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준에는 미달하지만,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패권 세력으로 떠올랐다. 냉전 시기 전략적 선택으로 중국의 가난 탈출과 시장 경제 체제로의 편입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미국은 이제 패권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여러 기준으로 보아 패권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작은 한국은 과연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 패권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지난 29년간 외신 기자로 한국 경제와 경제 정책, IT 산업, 그리고 국제 통상과 금융 관계를 담당한 경험과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이 주제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달 없는 밤, 짙은 안개가 내린 산속 길을 내비게이션이 없는 낡은 소형차를 운전하며 나아가는 듯한 막막함을 느낄 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이나 내가 속한 세대와 성장 배경 등을 통해 굳어진 나 나름의 큰 선택 기준은 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이나 내 자식들의 앞날에 한국이 중국 패권에 편입되거나 북한 세력에 포함되는 것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민족이나 혈연, 전통이나 합의되지 않은 정의감 따위보다는 인간답고 자유로우며 풍요한 삶을 더 중요시한다.
처음 소개한 주제로 돌아가 보자. 국제 관계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는 국민 다수가 자유와 풍요, 그리고 인권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사정을 보면 이런 의견이 압도적인지는 확실치 않다. 외교 노선을 두고 집권 세력에 따라 거창한 표현들이 여럿 등장했었다. 그러나, 달콤하고 거창한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후생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 패권 경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하지만, 일부 '운명론자'나 '노이즈 마케터'들을 제외한다면, 3차 세계대전 불가피설을 주장하는 학자나 외교 전문가들도 대부분 파국은 피해야 하며, 피할 시간이 아직 있다는 쪽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패권국만의 노력으로는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파국을 피한다고 해도 새로 형성될 국제 관계는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패권국이 아닌 한국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단 하나의 답은 누구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세계대전이 발생하든, 아니면 세계대전은 다행히 모면하더라도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든, 한국은 방관자가 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은 이미 중대한 몇몇 국제 체제에 깊숙이 끼어 있다. 경제적으로 세계 주요국이며, 일부 첨단 기술 부문에서는 전략적으로 최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생각은 이미 할 수도 없고, 그러라고 놔둘 대상도 아니다.
최근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려는 한국 정부의 자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제법 크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60% 안팎에서 고정된 상황이니 정치적 입장에서라도 정부가 무슨 자세를 취하든 비판적 목소리가 큰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한국으로서는 선택을 유보할 상황도 아니고, 그럴 실익도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패권 경쟁의 결말은 전쟁 아니면 새로운 관계 속의 공존이 될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은 결국 중국을 굴복시키려 하기보다는 중국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체제와 국민의 번영을 계속 추구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아주 빠른 속도로 패권 세력이 된 국가는 자신들의 패권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패권이 계속 강해진다면 굳이 위험한, 그리고 무리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3차 세계대전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은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른 2008/2009년 무렵 미국이 부동산 시장 붕괴와 금융위기를 맞이하자 드디어 운명이 결정되기 직전이라고 느낀 듯하다.
그런데, 이후 미국과 자본주의 체제는 다시 일어섰고, 그와 동시에 중국은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어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다급해졌다. 중국식 사회주의는 문제가 없는데 가난 탈출의 수단으로 도입한 시장경제 정책들이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집단지도체제와 지도부 내의 활발한 토론, 그리고 갈등보다는 타협을 중시하는 외교 노선 등을 전면 뒤집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에 이은 부동산 시장 부실화, 그리고 급격히 떨어진 경제 성장 동력과 이미 돈맛을 알아버린 국민들과 부활하는 미국 등 이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여건 속에 경제는 사실상 성장을 멈추게 됐다.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더 큰 위험을 피하고자 약간 덜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까? 과거를 반복할 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작지만, 과거 사례는 우리가 미래를 예상하는 데 참고가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초기 미국은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동유럽을 장악하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서유럽까지 정치적으로 위협하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처를 하게 된다. 마플랜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군사 동맹 체제 강화였다.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전리품을 챙기고 다시 '미국인을 위한 미국' 정책으로 되돌아오려던 미국은 한국전쟁에서의 소련과 중국의 적극적 역할에 놀라고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인기에 충격을 받아 자신들의 외교 노선을 크게 바꾼 것이다. 지금 미국은 비슷한 입장에 놓였다.
