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블로그 검색◀

(보고서) 연준 과잉긴축 가능성 논의의 요점은 '실기' 여부보다 '관성'이 중요

세계 주요국 통화정책은 다른 경제정책보다 모든 경제주체들에 거의 무차별적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금융시장을 통해 다른 가격변수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중앙은행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 결정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항상 '실기'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뜻이리라.

아무리 정보의 흐름이 과거보다 빨라졌다고는 해도 경제 활동을 집계하고 분석해서 함축적인 시사점까지 도출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으로서는 어떤 추세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봐야 하는 문제도 있다. 중앙은행을 두둔하자면 결국 실기할 수밖에 없는 속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잘 설명하는 보고서가 KB증권에서 발간돼 소개한다. 『통화정책의 관성과 과잉긴축』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저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이렇듯 실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의 이면에는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방향을 바꾸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관성'을 지적한다. 결국 내년에도 미국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이런 통화정책의 '관성'을 고려할 때 미국보다 7개월 일찍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2021년 8월)한 한국은행의 혜안이 돋보이지만, 당시 한국은 주택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사정을 덧붙이고자 한다. 즉,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빠르게 높아지고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뒤따라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리라고 예상하기도 했겠지만, 한국은행도 사실상 코로나19 사태로 '실기'한 측면까지 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주열 당시 한국은행 총재가 2021년 8월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사진 출처: 이데일리)

보고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기준금리가 경제의 변화보다 뒤늦게 결정되면 중앙은행이 실기했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된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상승했지만 연준이 2022년 3월이 되어서야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기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적의 의사결정 시기보다 늦었기에 실기했다'는 비판은 최적의 의사결정 시점이 존재함을 가정한다. 

객관적인 통화정책 의사결정의 기준은 테일러 준칙이다. 테일러 준칙은 미국 경제의 명목 중립금리, 인플레이션 갭 성장률 캡에 기반해 적정 기준금리를 제시한다. 2021년을 예로 들면, 테일러 준칙에 따르면 적정 기준금리는 6% 수준이었다(다양한 종류의 준칙과 그에 따른 가정에 따라 편차 존재). 그렇다면 연준이 준칙대로 2021년에 기준금리를 6%까지 인상했어야 실기하지 않은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비판이다. 통화정책은 본래 기존의 정책을 유지하려는 관성(inertia)이 있고, 그 관성이 정책 효과를 제고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관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들은 다양하다. 정책이 급변할 경우에는 경제 주체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있으므로 점진적인 통화정책 변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English et al. 2003). 기준금리를 일반적으로 25bp 단위로 조절하는 것도 예측 가능성과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고 통화정책의 길고 가변적인 시차를 감안하면, 기준금리 방향성을 급격히 선회하지 않는 것이 최적의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 Woodford 1999). 

마지막으로 경제 주체들이 경제 상황과 통화정책을 완벽히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응적 학습(adaptive learning)에 따른다면, 최적 의사결정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은행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통화정책의 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통화정책회의가 대표적이다. 투표 절차가 컨센서스를 유도하므로 보수적인 결정, 즉 현재 정책 스탠스를 유지하는 성항이 강해진다. 중앙은행 위원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도 분석이 활발하다. 

중앙은행 위원들은 명성이나 커리어에 민감한 인사들이다. 따라서 정책 방향성을 급격히 수정해야 한다고 설령 판단하더라도, 올바른 결정을 내렸을 때보다 그 결정이 틀렸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지는 손실 회피 성향이 작용한다면 현재 통화정책 스탠스에서 크게 벗어나는 의견을 내기가 어럽다.

정리하자면 통화정책이 기존의스탠스를 유지하려는 경향, 즉 관성은 통화정책 구조가 컨센서스를 유도하거나 개인적인 득실을 따지는 경우에도 발생하지만 정책 효과가 잘 발휘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관성이라는 변수는 테일러 준칙의 우변에 전기의 기준금리(Rt-1)와 그 계수 (보통 0.85)로 표현된다. 

