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블로그 "새나의 창고"에서 공유한 글이다. "사회적 협약 없이 그냥 미조직 노동자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면, 굳이 노동회의소 따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입법부에서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잘 집행하며, 사법부에서 법률 위반에 대해 제대로 처벌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마지막 의문 제기에 동의한다. 나는 이런 의문이 비단 이 주제에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분야는 많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고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일반 국민을 위한다는 취지로 이런 저런 중재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약자의 피해를 무마하는 쪽으로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작동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고 피해자를 억누르려는 것을 의도한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법을 제대로 만들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그냥 법원에 가서 시비를 가리되 법원에서 엄정한 판결을 내려 주면 끝날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
문재인 후보가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를 한국에 도입하려 하는 모양이다.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적 협약(Social Partnership) 모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찾아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협약은 노동회의소, 노동조합연합회, 경제회의소, 농업회의소의 네 가지 조직이 참가하고 있다. 노동회의소와 노동조합연합회의 대표는 사회당 소속이며, 경제회의소와 농업회의소 대표는 국민당(우파 정당) 소속이다. 노동회의소를 찾아보니 구성원 직선으로 대표자들을 선출하는데, 내부적으로 사회당 뿐 아니라 국민당 소속의 대표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대표자들은 노조원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연합회에도 친사회당과 친국민당 분파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 그리고 사회적 협약 모델 전반은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어찌 보면 의회(입법부)와 중복되는 기능의 조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가 그 전신이 1848년에 만들어진 유서깊은 조직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 사회적 협약 모델의 전반적인 도입이 없이, 노동회의소만 달랑 생겨났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독립성 보장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주요 간부들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오스트리아같이 구성원 직선제로 한다면, 투표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과연 오스트리아같이 '좌파' 정당, 아니 적어도 민주당이 지배하는 구조가 되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우파 정당들이 노동회의소의 지배를 노리고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할 때, 이를 막을 방법이 있는가? 그렇다고 기존의 공공기관처럼 주요 간부들을 '객관적 추천 절차를 거쳐' 정부가 임명하는 방법을 활용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동회의소의 간부들도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사회적 협약 모델의 한쪽인 사용자 대표 단체는 과연 어떤 상태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한상의나 경총이 과연 노동회의소와 '협약'을 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가? 민주당이나 '좌파' 정당 집권 하에서도 기업의 이익을 꿋꿋하게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우파' 정당 집권 하에서도 역시 '정경유착'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원칙적으로 노조가 주도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조 조직이 어려울 경우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것은 정당이 아닐까. 설사 노동회의소가 생겼다고 해도, 그 안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력은 (오스트리아의 예를 볼 때) 결국 정당일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있는데 굳이 노동회의소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비례대표제의 대폭적인 확대로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 전반의 권리 보장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노동회의소는 결국 사회적 협약(대화)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협약 모델은 이미 노사정위원회의 설치로 시도된 바 있으나,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회적 협약 모델 도입을 위한 네 가지 조건을 ILO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필요한 정보와 기술적 역량을 갖춘 노·사의 강력한 독자적 조직
2) 모든 참여당사자의 정치적 의지와 책임감
3) 조직의 권리와 단체협상의 권리에 대한 존중
4) 적절한 제도적 지원
한국에서 이 네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추어져 있는가?
아니라면, 사회적 협약 모델 도입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사회적 협약 없이 그냥 미조직 노동자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면, 굳이 노동회의소 따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입법부에서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잘 집행하며, 사법부에서 법률 위반에 대해 제대로 처벌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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