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전세계 핀테크 산업 동향
컨설팅업체 액센츄어가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에 대한 전세계 투자규모가 2008년 9억 2000만 달러에서 2013년에는 29억 7000만 달러로 약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 또한 IT시장조사업체 벤처스캐너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핀테크 산업에는 17개 분야에 1027개 업체가 존재하며 이들 업체에 총 129억 달러의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로, 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 및 기술을 통칭하는 용어다.
전세계의 핀테크 산업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는 영국이다. 런던은 원래부터 중요한 세계 금융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런던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개시하고 거대 금융자본들이 투자에 나서면서, 2014년 기준 런던에만 1800여개의 핀테크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국이 금융 중심지인 런던을 중심으로 핀테크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금융 중심지인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기술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로 분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핀테크 발전 속도는 영국보다 더디다고 볼 수 있지만, 뉴욕과 실리콘밸리가 가진 압도적인 금융 및 IT 역량을 바탕으로 전세계 핀테크 산업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핀테크 투자 건수와 규모를 보면 미국에 집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 미국과 함께 주목해야 할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 시장과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중국 정부의 핀테크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핀테크 산업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4년 9월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알리바바 그룹은 B2B 커머스를 중계하는 알리바바닷컴, 오픈마켓 타오바오, 페이팔과 유사한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즈푸바오, 支付寶)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핀테크 서비스로 실질 사용자 수가 3억명에 달하는 알리페이는 중국 내 제3자 결제시장의 48%, 모바일 결제시장의 69%를 장악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 총 결제액 3조 8729억 위안(약 650조 원)을 기록했다.
또한 알리바바는 온라인 머니마켓펀드(MMF) 상품인 위어바오(餘額寶)와 알리페이를 연계하여 알리페이에 충전하고 남은 금액을 위어바오에 보관할 경우 일반은행 이자 3%보다 높은 4~6%대의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서비스 개시 1년도 안돼 무려 100조원을 모으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대형 IT업체들 중 핀테크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는 애플이다. 애플은 2015년 1월 기준으로 전세계 750여개 금융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15년에 애플페이의 총 결제액이 786억 달러를 이르고, 2016년에는 2066억 달러(약 2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2 만일 이와 같은 예측이 실현된다면 2016년 기준 미국 전체 소매 시장의 4.6%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처럼 미국은 이미 핀테크 혁명의 초기를 지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수준에 도달해가고 있는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티지아이(StrategyEye)가 밝힌 2014년 1월~11월까지의 전세계 톱 10 핀테크 투자를 살펴보면,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개척자 스퀘어(Square), 온라인 결제서비스 스트라이프(Stripe), 중국의 P2P 대출 서비스 렌렌다이(Renrendai), 금융정보 관리 서비스 크레디트 카르마(Credit Karma) 등에 대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크게 확산되고 이미 큰 투자가 많이 이뤄진 반면에, 한국에서의 핀테크 산업의 확산 및 투자규모는 거의 제로(0)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 미국,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핀테크 산업이 초기 단계를 지나 성장기에 접어든 반면에, 한국은 (걸음마 단계조차도 못 되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실정이다.
II. 핀테크의 유형 및 사례
핀테크는 연구기관이나 시장조사업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분류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기능에 따라 지급결제 서비스, 전자화폐, 대출 서비스, 금융 소프트웨어 등의 4가지로 구분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지급결제 서비스다. 지급결제 서비스는 핀테크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서비스로, 보다 간편하게 송금을 하거나 결제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신용카드, 은행계좌 등과 연동해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서비스에 따라 기능의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페이팔, 알리페이, 애플페이, 스퀘어, 카카오페이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전자화폐(가상통화)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라서는 전자화폐를 핀테크에 포함하지 않거나 지급결제 서비스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화폐는 그 자체로 송금과 결제가 가능한데, 비트코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이를 별도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국가의 화폐로 교환 가능하고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양을 1000억개로 한정한 리플코인이나 국내에서 사용하는 컬처캐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 대출 서비스다. 기존 금융기관의 대출이 가진 한계로 인해 해외의 사용자들에게 크게 각광 받고 있는 핀테크 분야가 바로 대출(대부) 서비스다. 미국의 최대 P2P 대출기업 렌딩클럽(Lending Club)은 투자자와 대출을 원하는 사람을 모집해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시가총액이 약 80억 달러에 달한다. 렌딩클럽이 개인 고객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온덱(OnDeck)은 소상공인을 주된 고객으로 삼고 있다. 2014년 12월 뉴욕 증시에 상장한 온덱은 첫 거래에서 공모가 대비 주가가 40% 상승했으며, 시가총액은 18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학자금 전문 P2P 대출을 제공하는 소파이(SoFi)는 2014년말까지 13억 달러의 대출을 집행했으며, 총 5억 662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상태다.
넷째, 금융 소프트웨어다. 송금, 결제, 대출 등의 핵심 금융 기능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빅데이터 분석 및 특유의 알고리즘, 인공지능, 독자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통해 금융의 편의성을 증대시켜주는 소프트웨어들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빌가드(Billguard)는 사용자의 신용카드와 은행계좌를 모바일 앱을 통해 통합 관리 가능하고 독자적인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신용카드 도용이나 수수료 오류 등을 발견하여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금융정보 관리 서비스 크레디트 카르마(Credit Karma)는 사용자가 자신의 신용점수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크레디트 카르마는 2014년 9월까지 1억93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III. 국내 핀테크 산업의 시사점
첫째, 무엇보다 국내 스타트업 환경이 여전히 부실한 상태이고 특히 창업 문화는 단기간에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창업 초기 기업에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자할만한 벤처캐피털의 부재와 더불어, 유능한 인재들의 창업 기피, 그리고 창업에 나선 소수의 인재들조차 게임, 커머스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투자금 유치가 수월하고 당장의 수익성이 높은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 금융기관의 조직문화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금융기간들의 경우, 회장과 은행장이 맞선 KB금융 사태와 2014년 11월에 있었던 은행연합회장 선임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내정치, 관치금융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 그와 같은 환경으로 인해 경직되고 보수적이고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해킹, 개인정보 유출 등의 금융 사고들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정부기관의 규제 철폐 및 핀테크 육성책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시장에는 이런 식의 정부 구호가 실제 산업에 도움이 된 적이 없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규제는 악’이라며 모든 산업에서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지만, 규제는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막고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단지 규제의 양이라기 보다는 불필요한 규제가 많고 필요한 규제는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되 필요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고 공정하게 집행함으로써 공공의 신뢰를 얻는 데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