여기에 한국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는 자신들의 책 『Danger Zone: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에서 경제적 차원에서 꼭 안고 가야 하는 7개국으로 한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을 꼽는다. 이들의 R&D 지출액은 중국을 초월하고, 세계 경제의 25%가량을 차지하며, 초크 포인트 기술(경제의 급소가 될 핵심 기술)을 대부분 생산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도전받고 있다. 미국은 시쳇말로 원래 최대 패권국이 아니며, 미국이 최대 패권국으로 영원히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패권국 자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그런 상황이 온다고 못 사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패권국 교체 과정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교체 후의 세계도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바랄 뿐이다.
소련과 중국의 도움으로 북한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미국 외교 정책이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했다며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고 애치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말했던 1950년의 한국이 아니다. 그런 의미의 감사라면 더 받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우리 자신의 몸집이 그때와 다르고,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위치가 다르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세계 패권 경쟁과 한국의 역할에 관해 도움이 될 책 가운데 최근 읽은 책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중요도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편의상 발행 시간 기준(역순)으로 나열한다.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판형이 모두 있는 경우 페이퍼백 기준으로 표기한다.
Danger Zone: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
- Author: Michael Beckley, Hal Brands
- Publisher : W. W. Norton & Company (August 15, 2023)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304 pages
- ISBN-10 : 1324066105
- ISBN-13 : 978-1324066101
Overreach: How China Derailed Its Peaceful Rise
- Author : Susan L. Shirk
- Publisher : Oxford University Press (October 18, 2022)
- Language : English
- Hardcover : 424 pages
- ISBN-10 : 0190068515
- ISBN-13 : 978-0190068516
반도체 삼국지
- 저자 : 권석준
- 발행 : 뿌리와이파리(2022년 10월 12일)
- ISBN 9788964621813
- 쪽수 : 360쪽
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 Author : Chris Miller
- Publisher : Simon + Schuster UK; Export/Airside edition (October 4, 2022)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464 pages
- ISBN-10 : 1398504106
- ISBN-13 : 978-1398504103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 저자 : 한청훤
- 발행 : 사이드웨이(2022년 08월 03일)
- ISBN 9791191998085
- 쪽수 : 304쪽
Principles for Dealing with the Changing World Order: Why Nations Succeed and Fail
- Author : Ray Dalio
- Publisher : Avid Reader Press / Simon & Schuster; 1st edition (November 30, 2021)
- Language : English
- Hardcover : 576 pages
- ISBN-10 : 1982160276
- ISBN-13 : 978-1982160272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저자: 임명묵
- 발행 : 에이지21(2018년 09월 06일)
- ISBN 9788998342432
- 쪽수 : 244쪽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 Author : Graham Allison
- Publisher : Mariner Books; Reprint edition (August 7, 2018)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400 pages
- ISBN-10 : 1328915387
- ISBN-13 : 978-1328915382
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
- Author: Syngman Rhee
- Publisher : Gwangchang Media (September 15, 2017)
- Language : English
- Hardcover : 260 pages
- ISBN-10 : 8997948024
- ISBN-13 : 978-8997948024
Capitalism Without Capital
- Author : Jonathan Haskel (Author)
- Publisher : Penguin Random House India Pvt. Ltd.; 1st edition (January 1, 2017)
- Language : English
- ISBN-10 : 0691192472
- ISBN-13 : 978-0691192475
The Hundred-Year Marathon: 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
- Author : Michael Pillsbury
- Publisher : St. Martin's Griffin; Reprint edition (March 15, 2016)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352 pages
- ISBN-10 : 1250081343
- ISBN-13 : 978-1250081346
How Asia Works
- Author : Joe Studwell
- Publisher : Grove Press (May 20, 2014)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400 pages
- ISBN-10 : 0802121322
- ISBN-13 : 978-0802121325
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
- Authors: Daron Acemoglu, James A. Robinson
- Publisher : Crown Currency; Reprint edition (September 17, 2013)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544 pages
- ISBN-10 : 0307719227
- ISBN-13 : 978-0307719225
조선의 못난 개항
- 저자 : 문소영
- 발행 : 역사의아침(2013년 02월 28일)
- ISBN 9788993119589
- 쪽수 : 288쪽
Why the West Rules―for Now: The Patterns of History, and What They Reveal About the Future
- Author: Ian Morris
- Publisher : Picador; First Edition (October 25, 2011)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768 pages
- ISBN-10 : 0274896303
- ISBN-13 : 978-0312611699
Stephen Roach on the Next Asia: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for a New Globalization
- Author : Stephen S. Roach
- Publisher : Wiley; 1st edition (October 5, 2010)
- Language : English
- Paperback : 432 pages
- ISBN-10 : 0470646047
- ISBN-13 : 978-0470646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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