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전쟁 혹은 환율전쟁이란 여러 나라가 서로 경쟁적으로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그리고 큰 폭으로 떨어뜨려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상태를 지칭한다. 최근에는 2010년 9월 브라질 재무장관이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세계가 통화전쟁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절하 압력이 있는데 이에 저항하다가 포기하고 절하를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 통화전쟁 상황이 벌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대부분의 나라가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국을 제외하면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그리고 큰 폭으로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금리를 인하할 때는 인상하거나 동결했을 경우보다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거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통화 가치가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될 때 금리를 인하하거나 인하하겠다는 선언을 해서 다소간의 통화 가치 조절을 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리 정책은 그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환율 한 가지만을 노리고 금리를 움직이는 중앙은행은 거의 없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통화 완화 정책을 확대하는 동안 달러 가치는 결국 오히려 상승했다. 많은 나라에서 금리 인하 이후 그 나라 통화 가치가 반드시 내려간 것은 아니다. 이는 금리 이외에도 달러 수급, 금융시장 상황, 경제 전망, 정치 상황, 경제 정책 등이 모두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금리를 단기간에 크게 낮춘다거나 환율이 절하될 때까지 무한정 낮추겠다고 선언하는 등의 파격적 조치를 취한다면 환율은 절하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환율 이외의 부문에 미치는 피해가 클 수 있다. 투자 자본의 이탈, 외화 부채 상환 부담의 급증, 수입품 가격의 급등 같은 결과가 그것이다. 따라서 환율의 큰 폭 절하가 정말 경제를 살리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기 전에는 그런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환율전쟁이라는 단어가 다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환율전쟁을 촉발했으며 한국도 이에 대응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만일 현재 1.5%인 기준금리를 0% 혹은 마이너스까지 낮추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주장은 무책임하거나 공허한 것이다. 더구나 중국도 시장의 위안화 절하 압력을 용인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절하를 유도한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심지어 타이완 중앙은행이 금리를 0.23%에서 0.20%로 인하한 것을 통화 전쟁의 사례로 끼워넣는 기사도 있다. 그 정도의 금리 인하가 환율에 지속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원화 가치는 현재 한국 경제 회복에 장애가 될 정도로 높은 것이 아니다. 아래 그림은 위안화, 유로화, 엔화, 원화 실질실효환율지수의 10년간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엔보다는 조금 높아졌지만 원 가치가 특히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9년간 원화는 엔화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있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편, 아래 그림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지수와 기준금리의 10년간 변화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 기준금리 변화는 원화 가치에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2007년 중반부터 2009년 초반까지 원화 가치가 큰 폭 하락했으나 당시에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불거지다가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 때를 제외하고 기준금리 움직임은 원화 가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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