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분기 경제지표 가운데 국내총생산(GDP)보다는 못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인 가계신용 자료가 발표됐다. 한국은행 측의 자료 첫 머리에 제시된 요지는 "2013년 3/4분기 중 가계신용은 12.1조 원 증가했으며 9월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991.7조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4%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한국은행이 제공한 요지일 뿐 전체 자료의 핵심은 아니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02-2003년 카드 부실 사태 이후 조정세를 거친 뒤 이후 경기 회복에 따라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서서히 증가하는 듯했으나 2006년부터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부동산 투자 붐이 일면서 다시 급증했다.
9월 말 현재 잔액이 991.7조 원이며 분기 중 증가액이 12.1조 원이라는 점에 착안해 일부 언론에서는 가계신용이 금년 말까지 1천조 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그러나 1천조 원 돌파가 어떤 의미를 띄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천조 원이라는 돈은 큰 액수다. 그러나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고 경제 규모도 계속 늘고 있다. 한국의 GDP는 2008년 1천조 원을 넘었다. 따라서 가계신용이든 다른 금융자산이든 꾸준히 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증가세가 다른 지표와 대비해 적정한가의 여부다.
오늘 발표된 가계신용 잔액은 연간 GDP 명목금액(필자의 추정)과 비교해 76% 정도 되는 것이며 작년 9월 말 현재의 74% 선보다 소폭 올라간 것이다. GDP보다 가계신용이 약간 더 빨리 늘었다는 말이 된다. 한편 국민소득 지표 가운데 개인의 연간 가처분소득과 비교하면 가계신용은 필자 추정 결과 지난해의 133% 선에서 올해 9월 말 130% 아래로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표와 비교해도 가계신용은 과중하다. 물론 최근 들어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다소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보다 장기간 비교를 해 보면 개인의 가처분소득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급격히 늘고 있다. 물론 가계빚이 너무 빨리 느는 것도 문제지만 또 한 가지 문제는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직자가 발생하자 이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장했고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음식점 등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법인 수가 급증한 반면 개인 신분의 경제 주체는 급감한 것이다. 이런 추세가 일단락된 것은 2002년 경이었다. 그로부터 몇년간 법인과 개인의 전체 가처분소득 대비 비중은 횡보세를 나타냈지만 2006년 후반부터 법인의 소득 비중은 다시 늘고 개인의 비중은 감소했다.
결국 가계빚과 관련한 문제는 첫째, 전체 규모가 너무 빨리 는다는 것, 둘째, 가계소득이 만족스럽게 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셋째, 경제 성장의 과실이 개인보다는 법인에게 더 많이 배분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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