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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사고,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전

(※ 사견임)

조금 전 집 근처 상점에서 목격한 일이다. 얼굴을 거의 덮을 만큼 단단히 마스크를 쓴 할머니가 맨얼굴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계산원에게 마스크를 하나 건네 주었다. 계산원은 받자 마자 옆으로 던져 놓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할머니는 화를 내며 왜 안 쓰냐고 따졌고 계산원은 자기는 기침을 하지 않으니 나중에 쓰던지 하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계산원의 건강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을 위해서 마스크를 건넨 것이라고 했고 이내 약간 고성이 오갔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감염자가 계속 발생하는 가운데 아직 근처에서 감염자가 보고되지 않은 이 곳에서도 주민들 사이에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메르스 바이러스 확산 및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보며 몇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 메르스 관련 혼란은 크게 보면 공공안전에 대한 관련 당국 및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년 세월호 사고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위 세 장의 사진은 페이스북의 Daejung Kim 님이 공유한 자료로 대한민국의 응급실 문화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여기에 소개한다. 외국 병원 응급실에 가 본 적이 없지만 국내 응급실은 내 경험상으로도 정말 지나치게 혼잡하다고 생각한다. 보험료나 진료비가 낮게 책정돼 있어 시설이 부실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전염성 있는 질병이나 기타 중증 질병의 경우 이제는 환자나 가족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공공안전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현재도 규정상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 상급병원에서는 높은 요금을 부과하지만 요금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는 환자가 많을 정도로 높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의료진이 판단하기에 다른 병원으로 가도 될 정도라고 판단되면 다른 병원으로 가도록 지시할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규정이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지만 환자나 보호자(혹은 많은 동행인)들이 응급실이나 병실에 너무 많이 드나드는 것은 문제다. 규칙은 있지만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규칙이 엄격히 지켜지려면 우선 의료진이 법에 주어진 권한을 충실히 집행할 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현재는 소란을 피거나 무력을 행사하면 대체로 규칙에 위배되더라도 환자나 동행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많다.

이는 비단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걸쳐 비슷한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법에 의해 권한이 주어진 공무원이나 의료진 혹은 기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한을 규정대로 엄정히 적용했을 때 생기는 각종 민원이나 불편 혹은 부작용에 대해 사회가 담당자들을 보호하거나 칭찬해주지 않는다. 그 사람의 직장상사도 오히려 "말썽"을 일으켰다며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1980년대까지는 집권자나 정부, 그리고 각종 공공기관들이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해 법에 주어진 권한을 집행하기 위한 권위를 갖지 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라는 말은 어느덧 "부당한" 결정을 강제로 집행하는 것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공권력 행사는 공정한 법집행을 말하는 것이며 나는 공권력은 지금보다 훨씬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본다.

후진국에서 전염병이 보고되면 금융시장 반응이 제한적인데 왜 미국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큰 영향을 받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국은 시민과 시민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는 경제든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 그렇게 대응한 사례가 확립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시민과 시민사회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가라는 제도는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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