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8

(스크랩/책소개)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이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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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범준
출판
북콤마
발매
2015.07.15.

자이니치는 내셔널리즘이 아닌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재일교포, 즉 자이니치에 대한 나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가졌던 재일교포에 대한 시각은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적인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셔널리즘, 즉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안경을 쓰고 그들을 바라보았다고나 할까. 일본 정부 및 국민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식민지 지배와 2차대전 발발의 책임이 있는 일본 민족이 어떻게 우리 한민족을 차별할 수 있는가' 하고 분개하였다.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에 대해서는 '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거나 취득하지 않는가'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일본의 재일 조선인, 즉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일본의 이러한 태도, 일본이 만든 '내셔널리즘'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방송' '국민 타자' '국민 TV' 등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이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모방했음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의 조건이 '국민' 즉 대한민국 국적 취득 여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권의 주체가 '국민'이 아닌 '인민(people)'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떠오른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외국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외국인에게도 한정된 일자리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이니치로는 최초로 일본 변호사가 된 김경득의 경우, 그의 변호사 임용을 한국 정부도, 한국 국민 중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한 젊은이의 인생이 이대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몇몇 뜻있는 일본인이 나섰고, 법률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의 통상 압력이 더해져 결국 외국인의 변호사 임용이 가능해졌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세계화'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자이니치에 대한 글에 많이 등장하는 '조선적'이 무엇인지 이제야 정확히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일본의 2차대전 패전 이후 새로운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기 전날, 천황의 마지막 칙령인 외국인등록령에 의해 그때까지 일본 국민이던 재일 조선인이 졸지에 외국인이 되었으며, 단순히 출신지를 조선으로 표기한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적'을 한국적으로 바꾼 자이니치에게 영주 비자를 주었지만, '북조선 국적'으로는 바꾸어 주지 않았다. 조선적 자이니치는 사실상의 무국적자로 여권이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 발행 재입국허가서와 방문국의 비자를 받아야 해외 여행이 가능하며, 2008년 이후로는 한국 입국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쓴 정영환 교수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이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아직 3만 5천명 정도의 자이니치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적 자이니치 중 다수가 북조선과 조선총련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며, 일부는 조선총련이 발급한 여권도 가지고 있지만, 북조선을 방문할 때는 따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꽤 놀라왔다.

