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다툼이 무역 갈등으로 본격화하더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싸고 대결이 심화하고 있다. 이들 두 대국의 대결이 일부의 전망대로 미국의 승리로 끝날지, 중국이 도광양회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 일찍 고개를 든 것으로 판명날지, 중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될지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일단 경제의 수출 및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주요 교역 상대국이 미국과 중국인 한국으로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경제사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미국과 중국이 그리는 새로운 공급망 지형도』라는 귀중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이번 대결에서 미국과 중국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를 비교한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사진 출처: enterrasolutions.com) |
미국의 그림: 환경·인권 이슈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과 우방국 중심의 신뢰할 수 있는 첨단기술 공급망 구축
■ 저(低)부가가치 생산은 중국 활용, 고(高)부가가치 생산은 중국 배제
-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등 국가의 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역량과 직결되는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여 중국의 굴기(崛起)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수립
-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내 제조역량을 높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구체화하는 한편,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내세우며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구성 고려
- 반면 중국의 거대한 생산공장과 소비시장은 활용하고 기후변화, 국제보건 등 이견이 크지 않은 분야에서는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는 de-risking 전략을 구사
■ 미국 내 생산기반 재건, 우방국 위주 공급망 공고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
- 반도체의 경우, 1 반도체지원법 제정(CHIPS 법, ′22.7월)과 보조금 지급 등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기반을 재건하고 첨단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2 한국, 대만, 일본과 협력(CHIP4 결성 제안, ′22.3월)하여 반도체 공급망을 견고히 하면서, 3 수출/투자/금융 제재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에 제동
- 반도체 분야별 부가가치 비중을 보면 미국이 39%의 부가가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6%에 불과해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는 거의 불가능
- 미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종합 반도체 기업(IDM)과 팹리스(fabless) 방식의 사업 모델인 반면, 중국은 저부가가치인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아웃소싱 기업(OSAT)의 사업 방식
■ 美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과의 협력을 엄격히 차단
-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등으로 대규모 보조금 및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여 제조업 역량을 강화하는 ‘자국 우선주의’를 채택
- IRA 제정 이후 1,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10만명에 육박하는 고용을 창출
- 중국을 ‘우려대상국(Foreign Country of Concern)’으로 지정하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 대해 중국과의 협력을 차단
■ 환경 및 노동 이슈로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
- 미국과 EU는 탄소중립(Net-Zero)을 위해 탄소국경세(Ex: CBAM) 등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를 도입하여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 및 국가에 페널티 부과
- 환경이슈를 내세워 중국에서 생산되는 탄소집약 제품(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등)을 규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 내포
- 미국과 EU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을 문제 삼아 이들 노동력이 사용된 기업의 제품을 공급망에서 배제
- 美 세관은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에 따라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만든 부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폭스바겐 자동차의 통관을 중지하고 압류(2/18)
중국의 그림: 자원의 안정적 수급과 신흥국 포섭으로 新공급망 모색
■ 자원의 무기화에 대비하고 식량과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
- 중국이 공급 주도권을 쥔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일대일로 회원국들과 투자협정을 체결하여 필수 원자재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 기니(철광석), 인도네시아(니켈), 카자흐스탄(텅스텐), 에리트리아(칼륨), 아르헨티나(리튬), 민주콩고(구리·코발트)와 투자 협정 체결
- ‘중국농업 전망보고서(2022~2031)’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10년간 곡물 생산을 최대한 늘려 2031년 식량 자급률을 88.1%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목표
