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을 분류할 때 conservative는 '보수'로, liberal은 '진보'로 흔히 구분한다. 하지만, 정치ㆍ윤리학에서 liberalism은 '자유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한다. 인류는 지난 2차대전 이후 80년간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약 3세대에 걸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거의 모든 지역의 대표적인 정치 질서를 이루다 보니 대부분 다른 체제는 열등한 것으로 여기거나 체감을 못 하는 경향이 있다.
공산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일부 지역에서 지배하고 있으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대부분 지역에서 장기간 절대우위를 차지하다 보니 우리 기억에는 마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늘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이라면 3세대가 넘는 시간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세대에 속하는 대부분의 현대인의 기억 속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제 이대로 두어도 영원히 세계의 주도적인 체제가 되리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은 자신의 저서 『The Jungle Grows Back』에서 강조한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였던 케이건은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경선 승리에 실망해 전격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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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ungle Grows Back
(부제 America and Our Imperiled World)
저자 Kagan, Robert
출판 Knopf Publishing Group
발행 2018.09.18
쪽수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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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은 이 책은 그림도 없고 숫자도 별로 등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장(chapter)의 구분도 없다. 그냥 한 편의 칼럼처럼 쓴 글이어서 시간을 좀 내면 하루 이틀 만에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이 책은 전 세계를 정원으로 비유하면서 아무리 잘 꾸며진 정원이라도 그대로 두면 다시 자연의 무자비한 힘에 눌려 험악한 정글로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됐다.
앞의 세계 정치 질서 얘기로 돌아가 보자. 현재는 장기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기반도 공고해 보이지만 시계를 한 1세기 앞으로만 당겨서 20세기 시작 때부터 생각해 봐도 상황은 크게 달랐다. 당시 미국은 신생국이었으며 세계 패권은 여러 제국이 쥐고 있었다. 정치 체제도 자유민주주의는 자리 잡지 않고 있었으며, 지금처럼 공고한 평화 공존의 시대는 아니었다.
다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시의 세계 질서도 나름대로 공고히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가 다수였다.
그러다가 인류는 1차 세계대전을 맞아 비극적인 4년을 보냈고, 이후 여기저기서 반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각국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대부분 재빨리 가라앉았고, 인류는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일본 군국주의 등에 명운을 맞기는 신세가 됐다.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위력을 처음에는 다들 실감하지 못하다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저자는 오늘날의 공고해 보이는 자유민주주의 우세 정치 지형도 잘 가꾸어 놓은 정원처럼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질서하고 험악한 정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과거 사례를 잘 들어가면서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잘 나타내는 구절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인간은 역사상 줄곧 자유를 갈망해 왔으며, 이러한 보편적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를 압도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 믿음은 인류 역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인류는 그와 함께 질서와 안전을 갈구하며, 따라서 혹시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지도자라도 질서와 안전을 제공한다면 그러한 지도자를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p151)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 자유, 피지배자의 동의, 정치적 평등,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 및 법 앞의 평등에 기초한 정치ㆍ윤리적 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지지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유 재산, 시장 경제, 개인의 권리(시민권 및 인권 포함), 세속주의, 법치주의, 경제 및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을 지지한다.
케이건은 우리가 오래 자유민주주의의 품 안에서 지내다 보니 자유민주주의가 언제든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으며, 마치 우리 인간이 너무도 현명해서 자유민주주의를 해칠 정치인이 나오면 그를 배척할 것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그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