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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에 대하여

(※ 네이버 블로거 "망치나가신다"님의 소중한 글을 공유한다.)

현대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향방을 알기 위해 꼭 이해해야 할 국가들을 두 나라만 꼽아보자면 단언컨대 중국과 미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식 전통에 의해 교육받고 서구식 가치관을 학습 받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미국은(트럼프 현상과 같은 돌발상황이 있긴 해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알려진 것도 많은 나라다.

숭배와 경멸  

반면 중국은 소련식 권력구조를 계승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인 키메라 같이 보인다. 중국 지도부는 국제적 상식에 맞지 않는 과격한 말들을 하고 그들의 공식 언론은 인류가 쟁취해온 보편적 가치와는 너무 다른 말들을 중국적 가치라고 포장하여 말하곤 한다. 또한,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같은 행사를 제외하면 중남해의 밀실 속에서 대체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는 감도 잡을 수 없다. 대륙 전체를 감싸 안은 죽의 장막은 덩샤오핑이 집권하며 걷어냈지만, 북경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실은 여전히 죽의 장막 안에 쌓여있는 것 같다.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전체회의 모습(2013. 3, 출처: 신화사, www.npc.gov.cn)

중국의 이런 난해함을 고려했을 때 사실 현대 사회에서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나라는 미국보다는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힘들다. 한쪽은 중국의 성취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상하이에 가보라, 선전에 가보라. 세계 최고의 마천루들과 최첨단 기술이 그곳에서 일어서고 있다. 그들은 쇠락해가는 제국 미국의 뒤를 이어 중국이 그 패권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경멸감을 숨기지 않고 말한다. 좋다. 북경에 가보라. 여전히 인민을 사랑했다는 마오 주석의 초상화가 인민을 학살(천안문 항쟁)한 바로 그 자리 앞에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민들을 짓누르는 공안들의 무뚝뚝한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스모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이루어낸 엄청난 속도의 성장은 이렇게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둘 중 하나만을 강요하도록 만들어냈다.

조너선 하이트 (Jonathan Haidt, 버지니아 대학 심리학)는 그의 저서 [바른 마음] (2014)에서, 인간이 행하는 판단의 절대다수는 사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정서적 판단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답을 미리 마음속에서 정하고, 그에 맞추어서 논리들을 가져다 붙인다. 이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생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평소에 ‘짱깨’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경멸감을 자극하는 중국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 어선들의 횡포를 보더라도 금방 잊고 말지만, 이들은 해마를 통해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서구적 질서에 긍정적인 대안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믿는 ‘중뽕’은 중국이 이룩해낸 놀라운 성취나 아프리카의 인프라 투자 같은 기사들을 남들보다 훨씬 잘 찾고 쉽게 기억한다.

물론 이런 판단 과정 자체가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다수의 판단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한발 떨어져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의 판단이 진정으로 객관적인 것인지 늘 점검해봐야 한다. 너, 나, 우리를 막론하고 어떤 인간이든 힘들어하는 자기객관화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 경멸감을 가진 사람은 중국이 이루어낸 성취와 세계 사회에서 현재 중국이 담당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들어봐야 한다.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여전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권 문제와 환경 문제, 그리고 낮아지는 성장률에 대해 비관론자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확증편향을 가진 건 아닌지, 자신이 대화하는 상대들이 그저 반향실 효과만을 재생산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되물어보아야 한다. 중국과 같이 모든 이가 한 마디씩 다 거드는 첨예한 주제라면 더더욱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연결과 여파

전근대 중국은 대운하라는 엄청난 연결망을 만들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강남과 중원이 하나가 되면서 물자, 사람, 정보가 교환했다. 남중국에는 북중국의 뛰어난 인적자원과 농업기술이 들어갔고 북중국에는 남중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쌀을 통해 인구과밀 문제를 해소했다.