다시 2021년으로 돌아가 고전적인 테일러 준칙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6%로 인상하는 것이 적합한 전략일 수 있지만, 관성을 감안하면 1% 초반대의 기준금리가 적정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따라서 연준이 2021년에 기준금리를 6%까지 올리지 못해서 실기했다는 비판은 다소 과하다. 대신 2021년에 기준금리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시작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2024년은 정반대의 관성이 작용할 전망이다.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요인은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겠지만, 연준은 data-dependent 기조로 성급한 정책 기조 변경을 경계할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기준금리가 편더멘털 대비 높은 과잉긴축의 구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경제에 유의미한 충격이 발생하는 시기에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전망이다. 연준이 선제적으로 인하하지 못하면서 늘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또다시 나오겠지만, 그것은 실기보다 관성에 가까운 결과일 것이다.



★★★★★ ★★★★★

▶최근 7일간 많이 본 글◀

태그

국제 경제일반 경제정책 경제지표 금융시장 기타 한국경제 *논평 보고서 산업 중국경제 fb *스크랩 KoreaViews 부동산 책소개 트럼포노믹스 일본경제 뉴스레터 tech 미국경제 통화정책 공유 무역분쟁 아베노믹스 가계부채 블록체인 가상화폐 한국은행 환율 원자재 국제금융센터 외교 암호화페 AI 북한 외환 중국 반도체 미국 인구 한은 에너지 인공지능 정치 증시 하이투자증권 논평 코로나 금리 자본시장연구원 연준 주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출 중동 산업연구원 생성형AI 채권 한국금융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 일본은행 BOJ 자동차 칼럼 ICO 국회입법조사처 한국 KIEP 미중관계 삼성증권 세계경제 신한투자증권 에너지경제연구원 우크라이나 인플레이션 전기차 지정학 IBK투자증권 TheKoreaHerald 분쟁 브렉시트 현대경제연구원 BIS CRE IT KB경영연구소 KB증권 KIET NBER OECD 대신증권 무역 미국대선 배터리 상업용부동산 수소산업 원유 유럽 유진투자증권 자본시장 저출산 전쟁 ECB EU IBK기업은행 IEA LG경영연구원 PF PIIE 공급망 관광 광물 규제 기후변화 로봇 로봇산업 보험연구원 비트코인 생산성 선거 신용등급 신흥국 아르헨티나 연금 원자력 유럽경제 유안타증권 유춘식 이차전지 자연이자율 중앙은행 키움증권 타이완 터키 패권경쟁 한국무역협회 혁신 환경 AI반도체 Bernanke CBDC CEPR DRAM ESG HBM IPEF IRA ITIF KDB미래전략연구소 KISTEP KOTRA MBC라디오 NIA NIPA NYSBA ODA RSU SNS Z세대 iM증권 경제안보외교센터 경제특구 경제학 고용 골드만삭스 공급위기 광주형일자리 교역 구조조정 국민연금 국제금융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국제유가 국회미래연구원 국회예산정책처 넷제로 논문 대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독일 동북아금융허브 디지털트윈 러시아 로슈 로이터통신 말레이시아 머스크 물류 물적분할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방위산업 버냉키 법조 복수상장 부실기업 블룸버그 사회 삼프로TV 석유화학 소고 소비 소통 수출입 스테이블코인 스티글리츠 스페이스X 신한금융투자증권 싱가포르 씨티그룹 아이엠증권 아프리카 액티브시니어 양도제한조건부주식 예금보험공사 외국인투자 원전 위안 유럽연합 유로 은행 이승만 인도 인도네시아 인재 자산관리서비스 자산운용업 잘파세대 재정건전성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주간프리뷰 중립금리 참고자료 철강 코리아디스카운트 코스피 테슬라 통계 통화스왑 통화신용정책보고서 트럼프 팬데믹 프랑스 플라자합의 피치 하나증권 하마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해리스 해외경제연구소 홍콩 횡재세 휴머노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