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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연준 과잉긴축 가능성 논의의 요점은 '실기' 여부보다 '관성'이 중요

세계 주요국 통화정책은 다른 경제정책보다 모든 경제주체들에 거의 무차별적 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금융시장을 통해 다른 가격변수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중앙은행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정책 결정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항상 '실기'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뜻이리라.

아무리 정보의 흐름이 과거보다 빨라졌다고는 해도 경제 활동을 집계하고 분석해서 함축적인 시사점까지 도출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으로서는 어떤 추세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봐야 하는 문제도 있다. 중앙은행을 두둔하자면 결국 실기할 수밖에 없는 속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잘 설명하는 보고서가 KB증권에서 발간돼 소개한다. 『통화정책의 관성과 과잉긴축』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저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이렇듯 실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의 이면에는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방향을 바꾸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관성'을 지적한다. 결국 내년에도 미국 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이런 통화정책의 '관성'을 고려할 때 미국보다 7개월 일찍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2021년 8월)한 한국은행의 혜안이 돋보이지만, 당시 한국은 주택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사정을 덧붙이고자 한다. 즉,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빠르게 높아지고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뒤따라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리라고 예상하기도 했겠지만, 한국은행도 사실상 코로나19 사태로 '실기'한 측면까지 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주열 당시 한국은행 총재가 2021년 8월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사진 출처: 이데일리)

보고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기준금리가 경제의 변화보다 뒤늦게 결정되면 중앙은행이 실기했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된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상승했지만 연준이 2022년 3월이 되어서야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기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적의 의사결정 시기보다 늦었기에 실기했다'는 비판은 최적의 의사결정 시점이 존재함을 가정한다. 

객관적인 통화정책 의사결정의 기준은 테일러 준칙이다. 테일러 준칙은 미국 경제의 명목 중립금리, 인플레이션 갭 성장률 캡에 기반해 적정 기준금리를 제시한다. 2021년을 예로 들면, 테일러 준칙에 따르면 적정 기준금리는 6% 수준이었다(다양한 종류의 준칙과 그에 따른 가정에 따라 편차 존재). 그렇다면 연준이 준칙대로 2021년에 기준금리를 6%까지 인상했어야 실기하지 않은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비판이다. 통화정책은 본래 기존의 정책을 유지하려는 관성(inertia)이 있고, 그 관성이 정책 효과를 제고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관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들은 다양하다. 정책이 급변할 경우에는 경제 주체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있으므로 점진적인 통화정책 변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English et al. 2003). 기준금리를 일반적으로 25bp 단위로 조절하는 것도 예측 가능성과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고 통화정책의 길고 가변적인 시차를 감안하면, 기준금리 방향성을 급격히 선회하지 않는 것이 최적의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 Woodford 1999). 

마지막으로 경제 주체들이 경제 상황과 통화정책을 완벽히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응적 학습(adaptive learning)에 따른다면, 최적 의사결정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은행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통화정책의 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통화정책회의가 대표적이다. 투표 절차가 컨센서스를 유도하므로 보수적인 결정, 즉 현재 정책 스탠스를 유지하는 성항이 강해진다. 중앙은행 위원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도 분석이 활발하다. 

중앙은행 위원들은 명성이나 커리어에 민감한 인사들이다. 따라서 정책 방향성을 급격히 수정해야 한다고 설령 판단하더라도, 올바른 결정을 내렸을 때보다 그 결정이 틀렸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지는 손실 회피 성향이 작용한다면 현재 통화정책 스탠스에서 크게 벗어나는 의견을 내기가 어럽다.

정리하자면 통화정책이 기존의스탠스를 유지하려는 경향, 즉 관성은 통화정책 구조가 컨센서스를 유도하거나 개인적인 득실을 따지는 경우에도 발생하지만 정책 효과가 잘 발휘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관성이라는 변수는 테일러 준칙의 우변에 전기의 기준금리(Rt-1)와 그 계수 (보통 0.85)로 표현된다. 

다시 2021년으로 돌아가 고전적인 테일러 준칙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6%로 인상하는 것이 적합한 전략일 수 있지만, 관성을 감안하면 1% 초반대의 기준금리가 적정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따라서 연준이 2021년에 기준금리를 6%까지 올리지 못해서 실기했다는 비판은 다소 과하다. 대신 2021년에 기준금리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시작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2024년은 정반대의 관성이 작용할 전망이다.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요인은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겠지만, 연준은 data-dependent 기조로 성급한 정책 기조 변경을 경계할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기준금리가 편더멘털 대비 높은 과잉긴축의 구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경제에 유의미한 충격이 발생하는 시기에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전망이다. 연준이 선제적으로 인하하지 못하면서 늘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또다시 나오겠지만, 그것은 실기보다 관성에 가까운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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