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8

경제민주화 논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필자의 사견입니다)

지난 겨울 대통령선거 이후 대한민국에서 단연 화두가 되고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바로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필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용어 사용에 남들보다 큰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어서 이 말이 등장할 때부터 유독 관심을 갖고 관찰해 왔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 이 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내가 처리해야 하는 기사에 등장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전히 자신이 없다.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온라인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라는 표제어 아래 "요약: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 다음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헌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현상

이 때 대기업이라 하면 쉽지 않게 재벌그룹들을 떠올리게 된다. 대한민국의 재벌그룹들은 선단식 경영, 복잡한 상호지분소유 등을 통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주요 업종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주요 경제국으로 성장하는 고도산업화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재벌그룹들의 기여가 없었다면 이처럼 빠른 산업화를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현재 재벌그룹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길래 부의 편중 완화 얘기가 나오는 것일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대상으로 지정된 그룹은 51개이며 소속 계열사는 1,680개 사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규모 면에서 보면 상위 몇 개 그룹들이 특히 상식을 뛰어 넘을 정도로 막대하다.
 
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은행, 재벌닷컴으로부터 수집 가능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해 본 결과 2011년 현재 자산 규모 기준 상위 8대 그룹(자산 50조 이상)은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에 있어서 한국 전체의 0.02%와 3.5%를 각각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액의 27% 그리고 해외매출액의 67%를 각각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헌법에 정말 대기업 규제가 언급돼 있나

이렇듯 재벌그룹들이 한국 경제에서 점유하고 있는 중요성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한편 재벌그룹 소속 계열사들은 주요 업종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소규모 혹은 비재벌 기업들에게 부당한 상행위를 벌이다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례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어 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국민들의 관심이 경제발전에서 부의 균형적 배분 쪽으로 빠르게 옮아가면서 결국 부의 균형적 배분은 곧 재벌그룹의 부의 증가를 완화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재벌의 부를 제한하면 정말 국가적으로 부의 균형적 배분이 달성되는 것인지의 논의는 뒤로 하고 필자는 우선 정말 헌법에 대기업 규제가 적시돼 있는지 살펴보았다. 헌법 119조 1항에는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반면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라는 표현은 다분히 대기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직접 언급된 다음 구절에는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추구할 것을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보통 경제 주체라 하면 가계 즉 소비자, 기업, 그리고 정부를 가리킨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들 사이에 조화를 추구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 경제민주화는 정치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헌법 조항 해석에 대해 정치권에 이의를 제기할 마음은 없다. 다만 헌법 조항을 들춰보아도 명확하지 않은 이 용어를 가지고 이미 복잡하게 구성돼 있는 대기업정책을 또 다시 복잡하게 해서 얻는 실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애매한 만큼 이는 다분히 정치권 안에서의 쟁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즉,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 상황에서 한 쪽 정파에서 "이 정도면 경제민주화가 진전됐다"고 할 때 다른 쪽 정파에서 "동의한다. 잘 돼서 기쁘다"며 다음 의제로 넘어가자고 할 가능성은 0%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애초부터 이 용어가 지칭하는 실체에 대해 정파 사이는 물론 기업과 소비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민과 국민, 대한민국과 외국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필자가 대한민국 경제에 있어서 부의 편중 현상을 완화할 필요가 없다거나 대기업들의 부당한 상행위를 방치해도 좋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막강한 기관이 있고 기업과 기업 및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행위를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법과 장치들이 많이 마련돼 있다. 공정거래법 같은 것은 법 자체만 놓고 보자면 세계적으로 모범 사례라고 할 정도다.

▷ 경제민주화보다 정책민주화가 절실하다

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말의 뜻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이미 잘 짜여진 법과 제도가 그 취지대로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현실이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정책민주화"라고 부르고 싶다. 정책의 논의▶입안▶수립▶집행▶보완에 이르는 과정이 민주적인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대기업 관련 정책에 있어서도 역시 한국에서는 위에 제시한 일련의 과정이 석연치 않거나 후진적인 상태라고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어 국회는 다양한 정책 의제를 발굴해 논의를 주도하고 논의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하며 논의 결과에 따라 법안을 발의하고 다른 정파와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수정과 보완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예외 없이" 법을 취지에 맞게 적용해야 하며 국회는 법을 만든 기관이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만큼 법의 민주적 집행을 담보할 수 있도록 본연의 임무를 다 해야 할 것이다. 장황한 말을 했지만 결국 문제는 정책 수립과 집행 및 감시 등의 기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이 우선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재벌 그룹의 위상, 2011년 기준, 종사자수는 2009년)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그룹 지분도,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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