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영국 경제주간지 The Economist에 실린 미국 대통령선거 유세전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The debasing of American politics("미국 정치의 타락" 혹은 "미국 정치의 저질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 내용은 사실 충격적이거나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 놀랄 만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거나 내 상식과 다른 통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비춰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기사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해서 사람들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1927년 프레더릭 트래셔(사회학자=역자)는 시카고 지역의 1313개 폭력조직의 역사에 관한 저술을 낸 바 있다. 폭력조직들은 하나같이 조직원들에게는 그런 대로 통하는 다양한 불문율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키는 규칙이라는 것은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것들이었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역자)나 지지자들의 행태도 다를 것이 없다. 트럼프는 이전에는 명백히 금기시되던 행태들을 버젓이 정상적인 것으로 이용함으로써 미국 정치 문화를 저질로 만들어 버렸다. (중략) 건강한 정치는 폭력배들의 싸움과는 다르다. 정치에는 타협이 개입된다. 한쪽에서 양보함으로써 다른 쪽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반대 세력들이 합의에 이르는 것이 정치다.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와 견해차가 극심한 반대파 정치인이라도 존경받을 만하고 원칙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전은 이런 생각을 경멸하고 있다. 그 결과 모든 미국인들의 삶은 악화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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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은 딱히 새롭거나 놀랄만한 통찰을 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볼 때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내게 투표권이 주어진 이후 모두 여섯 차례 대통령 선거와 아홉 차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일부는 동시에 치러졌고 내가 매번 투표를 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 위 기사의 논지를 되새겨 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국제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회사 설립 이래 70년 만에 처음으로 2011년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국내 언론에서는 S&P의 발표문 가운데 "미국이 부채 상한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는 충분하지 못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부분을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끄는 것은 S&P 발표문의 다음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미국의 정책수립 과정과 정치 질서가 가진 효율성, 안정성 및 예측가능성이 당사가 4월에 하향조정을 경고한 이후 약화됐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More broadly, the downgrade reflects our view that the effectiveness, stability, and predictability of American policymaking and political institutions have weakened at a time of ongoing fiscal and economic challenges to a degree more than we envisioned when we assigned a negative outlook to the rating on April 18, 2011.)물론 신용평가 회사들의 판단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를 예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일조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들은 어떤 나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나라나 기업 등이 빚을 갚지 못할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2011년 행태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한국에 대한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의 신용평가는 최근 크게 높아졌다. 이런 신용등급 상승은 대부분 거시경제지표, 특히 경상수지 흑자 기반 확립과 경제성장 기반 확립, 일부 산업의 높아진 국제경쟁력, 그리고 아직은 낮은 국가부채 수준 등에 따른 것이다. 다행히 이들이 한국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논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한국의 1인당 GDP(PPP기준)는 1987년 5280달러에 그쳤지만 올해에는 그 7배가 넘는 3만7948달러로 전망된다. 미국의 1인당 GDP대비 비율로 보면 1987년 불과 26%에 그쳤던 것이 올해는 미국의 66%에 달해 일본을 추월할 기세다.
하지만 다시 위에 소개한 기사의 논조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일반인들에게 금기시되는 행위나 표현을 버젓이 동원하는 정치인은 없는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그런 언행을 버젓이 일삼는다고 나까지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는 일은 없는가? 한국 정치가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