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익한 보고서를 소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자 전 세계 통화‧재정 당국은 20세기 대공황과 21세기 초 미국발 금융위기 혼란 등을 떠올리며 막대한 대응책을 시행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선언과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사태가 터지면서 전 세계는 공급망 충격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서 유례없이 가파른 인플레이션 가속화를 경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사태가 있었지만, 과연 코로나19 대응 통화‧재정 정책의 허점은 없었을까? 그리고 공급망 충격에 따른 세계 경제의 동요는 자본주의 역사에 어떤 동인을 제공할까? 이런 궁금증을 소개하고 시사점을 함께 고민하는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제목 『수요위기를 넘어 공급위기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보고서 전체는 맨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수요위기 對 공급위기의 차별적 동학(dynamics)》
■ 위기 역사라는 관점에서 수요위기와 공급위기의 차별적 동학(動學) 주목
- 현 위기는 이미 경제학적으로 논증된 1970년대 오일쇼크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보다 장기적인 위기의 역사라는 관점에도 주목할 필요
- 특히 미국의 경제사가 해럴드 제임스는 19세기 중반 현대 자본주의 혹은 세계화 개시 이래 모두 7번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매 위기가 각각 차별적인 동학을 보이지만 크게 위기의 속성에 따라 수요위기와 공급위기로 대변된다고 설명
- 그리고 현 위기는 수요위기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급차질에 따른 공급위기이며, 이런 위기의 속성에 대한 잘못된 접근으로 위기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
■ 그동안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수요위기의 경험에 치중
- 통상적으로 코로나 위기 이전의 세계경제 대형위기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에 관심이 쏠리는데, 이들 위기는 모두 수요부족에 따른 위기
- 둘 다 세계화의 확산과 맞물린 수요 및 금융 과잉이 결국 거품 붕괴에 직면하면서 초대형 금융위기를 계기로 광범위한 수요위기로 귀착되었는데, 반면에 당시는 이른바 ‘풍요 속의 빈곤’으로 일컬을 정도로 정작 공급여력은 풍부한 편
- 이런 상황에서 심도깊은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위험이 부상하고, 이에 대응하여 케인즈의 능동적인 정부 역할(←세계대공황), 벤 버냉키 前연준의장의 비전통적 통화정책(←글로벌 금융위기) 등과 같은 수요부양을 위한 과감한 노력이 주효
■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수요위기 못지않게 공급위기의 영향력도 중요
- 1970년대의 오일쇼크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보다 역사적인 안목에서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과 맞물린 유럽의 공급위기 등에도 주목할 필요
- 오일쇼크는 원유를 비롯해 곡물 등 핵심 원자재와 생필품의 공급차질 이슈였고, 19세기 중반 위기는 기상악화와 전염병 등에 따른 곡물 위주의 공급차질 문제
- 아울러 지금과 같이 복잡한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의 해상 봉쇄 등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공급위기 역시 간과해선 안 될 쟁점
- 특히 당시에 해상 봉쇄가 생필품이나 자원, 나아가 군사무기 등의 보급차질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동시에 상대국 입장에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전쟁 승리의 핵심으로 인식되면서, 이른바 ‘경제의 무기화’가 전면에 부상
■ 공급위기는 수요위기와 달리 혁신의 원동력, 즉 생산적 위기로 작용
- 수요위기는 주로 금융시스템의 기능장애 혹은 그 설계나 규제 부실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로 진행되면서 경제주체의 구매력을 훼손하는 일종의 ‘비생산적 위기’
- 반면 공급위기는 필수품이나 다양한 전략물자들이 희소해지면서 상대가격이 상승하고 생산․공급의 새로운 경로가 요구되는 상황으로서, 생산적 적응의 새로운 계기를 찾아 기술 및 제도 혁신을 강제하게 되는 ‘생산적 위기’로 평가
-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 그 자체보다는 기존 기술의 응용. 가령, 19세기 후반 증기선과 20세기 후반 컨테이너선은 기존 기술을 공급역량 확대에 적절히 활용한 사례
- 한편, 이러한 혁신에는 새로운 공급루트나 판로개척, 혁신 아이디어에 대한 자금공급 등과 결부된 금융혁신도 포함되며, 제도적 차원에서 대내외적인 통화․화폐 실험도 병행(19세기 후반의 금본위제나 20세기 말 이후 정착된 물가안정목표제 등)
- 따라서 수요위기 시에는 디플레이션 압력과 맞물린 분배 불평등에 대한 소득분배의 재조정 요구가 거센 반면, 공급위기 시에는 인플레이션 과정에서 자원의 희소성을 반영한 상대가격(인센티브) 변화로 인해 자원배분의 재조정이 활성화
■ 나아가 국가역량의 강화와 더불어 세계화의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
- 수요위기 과정에서는 수요부양을 위한 정부 역할이나 책임 강화가 현안으로 부각되지만, 공급위기 중에는 그 이상으로 국가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나 불만이 커짐에 따라 통치체제의 재편이나 혁명 등과 같은 정치적 급변을 야기
- 실제로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혁명 열기나 민족주의 확산, 또 20세기 후반 정부의 과도한 역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신자유주의(‘워싱턴 컨센서스’)의 확산이 대표적