로마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지중해와 로마의 도로 시스템이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아메리카가 유라시아 경제망에 연결되자 중국은 은의 수요를 포토시 은광을 통해 충당하면서 조세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유럽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서양 경제를 통해 유럽은 비로소 동양을 뛰어넘을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바로 공산권의 붕괴다. 소련의 해체로 동유럽과 러시아라는 방대한 땅이 세계 경제 네트워크에 통합되었다. 확대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수출은 유럽의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구소련권에서는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동구권 두뇌의 유례없는 유출은 서구 과학계의 인적자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낡아빠진 러시아의 인프라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서구 기업이 많은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중국의 개방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닌 사건들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로 개혁파의 승리에 쐐기를 박은 이래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처음에 이곳은 장난감이나 의류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제조창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자동차, 기계 등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첨단 산업인 전자산업과 반도체들도 중국에서 조립되고 있다. 이 아웃소싱의 파급효과는 그야말로 막대했다.

서구 기업은 이윤도 얼마 없는 단순 조립은 중국에 다 하청주고 이윤이 되는 R&D와 마케팅, 판매에 집중했다. IBM이 레노보에 노트북 생산부서를 판 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높은 곳을 향한 도약의 신호탄이었다. 또한, 새로이 떠오르는 중국은 서구 기업을 위한 엄청난 소비시장이 되었으며, 강력한 자본력과 국가 현대화를 위한 의지에 불타오르는 공산당 관료들 덕분에 이곳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신기술의 시험장이 되었다. 고속철, 초고압 송전, 원자력 발전 등 쉽사리 수주하기 힘든 최첨단 기술의 거래처가 중국에서는 넘쳐났다. 세계는 중국과 연결됨으로써, 연결되지 않았던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이득을 얻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현대화는 소련의 스탈린 이래로 유례가 없는 규모의 국가 현대화였으며 가장 장엄한 ‘위대한 탈출’이었다. 문자 그대로 수억 명의 사람이 극한의 빈곤에서 탈출했다. 물론 공산당 관료들과 그들의 자식은 훨씬 더 많은 이득을 보았고, 이것이 사회정의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억 명의 사람이 쓸데없는 마오 주석 어록 암송에서 탈피해 서구식 기술교육을 받아 중산층으로 편입된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농민공들은 말 그대로 가축처럼 일하면서 살아갔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문해 보아야 한다.
"‘왜 그들은 가축처럼 일하면서도 폭스콘 공장의 일자리를 원하는가?’"
노동권과 인간적 대우가 결여되어 있긴 해도 공장과 도시에는 희망과 빛이 있었다. 중국 내륙의 극빈 지역 농촌은 가축처럼 사는 것에 더해서 끝도 없는 암흑만 있는 곳이었다. 중국도 세계와 연결됨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물론 이 경우는 연결되지 않았을 때의 중국을 상상하는 것이 쉽다. 그저 무기력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의 모습을 상상하면 되니까.

연결과 대가

그러나 모든 것에는 그에 상응하진 않더라도 대가라는 것이 있다. 연결도 마찬가지다. 호모 사피엔스는 뉴런의 연결을 어떤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우리의 기초대사량의 20%는 순전히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간다. 대운하를 짓기 위한 수양제의 대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아메리카와 유럽의 연결은 가장 극적인 사례다. 원주민에게 연결이란 곧 대재앙이었다.

세계는 중국과 연결해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중국의 국력이 부상하고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판을 흔드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끼치는 환경에 대한 영향도 세계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자원을 빨아먹는 괴물이 될 중국이 세계의 자원 압박을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에 여전히 잔존하는 권위주의 정부들의 든든한 뒷배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

작게 보면 중국인의 떨어지는 문화적 소양과 검열 기준에 의해 세계 문화시장이 일정 부분 재편된 것도 세계가 맡은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보면 중국과 세계가 연결되면서 이득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대가도 컸다. 이런 점에서 중국 혐오론자의 주장이 이해가 가긴 한다.

