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대부분의 한국인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맞아 다음날 업무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다음날인 2008년 9월 16일, 주말을 포함해 4일 만에 개장한 서울 주식시장 코스피는 하루 만에 6.1%나 폭락했다.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46조원이 날아간 것이다. 이렇게 이른바 글로벌금융위기(GFC)가 본격화했고 전 세계 경제는 이후 20세기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시련기로 접어들게 됐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자들은 자칫 1세기 만에 전 세계 경제가 최악의 침체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일단 정책 당국의 대응은 1세기 전 대공황 때보다는 적극적이었다. 마침 위기의 근원지이자 세계 최강 경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공교롭게도 대공황 및 이후 정책 대응을 깊이 연구한 전문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정공법에 연연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과감한 대응책을 시행해 갔다.
그렇지만 전 세계 경제는 대공황 수준은 아니지만 큰 충격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리먼 파산 신청을 바로 앞둔 4월 전망에서 선진국 경제성장률이 2009년에 평균 1.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리만 파산 신청 이후 시장의 폭락과 세계 교역의 급랭, 미국 주택 가격 붕괴와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겹치면서 실제 선진국 성장률은 2009년 -3.3%를 기록했다. 이는 리만 사태 이전 전망과 비교하면 무려 4.6%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의 충격은 전 세계적이었고 깊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지만 이미 세계 자본시장 경제체제에 깊숙히 편입된 한국도 큰 충격을 받았다. 2008년 4월 전망에서 IMF는 한국의 2008년 경제성장률을 4.2%로, 2009년 성장률을 4.4%로 각각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성장률은 2008년 2.8%, 2009년 0.7%에 그쳤다. 물론 당시 한국 정부가 전례없이 큰 추경을 편성하고 과감한 금리 인하를 통해 적극 대응한 결과 IMF 분류 기준 선진국들 중 하나인 한국의 성장률은 다른 선진국들보다는 양호했다.
그 이후 2-3년간 미국 연준과 미국 재무부를 중심으로 한 과감하고 꾸준한 부양책으로 세계 경제는 일단 충격에서는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절대적인 경제 규모는 작지만 유로존의 일원이며 인류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스 재정 위기는 얼핏 보기에 간단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 성격이었지만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스라는 한 나라의 문제고 그치지 않고 유로존의 붕괴나 유럽연합의 해체, 심지어 유럽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다.
하지만 그리스 위기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미국 경제도 활력을 되찾아가면서 연준은 위기 이후 비정상적으로 확대한 통화 공급을 회수하는 이른바 테이퍼링을 선언했다. 그러자 세계 금융시장은 위기 때처럼 요동쳤고 일부 펀더멘털이 취약한 신흥국 위주로 위기감이 다시 감돌았다. 이후 동요가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다시 중국발 위기설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세계 주요국 정책 당국은 적극적인 대처로 다시 위기에 빠지는 일을 겪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자로서 기억하는 미국발 금융위기 10년이다. 물론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2010년을 포함해 줄곧 G20 관련 한국 기사를 담당한 터라 비교적 많은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과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내용에 국한돼 있다. 연준이 과감한 대응책을 발표하면 그 내용과 효과 등은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연준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고 정치적인 맥락은 어떤 것이었는지까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당시 조지 부시 정부는 임기 말을 맞은 데다가 이라크 침공 이후 혼란을 겪고 있었다. 2008년 겨울에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돼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사이, 그리고 양측 당국자들 사이의 호흡은 잘 맞았는지 여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굵직굵직한 일들이 있기까지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아찔한 순간도 많았고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의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유로존 통화정책을 총책임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는 왜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까? 유로존 위기를 사실상 마무리지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필요하다면 뭐든 하겠다(Whatever it takes)" 발언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연준의 테이퍼링 발작은 과연 예상됐던 일인가? 중국의 대응은 미국발 금융위기 극복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는걸까? 이제 미국발 금융위기는 완전히 끝난 것일까? 남유럽, 동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포퓰리즘이 주류 정치권을 대체하고 집권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여기 소개하는 역사학 교수 아담 투즈의 역작 『Crashed』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설명을 해 주는 책이다. 경제학자이면서도 이런 저런 음모론을 동원해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엉터리 책도 많은 상황이지만 이 책은 역사학자이면서도 금융위기 전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까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잘 짚어주고 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을 강화했다고 하는데 2008년 왜 유독 큰 충격을 받았을까? 유럽 각국은 왜 그렇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앞에서 허둥대는 걸까? 그리고 브렉시트는 어떤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나? 이런 질문에 물론 단답형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독자들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
벤 버냉키의 『The Courage to Act』(서평 ▷ (책소개) 버냉키의 『행동하는 용기』: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의 『The Stiglitz Report: Reforming the International Monetary and Financial Systems in the Wake of the Global Crisis』(책소개 ▷ 【책 소개】 경제, 케인즈, 연준, 금융위기...꼭 알아야 할 것만 알자)와 함께 2008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 흐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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