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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1st Century Monetary Policy: 미래 연준이 마주할 도전과 대응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만 읽으면 미국과 주요국 금리 방향을 곧바로 알 수 있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가면서 계속 지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울 때 지도를 보듯, 이 책을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믿고 본 블로그 독자들에게 이 책(벤 S 버냉키의 『21st Century Monetary Policy』, 이하 '이 책')을 권한다.

날씨 정보만큼이나 자주 경제 기사를 읽을 정도로 경제 상황에 관심이 있거나 경제 상황을 알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이전 작품인 『The Courage to Act』(이하 'Courage')를 건너뛰고라도 이 책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노벨상 수상 후 메달을 들고 있는 버냉키. 사진 출처: www.nobelprize.org)

닷컴 버블 붕괴와 미국 주요 시설에 대한 9.11 공격,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굵직굵직한 사태로 혼란스럽던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과 연준 의장에 오른 버냉키는 첫 임기 중 2007-2009 미국 부동산 금융 부실에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를 맞이했고 위기가 한창일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연임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부시 대통령과 다른 정당 소속이지만 과거 전통이나 금융위기의 심각성 등을 고려해 버냉키를 연임시킨 것이다. 결국 그는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필립 H 딥비그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이유는 연준 통화정책 방향과 배경 상황, 그리고 그에 대한 연준 정책 결정권자들의 인식을 알지 못하면 눈을 가리고 경제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 목표를 정하면 미국 내 자산 가격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다른 나라 환율과 자본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각국의 정책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행히 미국 통화정책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연준 의장은 여러 방식으로 여러 차례 연준과 금리 목표를 최종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경책 결정자들의 생각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당장 설명하기 어렵거나 시간이 지나서 정리할 수 있는, 그러나 어쩌면 이미 공개된 내용보다 훨씬 중요한 정보도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1960년대 중반 시작된 대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상황을 다룬 1부, 21세기 시작부터 2013년 긴축 발작(Taper Tantrum) 사태까지를 다룬 2부, 이후 경제 회복기부터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까지를 다룬 3부 등으로 나누어 연준의 활동 내용과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4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연준 통화정책의 이론적 배경과 과제 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책 내용을 최대한 공개하지 않고 이 책을 권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연준이 한국 통화정책 수립 절차 및 목표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이해할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법은 연준과 FOMC는 "최대 고용, 안정적 물가, 그리고 적당한 장기금리 수준 달성이라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경제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에 상응하는 통화 및 신용 총량의 장기적 증가세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한은 통화정책 목표와 많이 다르다. 한은법은 한은 통화정책 목표와 관련해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양국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경우 '최대 경제 성장을 위해 통화 및 신용 총량의 적정한 증가'를 목표로 하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 '금융안정에 유의'하면서 '재정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부분은 미국 연준의 경우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과 통화정책 여력 소진을 가장 우려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짧고, 그마저도 변형된 형태로 자본주의 제도를 시행한 나라의 경우 보통 인플레이션이 제일 무섭고 인플레이션은 낮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은 높을 때보다 낮을 때가 더 문제라는 인식이 명확히 공유되고 있다.

여러 가지 구조적 이유로 중립이자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적정 정책금리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여력이 제한된다는 점을 줄곧 고민하는 내용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극심한 경제 침체기에 정책금리를 5~6%p 인하해야 한다는 분석이 있는데, 중립금리 수준이 계속 낮아지면 정책금리가 3%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유사시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한국 내에서 통화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물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인플레이션은 '관리'하는 것이지 '억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경제성장을 바라면서도 성장을 최우선시하는 정치 세력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풍토가 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성장을 극대화하고, 그 결과 국민들의 후생이 증진되는 것이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 한국에서는 정의감 넘치며 약자를 보듬고 민족 번영에 이바지하는 등의 듣기에만 좋은 여러 목표를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성장이 최고의 복지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수치로 평가할 수 있으며 간단히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개념 하나에도 수백만 명이 편을 갈라 다투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개념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과 함께 이 책에서 드러난 연준의 고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같이 '전통과 관행'에서 벗어난 정치 상황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버냉키는 여러 곳에서 "연준법은 의회가 언제든 개정할 수 있는 점이 사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를 통해 버냉키는 행정부 및 입법부와 연준이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다른 글에서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지닌 여러 장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버냉키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장점 하나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버냉키 같은 성공적인 정책 책임자가 글도 잘 쓰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보면 줄곧 여러 사람이 실명으로 언급된다. 당연히 본인에게 확인한 뒤 책에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쪼록 연말연시를 맞아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두께도 적당하고 글이 매끄러워서 술술 읽히는 편이다. 

《책 정보(영문 페이퍼백을 기준으로)》


  • Title: 21st Century Monetary Policy: The Federal Reserve from the Great Inflation to COVID-19
  • Publisher: W. W. Norton & Company; Reprint edition (May 16, 2023)
  • Language: English
  • Paperback: 528 pages
  • ISBN-10: 1324064870
  • ISBN-13: 978-132406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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