중국 그러나 중국이 지불한 대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 공산당이 치른 대가에 비하면 이런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에드워드 스타인펠드(Edward S. Steinfeld)의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2011)에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통합되는 것은 기존의 중국 공산당식 통치로는 절대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려면 기본적인 재산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환율을 시장에 기반해서 운영해야 했고, 기업법이 보장되어야 하고,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하고, 노동법과 노동계약에 관한 제도도 손질되어야 했다. 대학은 이제 홍위병들이 홍기를 들고 마오 주석 어록을 외우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은 최고로 지적 역량이 뛰어난 이들이 서구의 법과 경제학 지식, 그리고 과학기술을 배우는 곳이 되었다. 이는 기존의 중국 공산당의 통치법이 아니라 서구식 기준을 전면 수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중국계들이 진정한 신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대거 귀국했다. 서구적 제도와 법의 지배를 운영해본 적이 없는 중국에게 이는 상당히 힘든 과업이었다.

이를테면 노동유연화가 그렇다. 중국은 기존에 평생직장을 통한 사내복지로 노동자를 통제했다. 그러나 이제 평생직장은 없다. 주거지역에 기반한 사회보장시스템을 재설계하고 공급해야 하는 것은 막대한 부담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면 이전에는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시민 저항이라는 것을 겪게 되었다. 이 시민 저항이라는 것은 과거에는 너무나 무력한 것이었으나 이제 서구와 연결되면서 얻게 된 또 하나의 경제 도구, 인터넷이 중국 시민을 연결해주면서 대하기 훨씬 껄끄러워졌다. 관료들은 이제 밀실에서 정치적 후원자들과 동맹을 만들어서 적들을 쳐내고, 부정하게 얻은 자원들을 분배하는 능력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에는 여전히 그런 능력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책을 설계하고 인민들을 설득하며 실적을 평가받는 서구적인 기술관료로서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사실 이러한 대가는 중국이라는 사회 입장에서 보자면 대부분 긍정적인 것이었다.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일거에 없어지면서 초래된 사회적 혼란이 있었지만, 중국인은 자신에게 열린 제약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고,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서구 학계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은 중국에서 벤처 정신을 발휘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마크 그래노베터 (Mark Granovetter)가 전설적인 사회학 논문,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1973)을 쓴 이래로 많은 학자가 다원주의가 인간의 창의성과 경제적 생산성, 삶의 질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무수히 많은 연구를 내놓았다. 중국은 가장 거대한 사회적 실험장이었다. 중국 사회의 제한적 자유화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맞물려 사회적 이동성이 유례없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젊은 계층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유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권리는 더욱 폭넓게 보장받을 것이다. 중국은 서구와 비슷해질 것이라는 게 그들의 예상이었다.

역풍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모든 변화는 그에 맞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그들의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2012)에서 국가의 경제적 혁신이 어려운 이유를 정치적 엘리트 때문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경제적 세력이 부상하면 기존 경제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독점이 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혁신은 지체되거나 고사된다.

중국은 정치 엘리트들이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국가적 합의로 유례없는 양보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존 고위 당 관료들은 국영기업 체제를 좋아한다. 왜 혁신을 해야 하고 왜 창의력을 발휘해아하는가? 아니, 그건 제한된 민간경제에서리면 해도 좋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근간을 당의 통제에서 놓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은 계속해서 ‘경제의 통제고지'(Commanding Heigths of the Economy)를 점해야한다.

거기에 이들에게 나름의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보수파에게 있어 중국의 문제는 불안정성이다. 이렇게 거대한 나라를 운영하는데 갑자기 모든 걸 놓아버리면 고르바초프가 맞이했던 대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국영기업을 모두 자유화하면 지금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고용 안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여 사회불안이 극좌 운동으로 퍼지면, 새로운 문화대혁명이라도 낳으면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결론은 언제나 예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권력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 더 이상의 양보는 방종이다.

