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훈 교수님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를 읽었다. 이 책은 한 때 나처럼 한국 상고사에 약간이라도 낭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 에게는 한 밤에 정신 확 차리게 하는 찬 물 세례 같은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아름답고 위대한 상고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통된 소망을 전혀 공유하고 있지 않은 외국의 사학계가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을 혹하게 한 상고사 서사에 대해 얼마나 냉정하고 혹독하게 바라보는 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이 소망하는 아름답고 위대한 상고사는 해외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철저하게 국내에서만 서로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아름답고 위대한 상고사 이야기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첫째 사료적 증거가 너무 없다. 중국 사서에서 지나가며 언급되는 아주 단편 적인 몇 구절만 있을 뿐 이다. 소위 유사역사학자나 유사역사학 맹신자들은 그 단편들...을 끌어 모아 거기에 상상과 추측으로 뼈를 덧대고 살을 붙여서 하나의 가상의 서사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이는 어떤 공통된 소망을 공유하는 국내에서나 통용될 뿐 학문의 엄격함과 객관성이 첫째 기준인 국제 학문계 에서는 전혀 인정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을 유사역사학 진영에서 주장하는 한국의 위대한 상고사와 연결 시킬 필연성이나 증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만 있지 그 유적들이 반드시 고대 국가 꼴을 갖춘 고조선이라는 명백한 증거나 설득력 있는 논거가 부족하다. 역시 국제 학술학계의 엄밀성과 객관성의 기준을 통과하기에 한참 부족하다.
유사역사학 진영에서는 그러한 빈틈을 명백하게 타당한 반론이나 엄밀한 증거로 채우는 게 아니라 기상천외한 상상이 섞인 온갖 음모론 으로 채운다. 고고학적으로 결정적 증거를 중국 정부가 숨기고 공개를 하지 않는 다거나 확실한 사료적 증거를 일제시대 모두 회수해간 일본 정부가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단편적 정황과 상황으로 무리하게 엮어 만든 추측일 뿐 학문의 기준을 넘을 수 없다. 심재훈 교수님은 이러한 유사역사학의 황당한 주장과 이에 부화뇌동 하는 정치권과 일부 국내 여론의 미숙함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논리정연 하게 하나하나 지적한다. 교수님께서 워낙 성격이 온화하신지 유사역사학 진영의 억지와 비논리를 비판하면서도 워낙 온건하고 점잖으시게 하셔서 심지어 나 같은 욱하는 성격의 독자 입장에서는 약간 성이 안찰 정도이다.
평생을 학문의 길에만 정진하시고 이런 대중적 글쓰기는 처음이라고 말하시는 것과 달리 나 같은 역사 아마추어도 거의 막히지 않고 술술 읽길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셨다. 매우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가 상당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 잘 읽혀서 책 느리게 읽는 내가 거의 이틀 만에 다 읽을 정도였다. 깊이 있는 이치를 문외한인 사람이 직관적으로 매우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사람이 정말 해당 분야 고수라는 관점에서 교수님이 진정한 고수가 맞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나는 한국의 유사역사학 또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 걸 사실이라고 철석 같이 믿는 수 많은 인지부조화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유사역사학이 이야기하는 위대한 상고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국제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성공한 나라이다. 되려 상상 속 위대한 상고사에 집착하는 게 한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일 것이다. 한국을 진정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싶으면 존재 했다는 증거도 찾기 힘든 가상의 고대 국가에서 방황하고 헤매 일게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와 문화 속에 잔존하는 폐쇄적 민족주의, 배타적 집단주의와 싸우고 개인의 개성과 인권이 더욱 존중 받으며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더욱 보살피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한때 한국의 모델이었던 소위 유럽의 선진국들, 즉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갖고 있던 국가적 자부심은 자신들의 나라가 자신들 문명의 뿌리였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만큼의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사를 갖고 있다는 억지 주장에 있지 않았다. 그들의 자부심은 정치와 사회체제에 있어 근대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인권 같은 수준 높은 문명 수준과 높은 수준의 학문과 세련되고 보편적 호소력을 갖춘 문화에 있었다. 고대 중국은 현대 중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명의 뿌리이며 그러한 유산을 나누어 갖은 한국이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느껴 구태여 억지로 자신들도 그 것 비슷한 대등한 걸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 한국이 처해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앞으로 전진하여 다른 이웃 국가들의 모델이 되었을 때 진정한 국가적 민족적 자부심이 축적될 것이다. 이 책에 의도대로 우리 안에서 잠시 나와서 고대 중국에 빠져 역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면 우리 위대한 상고사란 헛된 미망 빠져 나오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를 읽고 - 위대한 상고사라는 정신승리에 대한 준엄한 질타 |작성자 포동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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