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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을 읽는다고 위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과 프리드먼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근차근 읽어야 다음 책을 읽기 시작하는 편이다. 이런 습관 때문에 정기구독 중인 계간지가 배송되어도 읽고 있는 책이 있으면 때를 놓쳐 나중에 읽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습관 덕분에 우연히 "제때" 글을 읽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창간 때부터 꾸준히 구독하며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하고 많은 가르침을 얻는 계간지가 있다. 바로 《서울리뷰오브북스》인데, 올해는 겨울호가 나올 즈음이 되어서야 가을호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호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된 글이 실렸고, 그 글을 마침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해 파면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읽게 된 것이다.


김두얼 교수는 윤 대통령이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며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추천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경제학이 끌어낸 보수주의"라는 글을 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곧이어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계엄령은 하룻밤 사이에 해제되었고, 2주일 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세계적인 화제의 중심에 선 시점에 이 글을 읽게 되었으니, 잡지를 "제때" 읽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작게나마 이득이 된 셈이다. 김 교수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리는 없지만, 참으로 놀라운 우연이었다.

탄핵소추를 예상하지 못하고 쓴 글이지만, 이번 글은 평소 내 생각과 비슷한 점이 많아 감명 깊게 읽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유명인들이 위대한 사상가의 업적 중 본인의 주장에 맞는 부분만 골라서 사용하는 관행을 지적했다. 글에서는 밀턴 프리드먼의 생애와 주장 등을 『선택할 자유』와 그보다 약 20년 전에 출간된 『자본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두 책의 내용과 밀턴 프리드먼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년 가을호(15호)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반복하지 않겠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유명한 사상가의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 높아졌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같은 책이라도 누가, 어떤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자세로 읽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읽는 위대한 사상가의 책들은 대개 10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쓰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당시의 주장이나 내용은 오늘날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책에서 배워야 할 점은, 그 사상가가 창의적인 이론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연구 과정과 고민, 고통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오늘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등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에 쓰인 책에서 여성이나 남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거나,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 과정에서 미국이 취했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을 오늘날 반미 논리로 여전히 사용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거시경제 정책이나 자본시장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관료 중에는 잘못된 독서 습관으로 인해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 대다수는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합격을 통해 관료가 되었으며, 이론 공부는 승진을 위해 읽거나 위탁교육에서 "속성 학습"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다.

물론 그중에는 학위까지 취득하며 열심히 공부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순수하고 체계적으로 학문을 익힌 학자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신이 읽은, 그것도 수십 년 전의 이론서 몇 권만을 진리처럼 믿는 경우가 있다. 당시의 독서는 공무원 승진을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큰 데 말이다.

이후 새로 등장하는 이론을 배우고 기존 이론을 보완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30-40년 전 읽은 경험만을 믿고 경제정책을 수립한다면 그 정책은 시대적 적합성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사상가의 책이라도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양한 이론과 비교하며 자신만의 논리를 구축한 뒤, 새로 등장하는 이론을 꾸준히 익혀 논리를 시대에 맞게 다듬어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소용이 없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런 독서는 독이 될 뿐이다.


▶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년 가을호 중 "경제학이 끌어낸 보수주의" 글 소개 페이스북 페이지 ⇒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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