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1

(보고서) 화웨이 문제와 사드 문제의 세 가지 다른 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보고서 내용으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글을 본 블로그에 공유하는 것은 필자가 반드시 보고서의 결론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며, 배경 정보가 참고할 가치가 있고 이 사안을 보는 다양한 시각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보고서를 공유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된 미중 간 패권경쟁이 단순한 무역경쟁을 넘어서 기술, 군사 등 모든 영역으로 확전됨에 따라 미중관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정부의 기민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제2의 사드” 사태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는 외교부에 미중관계 전담조직 설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출처: reuters.com)
미중 간 패권경쟁이 향후 국제질서와 한반도 정세를 좌우하게 될 가장 중요한 구조적 요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미중경쟁 격화로 인해 한국이 마주할 외교적 딜레마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간 패권경쟁은 미중 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히 리스크이지만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미중 두 나라의 대한반도 영향력 경쟁은 북미관계 및 한중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으며, 미국의 집요한 대중견제는 첨단산업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한국기업에게 반사이익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중 패권경쟁 격화가 초래할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면서 동시에 이를 선용하여 우리의 외교적 자율성을 증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중 간 무역분쟁은 결렬과 봉합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며,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양국의 상호 경제 의존도를 고려할 때 세계경제를 붕괴시킬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둘러싼 긴장, 신형무기 개발 등 군사적 경쟁도 격화되는 추세이지만 양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억제될 것이다.

다만, 5G 등 기술 분야는 미래 세계패권의 결정적 요소로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현안도 바로 이 지점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국이 설정하는 기술 표준을 수용하라고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웨이 이슈는 사드 문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며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도 훨씬 넓다.

(출처: reuters.com)
첫째, 사드 배치는 한미, 한중 양자 간 현안이었지만 화웨이 이슈는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관련된 다자간 이슈이다. 화웨이사에 대한 제재는 미국이 모든 동맹국과 우방국에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화웨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 결정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조차도 화웨이사 장비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핵심 부품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개별국들의 화웨이 제재 동참 수위를 보아가며 대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 국가만을 겨냥한 차별적 보복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또한 가장 긴밀한 동맹국인 영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화웨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러한 국가에 개별적인 불이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2015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자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이 영국의 뒤를 따랐는데, 미국은 AIIB에 가입한 동맹국에 제재를 부과하지 않았다.

둘째, 사드 문제가 배치 허용 또는 불허의 양자택일적 사안이었다면 화웨이 이슈는 수입 측면에서는 화웨이사 장비 사용의 완전 배제부터 일부 허용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며, 공급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 입장은 5G 보안문제에 대한 검증을 지속하면서 민간 부문은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성급히 결정하기 보다는 앞으로 유사한 입장인 국가들의 동향을 보아가며 화웨이사에 대한 제재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 패권경쟁이 군사, 기술 등 모든 영역으로 확전됨에 따라 앞으로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이슈가 점증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정부가 나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번 화웨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기술과 표준 경쟁에서는 민간 영역이 철저히 경제적 이익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는 원칙과 선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사드는 철저히 군사적 이슈였다면 화웨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경제, 기술적 사안이다, 또한 사드 배치는 비록 우리의 토지공여가 있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위험에 대응해 주로 주한미군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북한의 위협 및 한미동맹 관계를 고려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슈이었다. 그러나 통신장비의 선택은 이보다는 훨씬 주관적 사안으로 이해된다. 일차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인 분쟁의 당사자이며, 주한 미군과 한미동맹의 보안 취약성 문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적 이익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미중 패권경쟁의 핵심적 문제로 부각한 화웨이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언론과 전문가들이 사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화웨이 이슈에 대해 “제2의 사드” 사태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우리 정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중국은 한국 언론의 보도에 착안하여 제2의 사드사태 가능성을 우리 측에 경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미국과 핵심정보를 공유하는 소위 5-Eyes 국가도 최종적 입장을 결정하지 않은 문제가 한국에서 핫이슈로 부각되자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형국이다. 이에 미국도 국내 통신사들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공동 주최한 공개 콘퍼런스(2019.6.5.)에서 “5G 이동통신은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물론 언론, 산업, 학계에서도 5G 보안 문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화웨이 이슈에 “제2의 사드”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입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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