기모멘텀 부진과 실물지표 악화에 따른 원유 수요 둔화 우려가 잠재해 있고, 브렉시트 이후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로 안전자산 선호가 심화되며 달러화 강세가 나타날 경우 유가는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4월 쿠웨이트 파업의 영향은 상당부분 소멸되었으며, 캐나다 산불에 따른 생산량 감소 역시 7월 중 정상화 될 전망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현재 정부와 무장단체 간의 협상이 진행 중에 있고 송유관 유지 보수도 이루어지고 있어 생산량 감소의 영향이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저유가 지속으로 인해 미국 E&P 기업의 파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 주요 원유 생산지역인 Texas에 위치한 로펌 Haynes and Boone에 따르면 올해 5월 중 파산을 신청한 미국 E&P기업은 총 11개로 지난 4월에 이어 2015년래 월간 파산신청 건수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원유 생산량 감소 속도의 증가로 해석되며 국제유가의 상승을 견인한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의 유가 수준에서 미국 E&P 기업의 파산을 미국 원유 생산량 감소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이다. 2015년 이후 파산을 신청한 미국 E&P 기업 중 Samson Resources, Sabine, Quicksilver 등을 포함한 파산신청액 기준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Chapter 11(파산보호)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Chapter 11은 Chapter 7(청산)과는 달리 채권자와의 협의 하에 계속 사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미국 회사법에 따르면, Chapter 11 하에서 채무기업은 법원의 명령이 없는 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사업을 청산하지 않고도 계속 사업을 점유하고 영업을 통괄할 수 있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중후반에 머무르는 상황 하에서는 자산을 매각하여 채무를 변제하는 것보다 생산을 계속하며 구조조정과 채무재조정을 꾀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저유가 상황 하에 미국 원유 생산량이 감소 추세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현재 미국 E&P 기업의 파산을 생산량 감소 속도의 증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밖에 역사적 고점 수준인 미국 원유 재고량은 드라이빙 시즌 진입에 따른 계절적 수요로 감소 추세에 있으나 OECD 재고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OECD 상업재고량이 2017년 8월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량의 재고는 과거 수준으로 회귀하기 전까지 상당기간 유가를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 국제유가의 상승은 2015년 2분기 당시의 fake rally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2015년 3월부터 6월까지 이어진 유가 상승은 달러화 약세에서 촉발되었다는 점과 실제 시장이 공급과잉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랠리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올해 상반기 상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당시에 비해 미국 중심의 Non OPEC 생산량 감소세가 뚜렷하고 OPEC의 스탠스가 우호적인 방향으로 변하였으며 5월 중 심화된 생산차질로 인해 펀더멘탈의 개선세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6월 들어 생산차질 물량의 되돌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와 달러화 강세 등 매크로 변수가 우호적이지 않으며, 역사적 고점 수준의 재고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하반기 국제유가 range를 40~50달러 수준으로 전망한다.
지난 6월 2일 개최된 OPEC 정기총회는 구체적인 생산량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4월 생산량 동결회의와 작년 12월 정기총회에서와 같은 회원국 간 극단적 대립 양상을 보이지 않고 상당히 협조적인 분위기 속에서 종료되었다. OPEC 회원국 중 생산가능여력이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급격한 증산은 하지 않을 것을 밝힘과 동시에 회원국 간 협력 의지를 드러내는 등 달라진 스탠스를 보이고 있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생산량 경쟁에 따른 유가 하락의 가능성은 상당 폭 감소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노르웨이 석유 노동자 파업 이슈이다. 노르웨이 석유/가스 노동자와 사측이 임금협상에 실패할 경우, 파업은 7월 1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5월 노르웨이 석유 생산량은 하루 196만 배럴로 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2.1%를 차지하고 있다. Reuters는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노르웨이 생산량의 18%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5월 나이지리아 생산시설 공격에 따른 생산차질 물량의 절반 이하이다. 참고로 지난 2012년 16일간 지속됐었던 노르웨이 파업 사태는 당시 노르웨이 석유 생산량의 13%를 감소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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