저자는 독일에서 오스트리아가 분리될 때, 그리고 프랑스에서 알제리가 독립할 때 독일과 프랑스에 거주하던 오스트리아와 알제리 사람들에게 국적 선택권을 준 사실을 지적하면서, 일본도 패전 이후 자이니치들에게 일본 국적으로 일본에서 살 권리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셔널리즘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일 수 있지만, 민족을 떠난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수십년 동안 '일본 국민'의 자격으로 일본에 살았던 자이니치들이 일본의 식민지 상실/한국의 독립 때문에 일본 국적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엄청난 타격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자이니치들의 본명(한국식 이름)과 통명(일본식 이름)이 다른 것은 전후 조선인의 창씨개명이 미 군정청령으로 무효가 되었기 때문이고, 본명이 원래 서류상 이름이며, 통명은 일본이 자이니치의 '편의'를 위해 병기를 허용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의 유별나게 강한 내셔널리즘이 이름에 관한 복잡한 사연을 낳은 듯하다.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창씨를 강요했고, 패전 이후에는 조선인을 '국민'에서 배제하기 위해 창씨를 취소했다. (미 군정청령은 핑계였던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일상 생활에서 겪는 차별을 줄이기 위해(그리고 차별을 은폐하기 위해!) 통명의 병용을 허용했지만, 한국식 본명을 유지하도록 한 것은 차별을 위한 식별 장치로서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2000년까지는 일본으로 귀화할 때 반드시 본명을 일본식 통명으로 바꾸게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창씨개명을 강하게 거부한 한국의 내셔널리즘 측면에서 보면 통명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본명이 서류에 남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귀화할 때 본명을 바꾸는 것도 자연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미국과 비교해 보면 자이니치의 특수성이 단박에 드러난다. 동유럽에서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성을 간단히 줄이는 '창씨'를 하고 앵글로색슨식의 이름을 쓰는 '개명'을 했지만, 이 사람들을 미국이나 출신국에서 비난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자이니치의 이름울 둘러싼 여러 논란은 깨끗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소프트뱅크 사장인 자이니치의 이름을 '손정의'가 아니라 '손 마사요시'로 불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수긍이 간다. 1990년 일본에 귀화하면서 '손'이라는 한국식 성을 유지한 것이 그의 대단한 성취인 것처럼, '마사요시'라는 일본식 이름 읽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의 일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으니 우리 한국인들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차동'이 아닌 '빅터 차'라고 부르고 '고보경'이 아닌 '리디아 고'라고 부르는 것처럼 '손정의'가 아닌 '손 마사요시'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자이니치의 특수성은 재미동포, 재중동포와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재중, 재미동포는 분명 중국인, 미국인이지만 한국말이 상대적으로 유창하고, 한국 성씨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반면 자이니치는 한국말 실력이 떨어지고 일본식 통명을 쓰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국적을 유지하거나 '조선적'이다. 자이니치가 한국말을 못 하고 일본 이름을 쓰는 것은 결국 일본의 내셔널리즘적 차별 때문이었지 결코 자이니치의 탓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의 내셔널리즘적인 시각에서 그들에게 한국어나 한국식 이름 사용을 강요하거나 일본으로의 귀화를 막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이니치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우리 한국에서 해야 하는 이유는 '민족문화 보전'의 내셔널리즘에서가 아니라 '내셔널리즘에 대한 항의'라는 소수자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여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에 나는 동의한다.

1959년부터 25년간 모두 10만명의 자이니치, 즉 전체 자이니치의 15%가 북조선으로 이주한 사건은 무엇보다 거의 모든 자이니치가 북조선과 관계가 생겼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빈곤층이 많아 사회복지 부담을 가중시키는 자이니치들을 내보내려는 일본의 의도와, 한국 전쟁 이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조선의 의도가 맞아떨어져 북송이 현실화되었다. 4.3사건 이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 자이니치들의 북조선 이주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기도 한다. 당시 한국 이승만 정부는 자이니치 이주를 타진하는 일본 정부에 한 사람당 500달러라는 거금 (당시 1인당 국민소득 81달러)을 요구하여 사실상 이주를 단박에 거부하였고, 안두희를 비롯한 특수공작원을 일본에 보내 북송선 폭파라는 희대의 테러를 기획하다가 실패하였다. 나는 한국 정부의 이러한 처사야말로 '국민/국가' 위주의 비뚤어진 내셔널리즘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자이니치는 같은 민족일지언정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철저히 배제했으며, '대한민국 최대의 적'인 북조선으로 그들이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들의 희생(=동족을 향한 테러)까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극우 테러 집단'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흔히 '혐한 단체'로 알려진 자이토쿠카이(재특회, 자이니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에 대해서도 역시 내셔널리즘에 물들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주문한다. 자이토쿠카이의 혐오발언은 한국이라는 국가나 한국 민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이니치라는 소수자에 대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한국 언론 기사에는 혐오발언의 직접적 대상이 조선학교였다는 사실은 나오지 않았으며 (물론 북조선과 연결된 학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혐한' '반한'이라는 표현만 등장한다. "자이토쿠카이가 일본의 한류에 영향을 줄 것 같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나. 한국 언론이 언제 조선학교에, 자이니치에 무슨 관심이 있었다고..."라는 자이니치 변호사의 말이 뼈아프다. 일본 재판소가 자이토쿠카이의 혐오발언에 대해 천만 엔이 넘는 거액의 배상액을 선고한 것 역시 '반한'에 대한 처벌 내지 조선학교의 민족주의 교육에 대한 인정이라기보다는 인종차별과 혐오발언 일반에 대한 경고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북한은 나치스와 같다'며 조선총련이 운영하고 북조선식 우상화 교육을 하는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끊는 일본 정부를 우리는 어떠한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 고등학교 무상화 조치에 조선학교가 제외되고 일부 지자체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까지 중단하면서 조선학교의 장래가 불확실하게 되었다. 재일민단에서는 (당연히) 일본 정부에 대해 조선학교의 무상화 조치 배제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학교들이 예산만 축낼 뿐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교토국제학교, 오사카금강학교, 오사카건국학교의 세 곳에 한 해 2억 엔이 넘는 국고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 학교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일본 학교'이기 때문에 '민족 교육'을 실시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더러, 진학 실적 역시 조선학교에 비해 저조하여 학생이 정원의 절반을 채우는 데 그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조선학교는 일본 전국에 모두 134곳이 있고, 학생의 절반 이상이 한국 국적이다. 북조선은 조선총련이 세운 조선학교에 1957년 2억 엔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현재 2억 엔을 지원한다), 현재까지 지원 금액은 총 470억엔에 이른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판결했던 때, 나는 국제법상 국가인 북한을 나치스에 비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있다. '북한은 나치스와 같으니 조선학교도 없애야 마땅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반박할 수 있을 듯하다. '대한민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자인 자이니치의 인권 보호와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은 계속되어야 하며, 한국 정부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권리세 씨도 조선학교 출신이다.

