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건스탠리아시아 회장을 역임한 스티븐 로슈 예일대학교 교수의 기고문을 거의 직역해 소개한다. 《American Tactics vs. Chinese Strategy》란 제목의 이 글에서 로슈 교수는 미국은 오래 전부터 국정의 장기적인 '전략'은 없고 단기적인 '전술'만으로 정책을 펴는 반면, 중국은 장기적인 '전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선거 민주주의 체제가 오늘날 경험하는 공통적인 문제다. 중국 같은 독재체제의 경우 임기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10년 이상인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장기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반면,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한 번 연임해서 대통령이 8년간 통치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더이상 그런 보장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길어야 4년이라는 시계에 모든 것이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임기 말에는 재선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아야 하는 상황이고, 게다가 임기 중간에 국회의원 일부 선거가 있기에 사실상 국정을 펴는 시계가 2년 남짓한 상황이다. 한국도 과거에는 5년 단임제이기는 해도 한 정파가 두 번 정권을 잡으면 10년간 국정을 펼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정권이 5년만에 교체되는 경우가 많아진 데다가 임기 중에도 각종 선거 때문에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정보의 홍수 속에 정치 과잉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하나의 정권이 장기적인 비전을 구상하고 그에 맞춰 정책을 펴기 어려워졌다. 반면, 중국은 집권자가 설령 바뀐다고 해도 일당 독재 체제이므로 정체(政體)는 지속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 당국자들 입장에서는 '자주 바뀌는' 서양 정권들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로슈 교수의 기고문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원문 링크는 맨 아래 공유한다.
(사진 출처: www.gizchina.com) |
American Tactics vs. Chinese Strategy
전술과 전략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랜 기간 많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96년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글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바 있다. 포터 교수는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했지만, 그의 주장은 오늘날의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포함해 훨씬 넓은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포터 교수는 '운영 효율성'과 전략을 구분하면서, 민첩한 기업들은 전자는 잘 수행하지만 후자에서는 서투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벤치마킹, 리엔지니어링, 종합품질관리(TQC) 같은 전술적 수단과 "독특한 가치 조합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선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쟁 전략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약 2,500년 전 중국의 군사 전략가 손자(孫子)도 마찬가지로 심오한 관점을 제시했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전술 없는 전략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라며, 군사적 의사 결정에서 이 두 가지 측면의 상호 보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손자는 동시에 "전략 없는 전술은 패배하기 직전의 아우성에 불과하다"라며 단기주의에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오늘날 전략에 관한 논쟁에 포터 교수가 기여한 바는 크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 체제는 장기적인 사고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 정치 체제가 늘 그렇지는 않았다. 조지 케넌은 처음에는 외교관으로, 나중에는 학자로서 냉전 시기 미국이 소련에 대해 사용한 봉쇄 전략을 고안해냈다. 앤드류 마샬은 국방부 종합평가실(ONA) 책임자로서 미국 군사 전략의 한계를 뛰어넘은 바 있다. 그리고 헨리 키신저는 "그랜드 전략"이라고 불리게 된 전략을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어느덧 예외가 됐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988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비전 같은 거"라고 발언하면서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준 이래 워싱턴에서 전략은 크게 대접받지 못했다. 일관성을 띄기 어려운 소규모 표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가 실시간으로 미국 정책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무역 전쟁에서 기술 전쟁으로, 그리고 나아가 신냉전 초기 단계로 변모한 미-중 갈등의 경우 더욱 그런 측면이 강하다. 2018년 3월 발표된 미국 무역대표부의 통상법 301조 관련 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술적 접근 방식을 규정했으며, 이는 곧이어 강경한 조치로 이어졌다.
이는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 제조 2025 프로그램, 인터넷 플러스 행동 계획,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 계획과 같은 중국의 5개년 계획과 장기 산업 정책 이니셔티브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의 더 전략적인 접근 방식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루었다. 좋든 싫든, 이러한 목표 지향적인 이니셔티브에는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의 궤적을 규정하는 어떤 계산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글로벌 시스템의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는 중국을 처벌하는 데 더 집중해 왔으며, 예를 들어 2001년 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조건을 위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이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관세와 제재의 형태로 나타났고, 곧바로 중국의 보복이 뒤따랐다.
2018년 중반 무역 전쟁이 시작된 이래 미국의 전술과 중국의 전략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불일치는 미-중 기술 갈등의 새로운 전선인 이른바 '스마트폰 전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8월, 중국의 선도적 기술 기업인 화웨이가 새로운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하면서 미국을 놀라게 했다. 지나 라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베이징 방문에 맞춰 출시된 것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블룸버그 뉴스의 의뢰를 받은 테크인사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스마트폰은 중국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에서 제조한 7나노미터 기린 9000 칩으로 구동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3나노미터 칩으로 구동되는 애플의 신형 아이폰 15에는 물론 뒤지지만, 화웨이의 이번 혁신은 5G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토종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제재에 집중하는 미국 당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 쪽이 전술에 집중하고 다른 쪽이 전략에 집중하는 차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화웨이가 핵심 사업과 공급망 의존성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공격적인 전술 캠페인에 전략적으로 대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상무부가 2019년 처음으로 화웨이를 수출 규제 대상 기업 목록에 올리면서 한때 중국이 지배적이었던 스마트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때, 중국에서 가장 R&D 집약적인 기업인 화웨이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포터 교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중국 기술 부문에 대한 미국의 전술적 접근은 중국의 군사-민간 융합을 겨냥한 것으로, 이중 용도 기술이 무기 생산에 적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라이몬도 장관과 제이크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새로운 메이트 60 프로를 평가하는 데 같은 관점을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궁극적인 소비자용 정보 기기를 겨냥할 수 있으며,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서방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선호해 온 소비 주도의 중국 성장에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중국이 휴대폰 전쟁에서 영향력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중국은 보안 우려라는 모호한 명분으로 공무원의 아이폰 구매를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국영 기업 근로자로까지 구매 금지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는 암시가 나오고 있다. 중국 시장이 애플의 전세계 매출의 거의 2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에게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애플은 일찍이 인도와 베트남으로 사업장을 이전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여전히 주요 생산 및 조립 기지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터 교수나 손자의 논리를 개별적으로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전략적인 사고의 부족을 전술만으로는 메울 수는 없다. 화웨이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 물어보라. 그리고 그 답을 워싱턴에 알려주기 바란다.
▶ 기고문 원문
(사진 출처: www.project-syndicate.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