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혁을 가져오리라 여겨졌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졌던 전기차 및 이차전지 산업이 시험대에 올랐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차량 구매 부담 증가,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등으로 전기차 판매가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및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며 국내 이차전지 업계의 일부 수요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들은 이번 시기를 인력과 투자 시간을 벌어주는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며, 미-중 갈등에 대응하여 非중국 소재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품 다변화와 생산 안정화에 나서는 등 내실을 키우는데 집중할 계획이어서 '진검승부' 시기가 온 듯하다. 이에 관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 최근 동향을 정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미국 GM-LG솔류션 합작 배터리 공장 모습. 사진 출처: www.enr.com) |
그간 빠르게 성장했던 전기차 판매가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둔화되는 추세
- 세계 전기차 수요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EV 판매 증가율은 부동산 부진 등 경기 둔화 여파로 ‘22년 97.1%에서 ‘23년 1~8월 39.6%로 하락
- 북미의 경우 아직 전년대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딜러사에 전기차 재고가 빠르게 쌓이는 등 판매 열기가 냉각
- ‘23년 9월 미국 EV 재고일수는 전년동월대비 271% 증가한 97일(적정 수준 60~90일)
- 유럽은 ‘23년 8월까지 양호한 판매를 기록하고 있지만, 핵심 시장인 독일에서 9월부터 보조금이 축소되며 EV 등록대수가 전월대비 64% 감소하는 모습
- 한국의 EV 판매 증가율은 ‘22년 47%에서 ‘23년 1~8월 2.8%로 주요 지역 중 가장 크게 위축되었는데 경기 부진 속 보조금 감소 및 충전요금 인상 등에 기인
최근 급변한 시장 상황에 대응하여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에 따라 조정 방향은 차별화
- GM은 혼다와 공동 개발 중인 보급형 소형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전면 취소했고, 미시간주에 건설하기로 한 전기차 전용공장의 가동 시점도 ‘25년으로 1년 연기
- 포드는 ‘23년 전기차 생산목표를 60만대에서 40만대로 낮췄으며, 배터리 공장 건설 등 120억 달러(약 16조원) 규모의 전기차 관련 투자를 연기하겠다고 밝힘
- 폭스바겐은 독일 볼프스부르크 차세대 전기차 공장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으며, 핵심 EV 생산기지인 츠비카우 공장의 임시 인력을 감축하는 등 생산 축소
- 반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시장 악화에도 기존 전기차 생산 및 개발 계획을 유지할 계획이며, 도요타는 미국 배터리 공장에 80억 달러 추가 투자를 발표
완성차의 전기차 속도 조절 움직임에 따라 국내 이차전지 기업의 생산 계획에도 영향
- 포드의 EV 투자 연기로 블루오벌SK(포드-SK온 JV)의 일부 배터리 공장 건설이 지연
- SK온과 포드는 테네시주에 1개, 켄터키주에 2개 공장을 건설 중인데, 이중 ‘26년 가동 예정이었던 켄터키 2공장 건설이 지연되며, 나머지 2곳은 예정대로 진행
-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의 북미 배터리 1~3공장은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이나, 현재 건설 중인 미시간주 3공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라인 증설 속도를 조절해 나갈 수 있음(LG에너지솔루션, 3분기 실적발표 중 언급)
- 오하이오주 1공장은 ‘22년 11월 가동 시작, 테네시주 2공장은 ’24년 초 가동 예정
- 삼성SDI의 경우 현재 완성차와의 합작공장 지연 이슈는 없으나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단기적인 수요 둔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상황 예의 주시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이 자국 내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수출과 해외 진출을 확대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는 점도 국내 업계의 부담으로 작용
- 중국은 경기 둔화 및 높은 전기차 침투율로 EV 성장 속도가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규 이차전지 기업은 크게 늘어나 경쟁강도가 상승하고 공급과잉 발생
- ‘23년 1~8월 中 배터리 생산 419.7GWh, 이용 219.2GWh, 재고 200.5GWh(CABIA)
- ‘22년 중국 이차전지 기업의 평균 추정 가동률은 55%(CRU)에 불과하며, 1위인 CATL의 가동률도 ‘22년 83.4%에서 ‘23년 상반기 60.5%로 크게 하락
- 중국 기업들은 내수 포화를 타개하고자 리튬 이차전지 수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는데, 수출 증가율은 ‘22년 80%에 이어 ‘23년 1~9월에도 39%로 높은 수준
- 서방과의 갈등으로 무역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CATL, 궈쉬안 하이테크, SVOLT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은 수출을 넘어 유럽 등으로의 직접 진출을 확대하고 있음
최근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등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차전지 전반의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점도 사업 환경을 저하시키는 요소
- 흑연은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원료로 세계 흑연 채굴 및 가공의 70~80%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무기화에 가장 취약한 품목 중 하나
- 대규모 설비투자, 느슨한 환경규제, 낮은 인건비 등으로 中 흑연 가격경쟁력 우수
- 한국은 올해 1~9월 인조흑연의 94%, 천연흑연의 98%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단기간에 국내 및 여타국으로 대체 어려움
- 중국의 자원 무기화가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만큼 여타 소재로의 통제 확대나 공급망 불안 심화로 생산 지연이 발생할 수 있어 사업의 잠재 리스크로 작용
전기차에 대한 장기적인 성장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나, 고금리 장기화 우려 등 불안정한 글로벌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이차전지 산업의 단기 성장통 불가피
-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유가 불안 등으로 물가가 다시 반등하는 조짐을 나타내면서 ‘24년에도 금리가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
- 고금리 장기화로 구매 부담이 높아짐에 따라 판매 촉진을 위해 EV 가격 인하 경쟁이 지속될 수 있으며, 이는 완성차의 수익성 악화와 투자 여력 약화로 연결
-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美 업체들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도 부담
-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출시 계획을 늦추고 목표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면서 국내 이차전지 업계의 단기 수요 위축이 불가피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은 미-중 갈등 대응을 위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LFP 배터리 양산 등 제품 다변화와 생산 안정화에 나서는 등 내실을 키우는데 집중할 계획
-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수주잔고가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단기 수요 변동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일감은 충분히 확보
-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이번 둔화기를 통해 그간 압축적으로 진행된 생산 확대 경쟁의 속도를 늦추고 인력과 투자 시간을 벌어주는 기회로 이용하고자 함
- 가파른 생산 확대로 수율 저하 문제를 겪고 있는 기업들은 안정화 시간 확보 가능
- 최근 중저가 EV용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을 추진하는 등 기존 삼원계 배터리 개발과 함께 제품 다변화에도 나설 계획
- 또한 장기적으로 소재 공급망 내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호주·칠레·캐나다 등 非중국 국가에서 리튬, 흑연 등 핵심 광물의 공급망 재구축을 추진
◆ 유럽 배터리 시장 중국 점유율 급등, 한국 점유율 하락 이유와 전망 (Click)
◆ (참고) 프랑스판 IRA 내용과 특징, 그리고 예상 영향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