조선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일반적인 일본 내 입지 내지 자이니치 사회 내에서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계기는 바로 2002년 북조선이 고이즈미 평양 방문을 즈음하여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사건이다. 조선총련 산하의 자이니치 권리 운동 단체인 재일조선인인권협회에서 일본인 납치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 것을 계기로 조선총련의 개혁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저항적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지적한다. 해방 이후 자이니치들은 일본의 차별적 내셔널리즘에 저항적 내셔널리즘으로 맞섰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과 구별되는 본국 내지 조국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다들 아는 대로민단은 한국, 조선총련은 북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한 집단이다. 문제는 세월이 지나 일본 사회의 자이니치 차별이 완화되고 북조선이 '불량 국가' 취급을 받아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조선총련의 저항적 내셔널리즘이 길을 잃은 데 있다. 저자는 이제 자이니치들이 저항적 내셔널리즘에서 탈피하여,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본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인간' 내지 '소수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있다고 해석한다. '중립 교육'을 표방한 코리아국제중고등학교의 설립이 그 좋은 예이다.

저항적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은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마지막 부분에도 등장한 바 있다. 경향신문 기자인 저자가 과연 그 책을 읽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종군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는 일부 자이니치 지식인들이 저항적 내셔널리즘의 본국을 북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꾼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말해, 일본의 과거 역사를 단죄하고 '우경화'를 비난하는 저항적 내셔널리즘은 이제 대다수 자이니치들의 일본 내에서의 생활과 권리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본 사회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내셔널리즘보다 '소수자 인권 보장'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단적으로, 자이니치의 권리 향상을 위해서는 한국의 정대협 등 위안부 관련 단체보다는 일본의 LGBT 인권 단체와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특히 보수 개신교)의 맥락에서, '순결한 소녀'를 내세우는 위안부 관련 운동과 게이 인권 운동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지만.

재일민단의 일본 내 입지를 악화시켰던 계기는 197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한 김대중 납치 사건과 1980년 신군부의 김대중 사형 선고였다. 1980년 민단은 김대중 사형 촉구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한민통'으로 상징되는 자이니치의 한국 민주화 운동 참여는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을 '독재 국가'로 멸시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조선총련과 마찬가지로 재일민단 역시 자이니치가 수행하는 '저항적 내셔널리즘'의 기지 역할을 했으며, 해마다 80억 원의 자금 지원을 한국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정부의 재외동포 지원 사업비 중 20%에 달하는 금액을 과연 민단의 경상비 지원에 쓸 가치가 있는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민단이 자이니치 전체를 얼마나 대표하는지, 그 '대표성' 자체에 점점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저항적 내셔널리즘'의 효과가 사라지면서 '본국'을 전제로 한 민단과 조선총련 양 단체의 존재 의미 또한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2006년 잠시 있었던 민단과 조선총련의 화해 분위기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반감을 표한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겉으로는 '테러집단' 취급을 받았던 조선총련의 확대를 경계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이니치 단체의 통합으로 그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자이니치 단체들 사이의 통합과 교류는 '일본의 단죄'와 '민족 통일'이라는 내셔널리즘적인 목표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정치/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통합'및 '자이니치 권리 향상'이라는 휴머니즘적인 목표 실현을 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는 읽는다.

