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친환경 산업법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의 프랑스판이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 녹색산업법의 구체적 조치 중 하나로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그 영향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의 모색이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의 IRA 전기차 보조금 제도가 최종재의 조립과 주요 부품의 미국 또는 FTA 협정국 내 조달이라는 생산과 조달의 입지를 조건으로 하는 반면,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자동차 생산 과정의 탄소발자국을 기준으로 한다.
산업연구원은 이에 《프랑스판 IRA, 전기차 보조금 제도의 내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새 제도 내용을 소개하고 시사점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요지를 소개하고 보고서 링크는 맨 아래 공유한다.
환경정책과 산업정책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본 개정안은 환경정책에 대한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준다. 기존의 기후정책이 배출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면, 새 보조금 제도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시에 경제 안보 및 자국 내 산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산업정책의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보호주의적 성격도 띠고 있다.
보호무역 조치 범위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상이 중간재인 이차전지에서 최종재인 전기차로 이동하는 것은 최종재 생산에 참여하는 가치사슬 전체에 걸친 비관세 장벽의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IRA 보조금,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등 보호주의 성격의 비관세 장벽 증가는 시장과 생산 입지의 지리적 분리가 아닌 재통합 경향을 강화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 생산 후 수출 방식에서 현지 생산 후 현지 판매 모델로 이행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변화는 국내 산업생태계의 공동화 위험을 증가시킨다. 선진국이 제조업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지난 30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는 다시 적응해야 한다.
(사진 출처: bloomberg.com) |
전기차 보조금 제도 경과
프랑스의 친환경 차량에 대한 구매 보조금 제도(Bonus-Malus cologique)는 2007년 환경 그르넬법(Grenelle de l’environement)의 일환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차량 구매 시 재정 지원을 제공하거나 환경부과금을 부과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것이 골자이다.
주요 목표로 저탄소 배출 차량으로 소비패턴 변화, 제조업체의 친환경 기술 혁신 유도 오염이 심한 차량의 단계적 폐기를 통한 차량 리뉴얼 가속화를 제안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200(130g/km 이하)~5,000(60g/km 이하)유로의 인센티브를 지급하였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60g/km을 초과하는 경우 배출량에 따라 200~2,600유로의 환경부담금을 부과하였다.
제도 도입 후 연간 24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축되었고, 부담금 징수 대상 차량이 23.5%에서 14.2%로 감소하는 등 탄소 배출 감축 및 소비자의 차량 구매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보조금 제도의 재정적 부담과 소비자에 대한 비용 전가 등의 문제가 제기되며 보조금 제도는 여러 차례 개편되었고 적용 기준은 점차 강화되었다.
2016년의 경우 디젤차를 제외한 차량과 일부 하이브리드 전기차 중 배출량이 60g/km 미만인 차량에 대해서만 재정 지원이 제공되었다. 2020년부터는 배출가스 측정을 기존의 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 방식에서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orldwide Harmonized Lightduty vehicle Test Procedure)으로 전환하며 엄격한 배출가스 측정 방법을 도입하였다.
아울러 전기차 및 수소차 시장이 활성화되며 해당 차종에 대한 보조금을 강화하였다. (중략) 중량이 2.4t 미만인 차량 중 구매 비용이 4만 7,000유로 미만인 전기차의 경우 구매 보조금 5,000유로를 지급한다. 다만 전기승합차의 경우 6,000유로를 지급하고, 저소득가구의 경우 2,000유로를 추가 지원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기차 구입 시 최대 7,000유로, 승합차의 경우 8,000유로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과 법인의 경우로 구분하여 지급되는데, 법인의 경우 승용차는 3,000유로, 승합차는 4,000유로의 구매보조금을 지급한다. 또한 보조금을 지급받은 구매자는 차량 등록 후 1년 이내에 해당 차량을 판매할 수 없다.
2024년 전기차 보조금의 주요 내용
2023년 9월 19일, 프랑스 정부는 녹색산업법의 일환으로 2024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7월 말 초안 발표 후 약 한 달간 이해관계자의 의견 청취 후 확정된 최종안이다. 프랑스의 브뤼노 르메르(Bruno Le Maire) 경제부 장관은 이번 개정안이 가장 환경친화적인 차량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을 목표로 한다고 언급하였으나, 기준을 살펴보면 프랑스를 포함하여 유럽에서 생산되는 차량에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보조금 기준이 도로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에 근거했던 반면, 개정안은 도로 운행 전 차량 생산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을 합산한 탄소발자국 점수를 도출하고, 여기에 재활용 점수를 더하여 환경점수를 도출한다. 환경점수는 차량 유형에 따라 상이하게 설정되며, 생산 단계에서 산출된 탄소발자국 점수를 최소 70%, 재활용 및 바이오 기반 재료 사용, 배터리의 수리 가능성 등을 고려한 재활용성을 최대 30%로 구성한다.