- 이런 가운데 세계화에 대한 환멸이나 역풍이 확대되면서 수요위기 이후에는 아예 무역 및 자본흐름 통제 등으로 세계화가 후퇴 내지 정체하는 모습이 지배적
- 특히, 1930년대 대공황 혹은 양차 대전 사이의 전간기(interwar)를 거치면서 세계화의 급격한 후퇴나 21세기 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이른바 ‘Slowbalization’ 현상 등
- 공급위기도 초반에는 공급망 안보를 위해 보호주의, 통상마찰 등이 부각되나, 결국 소통과 혁신의 새로운 에너지를 좇아 사실상 뒷문으로 세계화를 더욱 진작
- 19세기 후반 자유무역주의의 확산과 국제 금본위제 안착 등에 기반한 1차 세계화, 오일쇼크 이후 금융세계화와 결부된 이른바 ‘hyperglobalization’(2차 세계화) 등
《생산적 위기로의 전환 필요》
■ 오늘날 위기 대응은 잘못된 전쟁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사실 코로나 위기 과정에서 충격의 본질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수요위기로 간주하고 접근하면서 수요 부양을 위한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이 처방으로 제시
- 하지만 정작 수요침체는 제한적이었으며, 대신에 의료물자 공급부족이나 특정 재화 소비 붐과 지정학적 갈등 및 공급망 재편에 따른 원부자재 공급차질이 치명적
- 사실 공급위기는 돈을 푼다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오히려 공급부족에 따른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따름. 따라서 공급차질과 그로 인한 상대가격의 왜곡은 거시경제적 수요관리보다는 미시경제적 자원배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
■ 점차 수요충격 효과를 수반한 공급충격의 취약성이 커지고 있음에 유의
- 앨런 블라인더(2013)는 오일쇼크 이후 세계경제의 환경 변화에 주목하며 “공급충격 설명은 질적으로는 유효하나 양적으로는 덜 중요해졌다”고 평가
- 하지만 세계경제의 복잡한 상호연쇄 속에 공급망 차질의 ‘나비효과’(일본의 동북 대지진이나 수에즈운하의 컨테이너선 좌초 등)가 속출하고, 점차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재편, 통화정책의 제약 심화 등으로 공급 충격에 따른 취약성 재부각
- 아울러 이러한 공급충격이 동시에 다양한 경로를 통한 수요 충격으로 전환되는 등 공급위기와 수요위기의 상호작용에 따른 위험도 크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
■ 생산적 적응의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
- 공급위기는 본질적으로 기저의 생산성 둔화에 기반하며 이러한 생산성 둔화를 극복하기 위한 공급 측면의 혁신과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
- 또한 공급위기가 기성 정치․정부 시스템의 지배구조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결부되면서 파퓰리즘이나 권위주의적 정치 레짐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로 인한 폐단이나 역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민관(民官)의 발전적인 협력 형태가 요구
- 또한 자국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보호주의나 공급망 분절화 확산에 대응하여 소통과 혁신의 새로운 에너지를 위해 오히려 세계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이 중요
■ 복합위기에 직면한 우리나라도 공급충격 관리에 보다 많은 관심 필요
- 중소 개방경제국으로서 우리나라는 글로벌 차원의 공급망 재편 시도나 지정학적 갈등 등에 따른 공급충격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 대내적으로 노령화 등과 맞물려 기존 성장모델의 한계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차원의 공급충격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내외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와 내부적인 혁신역량을 제고하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이 요망
- 단, 공급충격의 수요충격으로의 파급효과에 주목, 경제 안정 및 사회 통합 강화라는 차원에서 피해자나 취약층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배려도 여전히 중요
■ [참고] 공급위기에 맞선 바이드노믹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미국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바이드노믹스”)을 중국의 위협에 맞서 미국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한 패권적 전략으로 이해하는 행태가 지배적이나, 실제 그 설계도나 청사진을 보면, 공급위기에 맞선 정책 초점의 전환을 내포
-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 ‘현대산업정책’(Modern Industrial Policy)은 생산능력 확장과 생산성 혁신 등 공급정책이 핵심이며, 이를 옐런 美재무장관은 ‘현대 공급중시경제학’(Modern Supply-side Economics)으로 역설
- 아울러 ‘워싱턴컨센서스’로 대변되는 기존 세계화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편,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도전에 맞서 근로계층과 중산층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뉴워싱턴 컨센서스’를 도모하고 있는 점도 주목
- 이 과정에서 지경학적 경제안보가 부상하면서 중국을 표적으로 삼은 공급망 분절화가 부상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 등 서구는 중국에 대해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니라 위험제거(derisking)”라는 방식으로 그 위험을 억제, 완화하려는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