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다
2017년은 한국 입헌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탄핵하였기 때문이다. 탄핵결정은 국회 재적의원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탄핵소추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탄핵소추는 연인원 천오백만명이 넘게 참여한 평화적 촛불집회에서 그 정치적 동력을 얻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시민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 촛불혁명은 정확히 30년전 87년 6월항쟁을 통해 한국 입헌민주주의의 새 장을 활짝 연 사건과 비교할 만하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직무를 수행한 데 대하여 주권자 국민이 광장에서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탄핵소추로서 화답하고, 심판기관인 헌재가 사법적 심리를 거쳐 대통령을 파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민주주의가 의회를 거쳐 헌재의 숙의에 의해 제도적 결실을 맺은 것은 한국 입헌민주주의의 성숙을 증명해준다.
권력부패에 대한 단호한 헌법적 기준을 제시하다
(reuters.com) |
또한 이러한 헌법적 기준을 정립한 최종결정자가 헌재라는 것도 기억되어야 한다. 헌재는 탄핵심판은 물론 법률의 위헌심판, 정당의 해산심판, 기본적 인권의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권한쟁의심판을 관장하는 헌법기관이다. 헌재의 관할사항은 모두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통제하는 특색을 가진다. 헌재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헌법의 이름으로 파면시키는 기준을 정립한 것은 헌재가 헌정체제의 주요한 조정자(coordinator)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번 탄핵결정은 8인 재판부 전원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는데 탄핵이 가지는 헌정에서의 의미를 고려한 헌법재판관들의 숙려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과정에서 헌재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은 헌재가 단순한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적’사법기관이어야 함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이번 탄핵결정에서 대통령의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거부나 헌재에 대한 모욕적 행태로 볼 때 헌법수호의지가 없고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여서 파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은 헌정의 현실적 조건에 대해 헌재가 충분히 고려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사법통치(juristocracy)라고 일반화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 헌정에서 ‘정치의 사법화’ (judicialization of politics)가 제도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에서 나타난 법과 제도의 한계
한편 87년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통해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보였던 권력형 부정부패가 다시 확인된 것은 87년 혁명이 미완의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87년 혁명의 경우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한편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로 헌재를 설치하는 등 새로운 헌법체제를 마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헌법제도만으로 민주헌정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한국민이 간과하고 있음이 민주화이후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다. 직접 선출된 대통령도 부패할 수 있으므로 그 권한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검찰개혁, 국가정보기관 개혁, 감사제개혁, 사법개혁을 소홀히 한 결과이다. 거대기업이 경제적 흥정으로 정치권을 부패시키지 못하도록 재벌개혁을 효과적으로 시행하지 못한 탓도 정경유착이 부활하는 조건이 되었다. 헌법상 대통령의 인사권은 법률에 의해 통제될 수 있도록 되어 있음에도 개혁입법에 소홀하여 대통령이 법집행기관에 대한 인사권을 무기로 국회의원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한편 기업에 부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대통령 권력을 헌법에 의해 견제해야할 국회는, 유권자의 상당수가 자신이 원하는 정치세력을 의회에 진출시키지 못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국민의 여론을 효과적으로 대변하지 못하였다.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직업공무원들도 공정한 법집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영혼을 팔아 권력형 부정부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일이 다반사였음이 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2017년 촛불혁명에 의한 대통령 탄핵은 87년 혁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2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첫걸음이어야 한다. 다시 한번 권력자의 교체만으로 끝나서는 고질적인 권력의 부패를 근절하지 못할 것이다.
탄핵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그렇다면 탄핵이후 한국민에게 남겨진 과제는 어떻게 권력부패를 근절시킬 것인가로 모아진다. 87년 체제에서 미처 완수하지 못한 제도개혁은 필수적이다. 87년 헌법을 만들면서 미처 다듬지 못한 견제적 민주주의(contestatory democracy)의 장치들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검찰개혁 등 법집행기관에 대한 개혁은 물론 선거법과 정당법의 자유화 외에도 공무원인준제를 확대·강화하고 소수파의 주도로 국정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회법 등 의회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급선무이다.
헌법제도상으로도 개혁과제는 적지않다. 권력자의 일탈로 헌정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과도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때문이다.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통해 중앙정치의 오작동에 의한 위험을 분산시키고 일상적 생활영역에서 자치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과감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논란이 되는 것은 정부형태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제의 문제로 단정하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이런 견해는 전혀 실증적이지 않다고 본다. 특히 이번 탄핵사태가 초래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회에서, 특히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정파에서 정부형태를 국회중심의 내각제로 바꾸면 만사가 해결되는 듯 주장하는 것은 이번 탄핵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탄핵의 원인인 권력부패는 대통령제라는 제도가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집중된 중앙정치체제에서 집행권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제도가 작동하지 못한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위반에 준엄해야 할 검찰과 경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상황을 두고는 어떤 정부형태를 도입하더라도 또다시 권력부패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각제나 그 변형인 이원정부제를 도입하는 대안은 부패한 권력의 중심을 대통령에서 총리나 내각으로 이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내각제는 집행부와 의회가 견제하기 보다는 융합하는 체제여서 선거독재(electoral dictatorship)의 위험이 더 높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각제에 기초한 정부형태는 국민이 아닌 의회가 정부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어서 국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축소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결국 정부형태의 변경은 획기적 지방분권이나 의회개혁, 정치의 자유화를 전제로 할 때라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필자 소개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교수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중이다. 연구 및 교육의 관심분야는 한국 헌법(Korean Constitutional Law), 한국의 법과 정치(Law and Politics in Korea), 정치관계법과 표현의 자유(Political Law and the Freedom of Expression), 언론법제(media law), 교육법제(education law), 헌법재판(Constitutional Review and Adjudication), 민주주의와 법치주의(The Rule of Law and Democracy), 법과 사회이론(Law and Social Theory) 등이다. 영국과 미국의 헌법이론과 실제 등 비교헌법(Comparative Constitutional Law)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국회, 헌법재판소,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위한 자문활동 외에도 헌법교육, 시민교육, 정치개혁, 사법개혁을 위한 학술운동과 대중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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