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취임과 동시에 정부 새 경제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정책 내용이 발표되기 전부터 최 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축소균형" 추세 속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책을 취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심지어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 할 지도 모른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경제정책 방향 내용은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정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 내용은 잘못된 것이 없다. 양질의 일자리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있으며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만족스럽게 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가용 자금을 활발하게 투자나 고용에 지출하지 않고 있으며 소비는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1%(통계방식 변경 전 3.9%)에서 3.7%로 낮춰잡았다. 이번에 조정된 0.4%포인트는 사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그런 정도의 조정이다. 더구나 성장률 절대치도 3.7%라면 작년 3.0%보다 높은 것이고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 될 정도다. 민간소비가 2분기 중 세월호 사고 여파 등으로 3년여만에 전분기대비 감소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수출은 회복세를 기록 중이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급격한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최 부총리는 향후 한국 경제의 전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행 총재도 "하향 리스크가 확대 되고 있다"며 분위기를 맞추고 있지만 부문별로 얘기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위기상황이라고 할 만한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최 부총리는 경제의 체질 내지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발표된 대책은 크게 보면 부동산시장 부양책과 공공지출 확대, 그리고 금융지원 확대 등 "가지 않은 길"을 간다고 하기에 걸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의 필요성을 느낄 만한 상황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위 표에서 보듯 현재 주택시장은 필요 이상으로 조정을 길게 겪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부는 그동안 가처분소득의 160%를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를 억제하기 위해 분모인 부채의 억제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은 활기를 찾기 힘들었으며 은행들은 정부의 지도 아래 부채 총량을 억제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 소비자들은 비은행 금융기관 등으로부터의 차입을 늘리는 등 다른 방안을 찾거나 소비를 줄여야만 했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거꾸로 분모인 가계가처분소득을 늘리고 주택가격을 적정한 페이스로 부양한다면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나 LTV 등의 비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경제 활력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최 부총리 팀의 생각인 것 같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주택가격 상승이 부채 상승보다 더 빨리 유지되면서 버블은 형성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또한 가처분소득은 늘지 않으면서 부채만 는다거나 주택가격은 느는데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 현상 등도 생길 수 있다.
한국의 가계 가처분소득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국민처분가능소득 가운데 개인 몫은 1998년 77.8%를 기록하며 정점을 지난 후 계속 하락해 2010-2012년 3년 내내 63%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법인의 비중은 1998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가 회복해 2010년 13.5%까지 높아졌고 2012년에는 12.5%를 유지했다. 가처분소득은 총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것이므로 소득 자체가 크게 늘지 않거나 비소비지출이 소득보다 빨리 늘면 당연히 증가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추이를 보면 소득 가운데 조세, 연금 및 사회보험 지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재산소득 증가세는 부진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부동산시장 및 주식시장 부양을 통해 재산소득 증가를 꾀하려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이번 대책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어떻게 맥을 같이 하는 것인지, 혹은 배치되는 면은 없는지, 그리고 나아가 가계소득 부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대책이 하반기 경제운용계획 발표 시점에 맞춰 그 형식으로 발표된 것은 이해한다. 다만 그 내용은 부동산시장 부양책 이외에 특기할 만한 의미 있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런 저런 위기감을 조성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