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QE, 어떻게 실행될 것인가》
■ 새누리당, 한국판 QE 실현을 위해 한은법 개정 추진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한국판 QE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7일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제시했던 공약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100일 이내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산금채와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한국은행법 제76조(정부보증채권의 직접인수)는“한국은행은 원리금 상환에 대해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한국판 QE에 대한 당정간 공감대 형성으로 현실화 가능성 높아짐
정부 내에서도 공감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당초 새누리당이 제시한 한은법 개정을 통한 채권매입에 대해“개인의 소신인 것으로 안다”라며 선을 그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리가 있다”며 태도의 변화를 보였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멕시코 순방중이던 4일 양적완화에 대한 질문에 “총선 과정에서 논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언급했다. 반대한다기 보다는 즉답을 피하는 정도였다. 한은법 개정에 대해 당정 간 이미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기업과 가계의 부채상환과 만기연장에 한국은행이 참여하겠다는 것
7일 있었던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를 통해 새누리당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은 한국판 QE가 어떤 식으로 실행될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단서가 될만한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이나 일본이 돈을 늘리면서 시중의 자금을 그냥 풍부하게 만드는 이런 양적완화를 했는데, 우리는 그런 방식이 아니고 우리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데 목적을 두고 목표가 분명한 한국은행의 지원을 받자는 것.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해야 되겠는데 이걸 뒷받침해 줘야 한다.
- 대기업들이 30,40개씩 계열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적자가 이미 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더 뽑겠나. 새롭게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신성장동력에 투자를 해야 청년들을 새로 뽑을 수가 있을 것. 이런 목적에 제한해서 쓰자는 것.
- 그 다음에 내수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주택시장. 주택경기가 좀 살아나는 듯하다가 요새 다시 냉각되고 있는데 집을 담보로 해서 받은 차입금을 평생동안 일하면서 갚는 방법으로 우리도 선진국식으로 바꾸자. 은행입장에서는 단기간에 받을 돈을 장기간에 걸쳐 받게 되니까 자금에 미스매치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것을 중앙은행이 도와주자는 것.
- 이렇게 제한되고 목표가 분명하고 일본/미국과 달리 구조개혁 추진하면서 이걸 뒷받침하는 양적완화를 쓰자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형 양적완화라고 이야기한 것.■ 한국판 QE는 타겟을 정한 유동성 공급의 성격이 될 것
결국 새누리당이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한국형QE는 무차별적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기업, 가계)을 정해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구조조정” 실행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업재편을 전제로 하여 “기업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을 늘리라”는 주문과 같다. 부실한 기업을 쳐내기 보다는 시간을 좀 더 주면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파악된다.
■ 새누리당이 말하는 구조조정의 의미: 기업의 사업재편을 위한 “은행의 대출확대”
강봉균 위원장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구조조정의 의미가 사업재편이라고 언급했다.
“조선업계와 해운업계 구조조정은 시급하다. 대우조선해양 같은 경우 밑에 계열회사가 60개가 넘는다. 계열사 중 괜찮은 곳도 있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투자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그림을 갖고 있다. 그런 것은 적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큰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도 그 돈을 공급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인수해주면서 대출용도에 대해 깊이 있는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
■ 한국은행은 자본인정이 되는 산금채를 발행시장에서 매입할 것으로 예상
이를 위해 한국은행은 유통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서 산은채를 매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유통시장에서의 한은 채권매입은 한은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경우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유동성을 지원할 수 없다.
강봉균 선대위원장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BIS 자기자본비율로 인정되는 후순위채를 산업은행이 발행하면 자본확충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산업은행은 자기자본비율로 인정되는 채권을 발행하고 한국은행이 이를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 차환위험 있던 기업 유동성 위험감소 예상. 산금채에는 강세요인
이러한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차환위험을 겪고 있던 기업들이 될 것이다. 해당 기업들의 유동성 위험은 감소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발행대금으로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것을 요구 받을 것이다. 기업들의 조달비용 감소가 예상된다.
수급측면에서는 산금채를 유통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행물을 한은이 상당부분 또는 전부 인수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산금채 수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요에 제한이 가해지는 만큼 산금채에는 강세요인이라 판단한다. 국고채는 산금채와의 스프레드 등을 감안할 때 역시 간접적인 금리하락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은행의 주택담보대출 MBS매입은 성격상 작년 안심전환대출과 유사할 전망
새누리당은 한국은행이 주택담보대출MBS를 매입해줌으로써 대출자들의 상환 만기를 20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대출 1,206조원 가운데 약 절반인 600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자만 내고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의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을 원리금 분할상환대출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 600조원 중에서 약 40%는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는 방식으로 전환한 상태이고, 나머지 60%는 거치식을 유지하고 있다. 거치식 대출들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차환에 대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 까다로워진 대출심사 등으로 장기분할상환대출(원리금 상환)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자들이 차환에 실패할 경우 차압 주택물량이 시장으로 출회될 우려가 있다.
새누리당의 제안은 현재 거치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장기분할상환대출로 교환해주고, 이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MBS를 한국은행이 매입해주자는 방식인 것으로 추정된다.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대출자가 은행을 통해 장기대출로 교환을 받고, 은행은 장기대출을 주택금융공사에 양도한다. 주택금융공사는 MBS를 발행하여 은행에 넘긴다.
그런데 은행이 만기가 긴 MBS를 보유하게 될 경우 운용상의 만기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한국은행이 은행이 보유한 장기 MBS를 매입해 주는 방식이 실행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시중은행은 한국은행에 MBS를 매각한 대금을 가지게 된다. 이 매각대금에 대해 정부가 사용처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가 미지수이나 정부의 바람대로 일시에 대출로 다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유동성은 채권에 대한 신규 매수수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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