보수파 당 관료의 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답으로 보긴 힘들 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불안정의 대명사지만, 고르바초프를 낳은 것은 브레즈네프 시대의 경직성이었다. 공산당식 통제는 이제 너무 복잡해진 중국 경제를 감당할 수 없다. 중국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남순강화 이후 20여 년이 넘도록 진행해온 개방이었지 폐쇄가 아니었다. 따라서 중국식 권위주의가 서구적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는 주장은,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거를 보자면 전후 일본은 국가의 경제관리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 같았다. 관료들이 전폭적으로 ‘케이레츠’(系列;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기업조직)와 종합상사를 지원하고, 일치단결한 경제 공룡 일본은 서구의 지리멸렬한 사회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다원성의 결여는 치명적이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적 위기는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이와 같은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부채와 공급과잉이 꼽힌다. 이들 모두 거대 국영기업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고위 공산당 관료와 지방정부가 유착을 맺고, 이들 국영기업은 은행에서 민간 기업에 비해 파격적인 이자율로 대출을 받지만, 생산성은 민간 기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거기에 국영기업은 당 관료와 유착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특권을 강화해 갔다. 특히 법의 지배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중국에서 재산권 보호의 허점을 노리고 부당하게 민간 자본을 탈취해갔다. 이런 모든 요소가 중국 경제 내부에서 자원 분배를 극히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왔다.

부패 뒷거래 

또한, 이는 거대한 부패의 사슬도 만들었다. 제도가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대한 부가 창출되자 너도나도 부정하게 부를 축적했고, 중국에 대한 극히 높은 사회적 불신의 핵심에 당 관료와 국영기업의 유착이 들어서게 됐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관료는 승진을 위해서 성과 압력을 받다 보니 일단 무턱대고 부채를 끌어들여 생산설비를 확대해왔다. 국제 경기가 위축 상황에 들어선 시점에서, 그리고 중국 경제가 어느 정도 고도화된 상태에서 이런 단순한 요소 투입식 성장으로는 더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 철강을 8억 톤이나 생산해도 4억 톤이 남아돈다면 이는 경제에서는 처분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감도 안 잡히는 거대한 짐일 뿐이다.

개혁이 초기에 탄력을 받을 때는 국영기업의 역할은 계속 줄어만 갔다. 덩샤오핑 시기에 “자본론에 따르면 8명 이하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착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에 입각해 만들어진 개체호(個體戶; 소규모 자영업, 자영업자)가 시작이었다. 남순강화로 개혁 기조가 확정되고, 장쩌민 시기에 “개혁의 오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개혁을 멈추는 건 용서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고해진 뒤에는 더욱 가속했다. 이것이 절정에 이른 것은 장쩌민 집권 2기, 주룽지 총리가 WTO 가입을 추진했을 때였다. 당시 중국은 수천만 명의 국영기업 노동자를 해고하고 신속히 성장하는 민간 부문의 고용 수요를 통해 실업을 해결했다. 이 기간에 중국은 정치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도 꾸준히 개방의 폭을 넓혀갔다.

그러나 중국에서 국영기업 구조조정은 다시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보수파 고위 당 관료들과 지방 관료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베이징대 장웨이잉 교수은 2004년과 2008년, 조지워싱턴대 데이비드 샴보 교수는 2008년으로 잡는데, 전반적으로 서브프라임 사태가 개혁을 늦추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 같다.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했으나 이제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확대된 중국의 위상은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 중국식의 정부 주도 경제발전 모델)라는 독자적인 중국 모델로 대변되었다.

서구를 따라가야 하는 개혁파의 위상은 위축되었다. 왜 우리가 서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이제 서양인이 북경까지 찾아와서 돈 좀 달라고 부탁을 하는 시대인데. 개혁의 속도는 늦춰졌고, 오히려 이 기간 국영기업의 역할이 확대되며 민간기업의 위상은 위축되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누적되자 국영기업을 필두로 한 적폐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 격화된 중국의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위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무엇일까?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사실 기존에 해왔던 노선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제적 기득권의 역량이 강화되다 보니 해결해야 할 일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복잡해진 것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헌법에 의해 규정되는 국가권력, 인민에 의해 선출되어 대표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인대 대의원들,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견제를 받는 국가, 그리고 사법권의 독립과 공산당 관료들에 대한 특권 폐지, 헌법에 기초한 권리들로 보장받는 경제적 활동과 시민으로서의 삶. 지금 중국에 필요한 것은 자유화와 민주화지, 독자적인 중국 모델과 중국적 가치가 아닌 것이다.

