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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못난 조선, 조선의 못난개항: 우리는 어디서 실패하고 있는가


작가
문소영
출판
나남출판
발매
2013.07.05.
평점


조선은 우리의 과거다. 우리의 과거가 조선이고 우리의 조상이 조선인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조선이다. 우리의 조상에 대해 자랑스러운 부분을 강조하고 뽐내는 일은 빛나는 일이다. 그런 내용의 책을 쓴다는 것은 쉽고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은 아픈 일이고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우리 조상인 조선의 못난 부분을 파헤치는 내용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분명 환영받지 못할 일이다.

서문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우당 문형모(憂堂 文亨模, 1875∽1952)의 증손으로서 어쩌면 이 책은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노고를 가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기로 한 것은 "우리 역사의 못난 부분도 사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못난 부분을 드러내고, 왜 그렇게 됐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하고 "실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적으로 드물 뿐 아니라 과학적 원리를 잘 적용했다는 한글을 만들고 유교의 좋은 면 가운데 하나인 부모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는 문화를 보존해 온 것을 우리는 자랑으로 여긴다. 잡음은 있었지만 조선 왕조는 오랜 기간 정통성을 유지했고 어지러운 시기마다 뛰어난 학자와 정치이론가들이 등장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때로는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조선은 너무나도 힘없이 우리가 그토록 야만족으로 취급했던 제국주의 일본에 주권을 빼앗겼고 국토는 유린당했다. 이 모든 비극을 못된 일본과 순진한 조선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저자는 서론에서 "중국과 일본은 16세기 이후 급변하는 서양과 동양의 흐름에 어떤 형식으로든 소통"한 반면 "조선은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며 "이것이 19세기 제국주의적 침략 앞에 조선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더욱 취약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 여러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이 가설을 입증해 나가고 있다.

숭배의 대상이었던 명(明) 왕조가 17세기 중반 청(清)에 패망했으나 조선은 청 왕조가 오랑캐로 여겼던 만주족(滿洲族)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세운 정복왕조라는 점 때문에 2세기 넘게 청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근대화가 급속히 진전을 이루던 시기였고 청나라 역시 이런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결국 "조선이 청나라를 오랫동안 배척했다는 의미는 당대 선진 문명을 배척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당시 조선의 사상적 지배층은 실권을 잃었지만 명나라를 숭배하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면 언젠가는 명나라가 부활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고고한 사고를 유지하고 의리 있는 국가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만 있는다고 남들도 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발전하고 있었고 일본도 발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시한다고 있는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중국도 일본도 모두 야만국에 오랑캐이고 조선만이 문명국이자 중화(中華)의 적통이라는 성리학적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사이 "16세기 말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며 양명학, 고증학 등이 새롭게 대두"했으나 "조선은 이런 학문적 조류에 동참하지 못했지만, (조선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비록 자력으로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치욕스런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한민족은 이후 남과 북으로 갈려 나름대로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부분은 알기 어렵고 논할 자리가 아니지만, 최소한 남쪽에서는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경로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한민족의 우수한 역사는 강조되고 일본의 야만적인 행태는 끊임없이 비난했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민족사관(民族史觀)이라는 사조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민족사관을 통해 우리 민족이 2류 민족이 아니라는 자긍감을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는 덜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나도 이에 절대 동의한다.

물론 한국처럼 오랜 식민통치 끝에 독립한 나라의 경우 자긍심과 민족적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21세기에 일본을 넘어서려면 진실에 대한 완벽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은 명백히 옳다. 우리는 일본이 조선의 도공(陶工)들 덕분에 비로소 도자문명을 받아들였다며 비하하는 듯한 시각을 보인다. 또 옻 공예도 한반도에서 먼저 발달했다고 여기고 있다. 인삼도 역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달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 도자기를 뜻하는 일반명사로는 korea가 아니라 china가, 칠기(漆器)를 뜻하는 단어는 korea가 아니고 japan이, 그리고 인삼은 insam이 아니고 일본 발음인 ginseng이 사용되게 된 배경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우리 조상의 실패를 드러내고 이를 비난만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과거의 진실 속에서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건설적으로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공이든 실패든 역사적 사실을 공부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단순히 남들이 잘 제기하지 않는 그늘진 부분을 들춰내 조선을 욕보이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나 또한 이런 책을 보면 "좋은 얘기도 많은데 왜 이런 어두운 얘기를 끄집어 내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남의 우수함에서 비결을 얻지 않는 민족이라면 그 미래는 절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책과 함께 동일 저자의 책 『조선의 못난 개항』(역사의아침, 2013.02.28, ISBN 9788993119589)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이 글도 두 책을 모두 읽은 뒤 쓴 것임을 밝혀 둔다. 끝으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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