- 단백질류(달걀, 견과, 육류 등)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계속 높아지면서 식량 안보의 핵심 지표인 식량 자급률이 지난 20년 사이 100%에서 76%로 하락
■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신흥국을 중심으로 영향력 확대
- 미국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등으로 중국을 압박함에 따라 중국은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접근하며 대응
- 2023년 8월, BRICS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가입을 승인
- BRICS는 GDP 합계 30조 달러, 총인구 36억 명의 거대 집합체로 성장
■ 신재생 에너지, 드론, 전기차 등 신성장 산업 육성
- 국가 차원으로 신재생 에너지, 드론, 전기차, 등 신성장 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중국 중심의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려 함
- 정부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 공급망의 全 단계에서 막대한 점유율 확보
-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7나노 이상 위주의 중저가형 제조 공장의 확충을 추진하고 화합물 및 전력용 반도체의 생산능력 기반을 확보 중
- '23년 9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는 7나노급 반도체를 상용화하는데 성공
■ 위안화 국제화로 달러화 수급 악화 대비
- 기축통화인 美 달러화의 무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결제 위안화 도입하여 국영은행간 위안화 대출 등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에 속도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달러화 국제결제 시스템인 SWIFT에서 러시아를 차단함에 따라 권위주의적 국가들의 ‘脫달러화(de-dollarization)’ 동기를 자극
- 중국 금융당국의 자본통제로 글로벌 통화 관점에서의 중국 위안화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을 높이는 것은 가능
- 실제로 러시아,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중국과의 무역결제시 위안화 비중을 높였으며, 중국의 대외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달러화 비중을 상회하기 시작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
■ 인구, 식량, 원자재 등 자원부국의 위상 강화
-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를 위해 노동, 식량, 원자재 등 핵심자원의 안정적인 수급이 중요해 짐에 따라 자원부국(resource-rich country)의 위상이 높아질 전망
-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으로 러시아,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이란, 중국, 브라질, 호주, 이라크, 베네수엘라 등이 거론
- 자원부국은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피하기 위해 제조업, 관광업 등으로 산업구조를 다각화하고 국부펀드(SWF)를 조성하여 다양한 투자전략을 추구
-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석유의존적 경제에서 탈피하고 첨단기술과 민간 투자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국가개발 프로젝트 ‘비전 2030’을 추진
■ 모두가 꿈꾸지만 쉽지 않은 길... ‘제2의 중국’ 되기
- 인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이 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이 제한될 수 있는 2050년이 되기 전에 ‘제2의 중국’이 되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레이스에 돌입
-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연평균 8% 이상의 고성장이 필요
- 그러나 ‘제2의 중국’이 되기가 과거에 비해 더욱 어려워진 상황
- 제조업은 개도국이 빠른 속도로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나 IT 발달로 기술과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개도국의 이점이 옅어짐
■ 공급망 재편은 필연적으로 중복투자와 공급과잉을 야기, 과잉투자가 신흥국 위기를 야기할 수도
-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될 경우 ‘저비용·고효율’의 경제구조가 ‘안보위주·비효율’로 변화하면서 중복투자와 공급과잉이 나타날 전망
- 단기적으로 자원의 불안정한 수급과 비용 상승 등으로 생산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과잉의 역사가 반복될 소지
- 특히 '제2의 중국'이 되기 위해 과잉투자를 집행한 개도국 중 재정적 여유가 부족할 경우, 채무불이행이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
-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서는 산업혁명이나 세계 대공황 등으로 공급과잉·수요부족이 나타났으며, 이를 식민지 개척이나 뉴딜 정책 등의 인위적 수요창출로 극복한 사례
■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경제안보’ 리스크로 관리할 필요
- 중국의 굴기를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정권에 관계없이 계속될 전망이며, 중국도 脫서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경제안보’ 리스크 관리가 중요
- 20년 전부터 중국 관련 리스크를 관리해 온 일본의 위험 관리 사례를 참고할 필요
- 일본은 2003년 ‘SARS 사태’와 2010년 ‘희토류 수출 중단 사태’ 등을 겪으면서 중국 편중으로 인한 ‘경제안보’ 리스크를 관리하기 시작
- 중국 시장 의존도를 상쇄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안전보장추진법(2022)’을 통해 반도체 소자 등 11개 품목을 특정중요물자로 지정해 관리
▶ 보고서 전체 보기 ⇒ 미국과 중국이 그리는 새로운 공급망 지형도
▶ 한편, 지난해 9월 소개한 하이투자증권 보고서 관련 글도 참고 바람 ⇒ (참고) 공급망 재편 불가피,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 총정리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