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터통신 동료 기자의 칼럼을 소개 해 드립니다)
(장태민 칼럼) 외인의 거침없는 주식시장 침투를 보는 다른 시선들
서울, 9월13일 (로이터) - "20년 넘게 주식시장을 봐 왔던 경험을 감안할 때 지금 외국인 매수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들어올 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겁니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외국인 주식 매수 동향에 대해 '도저히'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를 앞두고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한국경제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펀더멘털, 한국시장의 '상대적으로' 싼 메리트 등을 거론해 봤지만 그는 허튼 소리로 치부해 버렸다.
주식시장으로 외국인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있는 것은 뭔가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게 A씨의 추론이었다.
적어도 아시아 일부국가의 불안이 한국을 일단 '파킹처'로 만드는 것 아닌 지, 글로벌 불확실성이 클 때 성능좋은 현금입출금기(ATM) 역할을 하는 한국의 장점(외인들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지 지적을 해 봤지만 A씨는 '하수들이나 내세우는 논리'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장이라고 했다. 최근 국내 펀더멘털이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자금이 들어오니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A씨가 주식 숏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것같지는 않았으나 사실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 외인의 매수, 뭔가 다른 게 있을까.
외국인의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관점 변화는 올 하반기부터 시작했다. 상반기에 10조원 가량을 순매도한 뒤 7월과 8월부터는 한국 주식을 사고 있다.
특히 최근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매수 규모는 놀라울 정도다.
외국인은 전날까지 코스피시장에서 15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다. 순매수 규모는 6조6719억원에 이른다. 이 기간 주가지수는 7.2% 상승하면서 3개월여만에 2000선을 넘어섰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6월까지 9조9550원을 순매도한 뒤 7월과 8월엔 1조3480억원, 1조5240억원을 순매수했다. 전환기를 거친 뒤 최근 매수 규모는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 5일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하루만에 5천억원 남짓 순매수하더니 연일 그 이상을 사고 있다. 10일엔 8천억원 넘게 순매수했으며 전날(12일)엔 1조4301억원이나 대거 순매수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외인이 '갑자기' 보기 드문 '바이 코리아'에 열중하면서 A씨와 같은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약간 길게 보면 우선 상황 변화는 큰 수급 악재가 하나 걷힌 게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의 인덱스 펀드회사 뱅가드 펀드의 지수변경에 따른 한국물 매도가 상반기에 일단락된 뒤 외국인이 매수 우위로 돌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대형펀드가 꾸준히 팔아야 한다면,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미국 양적완화 우려로 지난 6월 국내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거린 이후 외인들은 한국을 매수처로 지목한 양상이다.
하지만 찜찜하다. 위기국 대비 '상대적 메리트' 등을 감안할 수 있지만, 문제는 외국인의 최근 주식매입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별로 변한 것 없는 한국의 펀더멘털에 대해 '양호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물밀 듯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20년 넘게 주식밥을 먹고 산다는 A씨와 같은 부류들은 다른 이유를 찾느라고 머리를 싸맸다. 사실 과거에 외국인이 국내 시장에 급속하게 들어올 때는 국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적도 많았다.
이런 부류들은 국내가 모르는 신용등급 상향,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단기 헤지펀드의 한국 공격 등을 떠올리곤 한다.
주가 움직임이 경기 선행성을 띈다는 차원에서 한국경제를 장기적으로 좋게 보기 때문에 한국 주식 비중을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 노회한 전문가들에게 이런 진단은 그리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 외인이 주식 사면..이유와 함께 추가 매수 논리 만들어지는 법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게 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외국인은 우선 최근 15영업일간 주식을 7조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상반기에 팔았던 규모의 주식을 거의 다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외인은 2011년 전체로 9조5천억원 남짓을 순매도했으며, 지난해엔 17조6천억원 남짓 순매수했다.
주식을 사거나 주가가 오를 때는 더 사야 하거나, 올라야 하는 명분을 찾는 게 시장의 심리다. 시장에선 외인이 10조는 더 사야 인덱스를 맞출 수 있다는 식의 얘기도 나온다.
외인이 계속 사니 계속해서 이유를 찾아 내야 속이 편한 것이다. 그래야 뒤늦게라도 따라가면서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외국계 은행의 B씨는 단순하게 봤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글로벌 상황이 한국 주식 투자에 안성맞춤 아닌가 하는 진단이다.