탄소 배출량 계산 시 포함되는 공정은 원자재인 철강, 알루미늄 및 기타 재료 생산부터 배터리 생산, 조립, 차량의 수송 등 총 6개 부문이다. 2.4t 미만 차량에 적용되며, 총점인 80점 중 6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야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된다.
제조업체는 행정명령에 명시된 서류를 프랑스 환경·에너지 관리청(Agence de l’environment et de la Ma trise de l’ nergie, ADEM)에 제출해야 한다. 주요 제출서류에는 자동차를 조립한 곳, 배터리를 생산한 곳, 자동차 사양, 철강, 알루미늄, 기타 원자재의 생산 관련 정보, 배터리 용량 등의 정보, 자동차 운송 관련 정보가 포함된다.
ADEM은 서류 접수 후 1개월 이내 추가 정보 및 보완 서류를 요청할 수 있다. 서류 접수 후 2개월 이내에 경제·에너지·생태·교통 주무장관은 해당 차량의 환경점수 최소치 달성 여부를 결정한다.
2023년 10월 제조업체는 필요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프랑스 환경 및 에너지 관리청은 이를 기반으로 점수를 계산하여 2023년 12월 15일 보조금 대상 차량의 목록을 발표할 예정이다.
예상 영향
1) 전기차 시장 및 보조금 지급 현황
최근 전기차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AE)에 따르면 2022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대 이상 판매되어 전년 대비 55%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2023년에는 1,400만 대의 차량이 판매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전기차로 한정할 때, 중국은 2022년 기준 총 440만 대 판매하였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60% 증가한 수치이다. 유럽의 전기차 판매 점유율은 21%로 2위를 차지한다. 프랑스의 경우 2020년 19만 대에서 2022년 46만 대로 증가하였으며,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시장점유율은 11%에서 22%로 증가하였다.
프랑스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80% 이상이 수입 차량으로 조사되었다. 2023년 8월 기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프랑스 전기차는 <그림 1>과 같다. 테슬라 모델 Y가 3,051대 판매되었고(전년도 대비 355% 상승), 테슬라 모델 3이 2,258대 판매되었다. 푸조 e-208과 피아트 500이 각각 1,609대 판매하며 프랑스 전기차 시장의 10대 모델에 드는 것으로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 보조금 측면에서 볼 때, 2022년 9월 기준 프랑스에서 생산된 차량에 대한 구매 보조금은 1억 4,000만 유로로 전체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프랑스에서 판매된 차량 중 상위 20대 차종에 지급된 총 3억 2,004만 유로의 보조금 지급 대상 중, 프랑스에서 생산된 차종은 5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프랑스 전기차 시장은 점점 더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한편, 전기차 보조금은 해외 생산 브랜드에 상당 부분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2) 전기차 보조금 예상 영향
보조금 개정안에 따르면 전기차 생산은 물론 배터리 생산 입지와 국별 에너지원 구성이 프랑스 전기차 시장 내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개정안은 프랑스 및 유럽에서 생산하는 차량과 중국 등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차량 간 경쟁력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환경점수를 기준으로 한 보조금 지급이 프랑스 및 유럽에서 생산하는 기업을 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경우 대부분의 항목에서 높은 탄소 배출 등급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보조금 적용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고, 이로 인해 경쟁우위를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경쟁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보자. 테슬라의 경우 연초 차량 가격을 보조금 수급 기준인 4만 7,000유로 이하로 조정하였고, 작년부터 미국과 중국에서 생산하던 모델 Y를 베를린 생산기지로 일부 이전하였다.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차량은 베를린에서 생산된 차량으로 보조금 수급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델 3의 경우 중국 상하이에서 수입되고 있어 추후 보조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서 조립되고 있는 저가 차량인 Dacia Spring과 MG 역시 보조금 수급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배터리 생산 입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배터리의 경우 전기차 가격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기도 하지만,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가장 큰 부분이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탄소발자국 점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은 보조금 적용에 불이익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럽 내 생산으로의 재편이 예상된다.
에너지원의 차이에 따른 경쟁력 효과 역시 결정적이다.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지역별 탄소 배출의 차이를 낳는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믹스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중략) 중국, 한국, 일본 등이 석탄 화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의 경우 63%를, 한국은 약 36%를 의존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탄소배출량이 적은 원자력과 수력에 의존하고 있고 석탄 화력은 1.83%의 비중을 차지한다. 탄소배출량이 높은 석탄 및 가스에 의존하는 국가에서의 생산 활동이 환경점수 획득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고려한 공급망 재편 가능성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