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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경제사의 재해석: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다시 분석해 본다

한국 경제의 성장 궤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명목 달러 기준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한국전쟁 마지막 해인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16년 2만7천달러를 넘어 411배로 증가했다. 세계은행이 2010년 달러 가치로 계산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952달러에서 2015년 2만5천달러로 26배로 늘었다.

분명히 한국 경제의 성장은 세계사적으로도 이변이라고 할 만하다. 당연히 이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성립된 이론은 전통설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런 전통설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들에게 제시됐고, 우리는 어느덧 전통설에 익숙해지고 모든 것을 그런 이론에 근거해 이해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설명은 한국 경제의 비정상적인 성장 궤적에 대해 사후적인 설명에 치중하거나 짜맞추기식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더구나 조선의 몰락에서부터 독립 후 산업화의 시작 시기까지 60여 년에 대한 연구는 충분치 않았다. 그것은 이 기간이 한국인들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로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는 "이랬을 것이다", 혹은 "그랬을 수가 없다"라는 식의 선입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기간이 일본의 식민통치 시기였다는 점, 일본이 극도로 억압적인 통치를 했다는 점, 혹은 성공한 사업가는 친일 반역세력이 틀림없다거나 하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판단을 배제한 순수한 사료와 통계에 기초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김두얼(명지대학교 교수)의 책 『한국경제사의 재해석』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거부하고, 다양한 통계와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 식민통치 기간과 독립 후 첫 20년간의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이 기간의 한국 경제사에 대한 연구가 "정치 또는 이데올로기의 소산이거나, 국수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정서의 표출인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편견에 영향을 받은 많은 기존 연구 결과 정립된 논리는 지금껏 이른바 전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전통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연구는 당연히 쉽지 않은 과정이다. 어떤 의문은 민족주의 내지 국수주의적 차원에서 비난받기도 하고, 어떤 의문은 상식 내지 정치적 편향에 사로잡힌 집권세력으로부터 매도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저런 사정을 빼고 순수하게 통계와 사료에 근거해 연구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로버트 포겔(Robert Fogel)과 스탠리 앵거만(Stanley Engerman)이 1971년 간행한 『미국경제사의 재해석(Reinterpretation of American Economic History)』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연구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이 "정치적 지향이나 이데올로기, 과거의 선험적 믿음이 아니라 엄밀한 이론과 방대한 자료 수집 그리고 치밀한 분석에 기초해서 미국 경제의 과거를 새롭게 해석한 연구 결과들을 제시함으로써 미국경제사 나아가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소개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바를 잘 대변한다고 하기 때문에 소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사의 재해석』은 저자도 밝혔듯 처음부터 한 편의 책으로 저술됐다기보다는 과거에 간행한 글들을 번역ㆍ축약ㆍ수정ㆍ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나처럼 경제학이나 경제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전통설이 설명하지 못하는 의문점을 설명하기 위해 선입견을 배제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잘 나타내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의문을 제시하고 새로운 설명을 찾아보려고 노력한 주제는 모두 한국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는 우선 일본 식민통치 기간 중 한국의 경제 발전은 보잘것없으며, 그것도 일본인 및 일본 자본을 제외하면 아주 열악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도전한다. 그는 또 한국의 산업화와 고도성장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정책 추진 때문에 가능했다는 전통설에도 도전한다.

또 한국전쟁 기간 및 그 이후 이루어진, 미국을 위시한 주요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엄청난 규모였으며 그런 원조 덕분에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통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원조는 한국 경제 규모나 다른 관련 지표에 비교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며, 고도성장을 원조와 연계해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렇게 충분한 통계와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기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앞의 6개 장이 과거사를 재설명하는 의미가 있다면 제7장 "중간재의 생산과 교역"은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가 앞으로 후퇴하지 않고 성장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한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있어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한다.

즉, 제7장에서 저자는 "우리나라가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분업 체계 속에서 중간재를 수입해서 더 높은 수준의 중간재를 소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음"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즉, 중간재 수입이 크다는 통계 하나만을 가지고 한국 경제가 "대외의존적이다"라고 매도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이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부터는 과거와는 달리 "기술 개발만큼이나 디자인, 홍보 등 서비스 분야의 중간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서비스업 분야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은 과거와 같은 접근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나라가 극복해야 할 장벽은 녹록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대목은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앞에서 소개했듯, 이 책은 여러 연구 보고서를 보완해 수록한 묶음집으로 연구 보고서 여러 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철저히 통계와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어서 그림과 통계 자료가 많이 언급된다. 하지만 웬만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만에 읽기 충분한 분량이고 서술도 군더더기 없이 되어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세계은행이 2010년 달러 가치 기준으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본,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 변화 추이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여기서는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을 100으로 환산해 이후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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