B씨는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회복되고 유럽도 침체에서 벗어나고 중국 마저도 일각의 우려와 달리 무너지기 보다는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어서 외인을 자극했을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주변 환경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이같은 환경에선 결국 한국이나 대만같은 선진 신흥국이 최대 수혜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 C씨는 지금 아시아에서 한국 비중이 언더웨이트돼 외인이 채우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C씨의 이런 판단엔 글로벌 경기, 특히 중국 경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다.
중국 경기가 좋아지면 상대적으로 가장 수혜를 보는 국가가 한국 아니냐는 것이다. C씨는 글로벌 펀드들의 아시아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감안해 외인이 지금부터 최소 4조원 이상은 더 순매수할 것으로 봤다.
▲ 한국 주식 비중 늘리는 외국인을 보는 관점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수세에 국내 투자자들은 당황스럽다. 헌데 지수 2천선에서도 외국인의 매수세엔 거침이 없어 보인다. 이런 모습을 접하는 투자자들의 입장은 각기 다르다.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매수를 납득할 수 없는 A씨는 이 매수가 향후 한국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헤지펀드가 한 번 '해 먹고' 나서 한국 주식시장은 다시 혼란에 휩쌓일 수 있다는 게 그의 '경험적' 추론이다.
B씨는 외국인이 흥분한 뒤의 반응에 주목한다.
지난 2004년엔 외국인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마켓셰어를 42%까지 끌어올렸다. 그 이후 리먼사태 직전인 2007년엔 32% 수준까지 낮췄다.
B씨는 2004년에 외인이 최대치로 늘린 뒤 주가지수가 2007년 2072까지 수직 상승했던 경험을 거론했다. 당시 주가지수 917에서 1000포인트 넘게 뛰었던 기억이다. 이후엔 외국인이 차익실현 등으로 줄였다.
올해 8월 현재 외국인의 주식비중은 31% 수준이다. 최근 많이 사면서 그 비중은 더 올랐을 것이다. 외국인이 2004년 한국주식에 열을 올릴 때 '싸다는 논리'가 작용했다고 B씨는 판단한다.
같은 논리라면 외국인은 앞으로도 생각보다 많이 살 수 있으며, 내년에 지수 3000이 가능할 수도 있다.
장기간 지수 2천선이 박스 상단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믿거나 말거나다. 과거 지수가 2천을 넘고 주변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3천, 5천을 부르짖을 때 주식은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 비슷한 상황을 접하면서도 항상 판단은 어렵다.
▲ 실물이 먼저 좋아져야 한다는 관점에선 벗어나야
주가는 경기보다 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지 않아도 주가는 오르는 경우도 많다. 그 흐름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식 투자는 어렵다.
다만 외국인의 거침 없는 매수를 보면서 '경기는 달라진 게 없는데...'라는 논리는 함정도 많아 보인다.
어차피 글로벌 위기가 금융에서 시작된 뒤 투자심리가 망가졌으며, 다시 실물까지 훼손되는 구도가 이어졌다. 지금은 그 반대도 가능할 수 있다.
연준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채권금리 상승이 예상돼 주식으로 돈이 몰리는 '그레이트 로테이션'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금융 쪽에서 먼저 주가를 끌어올리고 심리가 개선되면 향후 실물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가의 선행성에 무게를 둔다면 지금 관찰되는 펀더멘털과 주가의 괴리에 대해 그다지 이상하게 볼 필요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A씨의 관점을 중시한다면 헤지펀드의 공격 이후 다시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A씨는 푸른 눈 큰 손들의 '먹이사냥'에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수를 보면서 모두 과거의 포로가 돼 버렸다.
주식과 선물, 옵션을 짧게 사고 파는 C씨의 경우엔 흐름을 타는 일을 중시한다. 외인의 대규모 매수에 놀랐지만, 중심을 지켜가면서 매매에 임하고 있다.
미래는 어찌될 지 모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단기 매매자에겐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능숙한 서퍼의 기능이 중요하다.
환율 흐름도 당연히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은 환과 주식차익에 모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흐름이 당국에 대한 경계심으로 1080원선에서 막히긴 했지만 외인의 매수세와 함께 늘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환율이 계속 내려가야 외국인들은 거침없는 매수도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보는 외국인 한국 주식시장 헤집기에 사람들의 심기가 아주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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