시진핑과 그의 시대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의 행보는 그렇다면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시진핑의 행동과 그에 대한 관측들은 한결같이 그를 극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통치자, 집단지도체제의 원칙을 파괴하고 황제와 같이 행세하려는, 중국의 퇴보를 불러오는 지도자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시진핑의 무시무시한 인상과 대외관계에서의 강경함 등도 이에 거든다. 그는 간신히 소생하고 있는 중국의 시민적 자유를 압살하고 서구에 도전장을 내밀 지도자 같이 보인다.

데이비드 샴보(David Shambaugh, 사진)는 최근 내놓은 그의 책 [중국의 미래] (China’s Future, 2016)에서 이런 입장을 적극 지지한 바가 있다. 2008년~2009년 동안 중국의 개혁은 급속하게 위축되었고 그 속에서 새롭게 떠오른 권위주의형 지도자가 시진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샴보에 의하면 그런 방향성으로 나가면 중국은 결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며,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다는 소리는 과거 소련, 일본, 유럽연합과 같이 허튼소리로 치부될 것이 틀림없다.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앞서 언급한 에드워드 스타인펠드 교수는 이미 당의 논리는 중국인의 일상생활과 유리되어 있기에 중국 지도부가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말도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특히 시진핑 지도부의 정책들 중 몇 개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작년에 있던 5차 중앙위 전체회의와 올해 양회 정국을 휘어잡은 키워드는 ‘부패사정’과 ‘공급측 개혁’이다. 부패에 찌든 관료들을 숙청하고 비대하고 방만한 국영기업들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방 관료들과의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진핑의 통치철학으로 제시된 ‘4개 전면’에서는 의법치국이라는 표어도 등장한다. 사법체계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당마저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겠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이제 공직 취임 시에 헌법 선서를 실시하게 된다. 중국의 3인자인 장더장이 맡은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스타팅 포인트를 끊었다.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무언가 이대로 가면 안 되며 개혁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합의, 3차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공표된 “전면적 개혁 심화”는 추진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확인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시 중국 권위주의의 망령이라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을 추켜세우고 과도한 개인숭배의 분위기마저 흘리는 시진핑의 속셈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그의 치세 아래 진행되는 개혁은 대체 어떤 의도를 갖고 진행되는 건지, 또한 새로이 확보되는 정치권 장악과 권력 집중은 어떤 의도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포브스에 실린 칼럼, “중국 잘못 이해하기: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Getting China Wrong: The Peril Of The Binary Mindset)”에서는 재밌는 해석을 한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극히 복잡하게 꼬여있는 현재 중국의 상황에서 강력한 개혁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역사에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989년 천안문 학살을 진두지휘한 것은 덩샤오핑이었다. 자신이 신임하는 후임인 개혁파의 거두 자오쯔양도 내쳐버렸다. 서방 관측통은 이제 중국의 개혁은 끝났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덩샤오핑은 당시 경제적 위축 국면, 인민의 민주화 요구라는 정치, 경제에서의 위기로 보수파에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본인이 앞장서서 손에 피를 묻힘으로써 권력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발판 삼아 남순강화로 보수파의 입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시진핑의 의도에 관해서 어떤 추측이 맞을까? 나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 샴보가 맞을지, 에드워드 스타인펠드가 맞을지. 하나 확실한 것은 자유화와 민주화가 없는 이상 중국식 독자모델이라는 것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 기적은 동양과 서양은 근본적으로 다르니 동양에게는 동양만의 모델이 있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아시아 모델, 베이징 컨센서스, 넘버원 일본 등등 무수한 말이 있었다.

