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주요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는 것이 가계부채다. 특히 2000년대 중반 불었던 부동산투자 열기와 더불어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경제성장 둔화를 겪으면서 과도한 가계부채를 갖고 있었던 나라의 경우 미국을 포함해 자연스럽게 부채 축소조정(deleveraging)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록 가계부채 총액 증가율은 둔화됐지만 미국과 같은 부채조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총량지표인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 등의 면에서 가계부채는 한국의 주요 경제 리스크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즉 부동산시장이 비록 거래는 심각한 위축을 보였으나 가격은 전혀 추세적 하락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중ㆍ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을 대폭 낮춰서까지 주택을 투매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에 따라 담보대출액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택가격과 관련 부채가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다행스런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하겠다.
한편 최근 발표된 분기별 가계수지 현황과 과거 시계열 자료를 비교해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많은 언론과 심지어 경제전문가들까지 가계수지의 악화와 소비 부진을 얘기할 때마다 높은 가계부채 부담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지만 통계 수치로 보면 가계부채만이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 사회복지 지출을 아껴 일단 잘 살고 봐야 한다는 데 정책을 집중해 왔다. 이는 앞으로 잘살면 복지 지출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듯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속속 사회복지 제도를 신설 및 확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인구 변화와 경제 활력 둔화 등으로 사회복지 부문에 들어가는 재원은 점점 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각 가계의 부담도 다소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도시가계 평균 소득에서 강제성 있는 "조세 및 사회보험 등의 지출"은 6.5% 정도를 차지했으나 이것이 2013년에는 9%를 돌파했다. 반면 소득 총액에서 "이자 등"의 비율은 2.1% 수준에서 2.3% 수준으로 소폭 늘었다. 물론 이 통계는 평균 수치로 빚이 많은 가계의 부담은 치명적이라는 등의 주장을 할 수 있겠으나 이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지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논하지 않겠다.
이렇게 보면 가계의 지출 부담 가운데 조세와 공적 부담금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오히려 가계부채에 따른 이자 부담보다 최소한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가계부채가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또 공적부담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가계소비 얘기를 할 때마다 주기도문 외우듯 가계부채만 들이대고, 더구나 해소책이 있는데도 정부가 게을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결론짓는 태도는 나로서는 아주 건설적인 자세로 보지 않는다.
동시에 재미있는 점은 가계 흑자율도 같은 기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흑자율이 높아진 것은 고령화 추세와 함께 각종 사회 구조의 변화로 각자 노후대비를 위해 소비를 자제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계수지 변화 및 가계소비 변화를 분석할 때 전문가들은 이같은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고, 가계부채라는 탓하기 편한 주제에 집착하는 대신 더욱 창의적인 분석에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흑자율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총소득 대비 비율의 4분기 이동평균 추이다. 실선은 좌축, 점선은 우축에 값이 표시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