저자는 2007년 헌법재판소의 재외국민 선거 배제 위헌 결정과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에 의한 재외국민 선거권 부여를 전형적인 내셔널리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듯하다. 자이니치를 포함한 재외국민의 투표율이 낮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으며(2012년 총선 2.5%, 대선 7.1%로 추정), 기본적으로 자이니치가 선거권을 행사해야 할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국회요 정부라는 것이다. 똑같은 논리는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정영환 교수와 같은 조선적 자이니치의 한국 입국을 막는 근거는 엉뚱하게도 남북교류협력법 10조,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 거주 동포가 남한을 왕래하려면 여행증명서를 소지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조선족 자이니치를 북한 주민으로 간주한 셈이다. 조선적 내지 '조총련계' 친북 자이니치들이 '간첩 행위'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뻔한 얘기에 대해, 자이니치 변호사는 '간첩이라면 조선적을 그대로 유지하겠는가. 당연히 한국 국적으로 바꾸거나 아예 일본에 귀화할 것이다' 라고 반박한다. 법적으로 보면 조선적 자이니치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다른 나라 사람'인 북한 주민의 한국 입국을 사전 심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일본에 생활 기반을 가지고 있는 조선적 자이니치의 입국을 사실상 전면 거부하는 것은 휴머니즘이 아니라 심지어 내셔널리즘의 관점에 있어서도 옹졸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냥 '친북 성향인 사람이 한국에 뭐하러 오냐. 북한이나 한 번 더 갈 것이지' 라는 감정이 섞인 조치가 아니겠는가.

일본으로의 귀화를 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자이니치들, 그리고 아예 한국 국적 취득도 거부하고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적 자이니치들의 선택도 물론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저항 내셔널리즘'에 반하기 때문에 한국, 북조선, 자이니치 사회 어디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송두회란 사람의 '일본 국적 회복' 운동에도 저자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일본 국적의 유지는 내셔널리즘에서 떠난 개개인의 시각으로 볼 때 재일 조선인의 당연한 권리임과 동시에 식민 모국으로서 일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2001년 특별영주자의 일본 국적 취득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사실상의 일본 국적 회복'이 시행되었으며, 그 후 점점 더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에 귀화하고 있다. 자이니치 중에서도 이제 일본 국적 취득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 에이키라는 자이니치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이니치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라고 하지만, (참정권이 없어서) 일본 사회에 영향력이 없는 2급 시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나? 이대로 시간이 가면 자이니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 국적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일제히 받는다면 자이니치 커뮤니티는 살아남는다. 자이니치는 조국이네 본국이네 하는 (저항 내셔널리즘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일본 사회에서) 지켜주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다.'

결국, 민족과 국가가 통합된 (저항)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민족과 국가를 분리한 뒤, 국가(일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민족 운동을 '소수자 인권 운동'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자이니치의 살 길이라는 얘기다. 민족과 국가의 분리는 무리한 통일 지향적 사고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내셔널리스트에게도 똑 같이 하고 싶은 제안이다. '한민족'의 문화는 남북한 공동으로 살리고 지켜 나가야 하지만, 대한민국과 북조선이라는 두 국가의 무리한 통일은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의 엄청난 '휴머니즘'적 피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에.

▶ 출처: http://blog.naver.com/neolone/2208133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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