서양이 서양인 이유, 덴마크로 가는 길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나는 이 모든 말들은 본질에서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동양과 서양은 각자 판이한 세계였던 것 같지만, 모두 과거에는 어떤 점에서 유사했다. 그 모든 역사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회 모두 고대 국가에서 제국으로 진화하면서 고등 종교를 탄생시켰다. 황금률을 공자와 예수가 모두 말한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억압이 자행되었다는 것도 유사했다. 교회와 귀족은 특권 계층이었다. 그들은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인간 아래에 인간이 있으며 어떤 존재들은 인간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고 여겼다. 물론 향촌에서 신사들이 하던 일도 비슷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황제들이 원하면 지나가던 마을 하나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바닷가에서는 모두 혁신적인 상인들이 탄생했다. 복건성의 항구와 네덜란드의 저지대는 세계의 산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조정들은 똑같이 이들 상인을 억압했다. 삶은 언제나 비참했으나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더욱 비참했다.

그런데 서양에서 먼저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다. 흑사병의 도래로 깨진 농노제의 질서, 아메리카의 발견과 대서양 경제의 폭발적 성장, 독자적인 상인들의 등장, 군사혁명으로 인한 근대국가의 태동, 과학 혁명, 계몽주의 등 책으로 쓰자면 집 한 채를 모두 채울만한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사람은 여전히 파리처럼 죽어 나가고, 평민의 삶은 홉스의 말처럼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왕에 대한 귀족의 권리가 보장받기 시작한 이래로 시민의 권리 역시 계속 확장해 갔다. 후에 유산계급에 열렸으며 산업혁명으로 멋진 신세계가 열리자 무산계급에도 열렸다. 미국에서는 마침내 인간 이하 취급받던 흑인도 인권을 보장받았다. 제국주의와 양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불러온 모든 민족주의의 폭풍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원주의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갔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제 서유럽과 북미에서 갑작스럽게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고 시민을 불법적으로 구금하는 일을 문제없이 넘어가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몇백년 전만 해도 이런 폭력과 불법이 서양에서도 상식인 일이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상습적으로 파산하여 수많은 상인 가문들도 같이 무덤으로 끌고 들어갔다.

동양은 어땠는가? 서양이 이런 길을 걷고 있는 동안 동양은 계속 잠만 자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은 나태와 정체의 상징, 일본인들은 천황의 노예, 한국은 더러운 짐승의 나라였다. 왕, 황제, 양반, 지주 등 독단적 권리를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이들이 사회적 변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혁신도 없고 이들 지역에서 문명이 생긴 이래로 공자의 말만 주야장천 외우는 것처럼 보였다. 동양 여성의 삶은 인간의 삶 이하였다. 그저 애를 낳고 집안일을 하는 기계일 뿐이었다. 물론 남자는 조금 더 나았을 뿐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은 건” 마찬가지였다. 동양이 발전하려면 서양 문명을 배워야 했다. 사실 배울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유교문화는 창의성을 억압하고 복종을 강요하니까.

하지만 동양에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일본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니 젖혀둔다고 해도 한국과 대만은 동양에서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성립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머나먼 여정이었고 많은 사람이 피와 눈물을 쏟긴 했지만, 분명한 성과였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안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이제 민주화된 동아시아의 많은 시민은 보편적 인권을 누린다.

적어도 공식적인 특권 계층은 폐지되었다. 산업화, 자유화, 민주화, 세계화는 동양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서유럽 국가들이 처음에 열어젖힌 거대한 사회변동에 동아시아 국가들도 20세기 말에 이에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국가이자 가장 폭압적인 정권으로 여겨지던 중국 공산당으로도 흘러가 대륙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산당마저도 “덴마크처럼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7월, 쓰촨 성에 위치한 십방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중국이 그 길에서 허송세월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십방시 정부는 사천 대지진의 피해를 복구하는 차원에서 구리 제련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으로 처리되었고 구리 제련소 건설이 미칠 환경적 영향에 대해 우려하여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했다.

