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개인적으로 고지서를 받고 정해진 기간에 금융기관이나 행정기관에 세금을 납부할 때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 대금을 납부할 때 대신 세금을 내고 있다는 점을 매번 느끼지는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우리가 세금을 대신 납부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세금을 내고 있으므로 누구나 세금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어떤 형태든 주거하므로 주택(시장)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잘 모르거나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가진 것처럼, 우리는 대부분 세금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다. 잘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심각한 문제다.
주택의 경우는 그래도 매매나 임대차 시 큰돈이 오가므로 대부분 일시적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정보를 찾지만, 세금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다. 규모가 큰 직접세 납부의 경우가 아니라면 일일이 정보를 새로 찾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피할 수 있는 방도도 적기 때문이다. 세금을 징수하는 정부로서도 세금에 대해 일일이 알려줄 필요가 없거나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납세의 의무는 헌법에 규정돼 있으며 '잘 모르게' 해 놓을수록 편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나처럼 일반인이 '세금 문제'를 논하는 일은 행성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 달이나 토성의 위성에 대해 논하는 것만큼 부질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고마운 책을 만났다.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진다면'이라는 부제를 단 《(장제우의) 세금수업》이 그 책이다. 책날개에 있는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독립민간연구소의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많은 기관에서 대중 강연을 진행해왔"으며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국가 간의 세밀한 통계적 비교를 바탕으로 탄탄한 연구 세계를 구축했"다. 저자는 또 "IMF 시기 대학을 중퇴했으며, 이후 여러 공장들의 생산직 일자리를 경험했다. 현실 경제 한복판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얻은 날카롭고 창조적인 관점과 통찰력은 많은 독자들의 호응과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소개문에 의하면 저자는 '집 → 학교 → 학원' 코스만 돌며 지식을 습득한 학자는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책으로 세상을 배운 전문가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현실 세상의 실상과 이론을 고루 갖추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세금과 관련된 잘못된 신화를 제시하고 그 신화를 깨려고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이후에 벌어진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당시 외환위기를 'IMF 외환위기'라든가 'IMF 위기', 혹은 'IMF 사태'라고 부르거나 그냥 'IMF'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실상은 한국의 대외 부도 직전에 IMF가 주도해서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한국은 IMF가 제시한 경제 구조 개선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IMF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억울할 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IMF'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접어 두자.
저자는 당시 중산층의 대대적인 몰락에 대해 "국가 경제가 너무도 충격적인 타격을 입었으므로, 몰락하는 이들이 대거 속출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라 받아들였"지만 "이런 체념적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근거도 부족한 고정관념이다"라고 꼬집는다. 그것은 숙명이 아니고 "경제위기 전부터 형편없었던 (한국의) 사회연대로 말미암아 위기 때 불어나는 취약계층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사회연대'의 제도적 측면은 세금과 복지제도를 들 수 있다. 저자는 모든 걸 외환위기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충격을 가한 건 외환위기가 맞지만, 그 충격의 피해 정도와 양상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세금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한국에서 흔히 통용되는 잘못된 믿음 중 또 하나로 저자는 대학 등록금을 든다. 즉,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비싸다는 인식은 크게 보면 잘못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이들까지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너도나도 대학을 갔던 현실"이 강조되지 않고 있으며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났던 수준 미달의 대학들과 한국의 유달리 높은 대학 진학률, 그리고 지나치게 낮은 '1인당 GDP 대비 고등교육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무턱대고 등록금 인하를 주장해온 한국의 대학생 및 시민단체들"은 "보편적인 세금 인상을 터부시하는 가운데 본디 비싸기 마련이며, 여타 국가들에 비해 비싸다고 보기도 어려운 '학비'를 내려야 한다고 다분히 억지를 부려왔던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한국에서 널리 퍼진 세금 및 복지와 관련한 잘못된 이론들을 차례로 파헤쳐 그 실상을 공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공개할 위험 때문에 상세히 소개하지는 않지만, 통계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소비하는 과정에 걸쳐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이른바 '무상'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름을 붙여 복지 제도를 만들고, 이를 두고 정치권이나 몇몇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이비 학자들이 벌이는 정치 놀음의 민낯을 공개하는 부분도 뛰어난 저자의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의 결론을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세금은 있는 자들에게 걷어서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측면에서 그치면 안 되며, 모두가 세금을 내고 그렇게 해서 걷힌 돈은 '공동체의 연대'를 굳건히 하는 데 쓰인다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설명은 쉽게 와닿는다.
세금과 세금 제도, 그리고 복지와 복지 제도를 논하는 자리에 끼려면 꼭 이 책부터 읽어볼 것을 권한다.
⟪후기⟫
복지 제도를 논할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는 모범사례로 북유럽 소국들인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가 등장하곤 한다. 이 책에도 당연히 이들 3국이 등장한다.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인 데다가 세계적으로도 조세와 복지 제도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나라이므로 이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도 전혀 다른 특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역사, 문화, 국민성, 경제 구조 등의 차원에서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큰 이들 나라와 한국을 비교할 때 어떤 부분에서 조심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아래 그림은 덴마크, 핀란드, 한국,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변화 추이를 보여 준다. 그림에서 보듯 한국의 1인당 GDP는 1970년 미국의 12%에 불과했으나 이후 한두 차례만 제외하고 줄곧 놀라운 성장을 기록해 최근에는 60%를 넘겼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 자체로도 특수한 사례란 뜻이다. 반면, 나머지 3국은 이미 1970/80년대부터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GDP를 달성했으며, 이후에도 놀랄 만큼 높은 수준을 이탈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또, 아래 그림은 인구 규모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 인구 규모 면에서 핀란드는 1960년 한국의 17.7%에 그쳤고 덴마크는 18.3%, 스웨덴은 29.9% 수준이었다. 그 뒤로 2012년까지 한국의 인구는 두 배로 늘었지만, 나머지 3국은 인구가 더디게 늘어 한국과 비교한 상대 규모는 더욱 작아졌다. 핀란드는 최근 통계에서 한국 인구의 10.8%에 그쳤고 덴마크는 11.2%, 스웨덴은 19.0%로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인구 규모가 작아졌다. 이렇게 극도로 작은 규모의 나라들이어서 경제 지표를 비교할 때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구 이동면에서도 한국은 이들 3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아래 그림은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및 국외출생 인구 비중을 나타낸다. 한국의 외국인 인구 비율은 2%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나머지 3국은 모두 한국보다 높으며,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은 이 비율이 8%를 넘는다. 더구나 국외출생 인구 비율은 스웨덴의 경우 18%나 된다. 한국의 비교 통계가 없지만, 이들 나라보다 크게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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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수업(장제우의)》
부제: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진다면
저자: 장제우
출판: 사이드웨이
발간: 2020.01.31.
페이지: 216
ISBN: 979119634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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