당국은 늘 그렇듯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웨이보가 미친 파급력은 엄청났다. 시위대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선전부 직원들과 알바(속칭 ’50센트 당원’)들은 학생들이 올리는 사진들과 게시글들을 모조리 지우려고 했으나 인터넷의 파급 속도를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마침내 당국이 굴복했다. 십방시의 당 서기는 교체되었고, 건설은 취소되었으며, 철거민에 대한 보상이 시행되었다.

중국은 변화했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 과연 황제라고 불리는 중국의 지도자는 계속하여 변화를 시도할까?

결국, 둘은 만나리

앞서 나는 현재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국가는 미국 아니면 중국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제한된 이해 수준을 고려했을 때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사실 이 말은 틀렸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다. 미국은 중국을 변화시켜왔고, 중국도 미국을 변화시켜왔다.

사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하는 중국 밖의 서방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결국 초점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로 모여야 한다. 둘 중 하나로 환원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서방 세계가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이제부터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다. 시진핑의 의중을 당분간 쉽게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나로 규정짓기에는 복잡하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따라서 서방 세계는 시진핑이 개혁을 추진하고 중국을 민주화된 사회로 변모시키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강대국이자 동반자로 위치시키는 데 협조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길들이겠다고 보여주었던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결코 안 된다. IMF와 서방의 대러시아 정책은 90년대에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분노한 러시아인들은 푸틴이라는 대결적 지도자를 적극 지지하여 세계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을 때 중국의 비중은 러시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 당장 기후 문제에 대하여 중국과의 협력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스티븐 핑커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이 주도하는 유라시아의 인프라 개발은 세계의 상호연결성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사진)가 그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2014)에서 보여주었듯, 연결과 교역은 국제적 안정성을 가져다준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대륙으로서 유럽으로 전이되는 사회적 불안정성과 온갖 신종 질병의 근원지인 아프리카를 개발할 때에는 이제 중국의 협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공중보건을 확충하고 공공재로서 안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나머지 세계도 이제 위협받게 될 것이다.

결국, 중국이 미국을 넘느냐 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지구적 거버넌스가 요구되는 지금 시점에서 중국과 미국, 그리고 나머지 세계가 협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못 넘어도 적어도 미국과 같이 세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히틀러를 막고자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협조한 것과 유사하다. 극도로 폭압적인 통치자인 스탈린은 외부 세계에는 그냥 권력과 피에 굶주린 미친 인간으로 여겨졌다.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따라서 루스벨트 입장에서 처음에 스탈린과 협조를 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이 안 가는 일이었을 것이고 그의 지지자들은 실제로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것 같은 둘은 미국과 러시아 지도자들 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깊은 우정을 보여줬다. 국제사회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둘의 협조체제 아래에 나온 것이 국제연합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가 죽고 처칠과 트루먼이 주도권을 잡자 스탈린은 다시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갔다. 스탈린이 냉전에 대해 어떤 복안을 안고 있었는지는 감히 그분의 생각을 추측해볼 수 없긴 하나 확실히 흐루쇼프 때부터는 피해의식이 공산권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냉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나머지 세계와 유리된 공산권에 사는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막대한 비극을 겪게 되었다.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역사적 위치에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향후 중국이 나아갈 길을 규정짓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이것이 지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세계의 수행능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리고 루스벨트와 트루먼과 마찬가지로 올해 당선될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중국에 끼칠 영향이 향후 중국이 나아갈 길을 결정짓는 데 막대한 변수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중국에 민주화 경험을 제공해줄, 앞서간 동아시아의 후발주자로서 한국과 대만도 어느 정도 소임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한국의 시민이자 지구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는 중국에 대한 공공연한 멸시와 경멸, 그리고 맹목적 숭앙 어느 것도 현재 세계를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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