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평가
최근의 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관련하여 이를 우려하는 시각에는 두가지가 있다. 우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획득한 외화가 시장에 그대로 공급되면 원화가 절상 압력을 받아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외환의 수급이 수출입 등 경상거래뿐 아니라 내외국인의 자본거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자본거래 중에서도 내국인의 해외 직접 및 간접투자의 확대를 통한 순유출 규모가 과거보다 커지면서 외환시장의 중요한 수요측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직접투자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글로벌 영업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300억 달러에 가까운 순유출 규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실적이 미미하였던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도 최근 2012년 260.8억 달러, 2013년 268.5억 달러로 상당폭 늘어났다. 특히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 확대는 국내외 금융시장상황 등 일시적 요인의 영향도 받지만 인구구조 변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해외 증권 수요가 확대되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외국인의 직간접투자도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외환공급 요인으로 작용하였지만 2013년의 경우 외국인 직접투자는 122.2억 달러, 증권투자는 185.6억 달러가 순유입되어 내국인의 해외투자 순유출 규모보다 작았다. 즉, 자본거래까지 고려하면 외환시장에서의 초과수요 규모가 경상수지 흑자폭만큼 크지는 않다.
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관련한 또 다른 우려는 내수부진에 따른 수입 둔화가 최근 경상수지 흑자 확대의 주요 요인이 되면서 이를 우리 경제의 활력 저하 신호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생산 확대로 투자와 생산이 해외에서 이루어지면서 내수의 성장 속도가 과거보다 둔화되었지만 해외생산에서 발생한 소득이 우리나라에 귀속되면서 경상수지 흑자는 늘어나게 되었다.
경상수지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최근의 흑자 확대가 우리 기업의 생산의 세계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인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해외투자기업으로부터의 배당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의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증가 요인이 된다. 또한 우리나라 국제수지통계 편제방식이 올해부터 IMF의 2010년 개정판 국제수지매뉴얼(BPM6)을 따라 개편되면서 우리기업의 생산의 세계화가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확연해졌다.
가령 국내기업이 1백만 달러 가치의 원재료를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베트남의 가공업자에게 가공임 40만 달러를 주고 가공을 의뢰한 후 완제품을 2백만 달러에 수출하는 가공무역을 보면, 종전의 통계편제방식으로는 1백 40만 달러를 우리나라의 베트남에 대한 수입, 가공임 40만 달러는 우리나라의 베트남에 대한 서비스 지출로 계상되고 2백만 달러어치 완제품은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수출로 잡혔다.
하지만 개편된 편제방식에서는 가공임 40만 달러 부분은 그대로 계상되지만 제품의 수출입은 소유권이 이전되는 시점에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완제품 수출 2백만 달러가 계상되도록 변경되었다. 이러한 통계체제 변경으로 가공무역관련 흑자가 2013년의 경우 73억 달러만큼 추가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 기업이 모기업에 배당을 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미배분수익을 재투자수익이라고 한다. 기존 편제방식에서는 자금이동이 없기 때문에 국제수지 통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편제방식에서는 실제로 배당되지 않아도 배당을 받아서 직접투자를 한 것으로 의제하여 처리하도록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2013년의 경우 재투자수익을 반영하면서 경상수지가 35억 달러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가공무역 반영분 73억 달러 및 재투자수익 반영분 35억 달러를 합하면 2013년 경상수지 편제방식 변경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확대분 92억 달러가 대부분 설명되는데 이 두 항목은 모두 우리 기업의 세계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 기업생산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방향
최근 경상수지 흑자 지속에는 국제원자재 가격 안정 및 선진국 경제의 회복에 따른 수출의 점진적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요인 이외에 민간소비 및 설비투자 등 내수의 부진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요인도 상당한 작용을 하였다. 특히 최근 내수부진은 경기순환적인 요인뿐 아니라 가계부채, 고령화, 생산 세계화라는 구조적인 요인의 영향도 컸다.
특히 최근의 국제수지통계 개편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화가 경상수지 흑자 확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투자 등 내수의 부진을 타개하려면 생산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의 세계화 자체를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전체 생산과정 중에서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도록 친투자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생산이 세계화된 상황에서 기업의 생산활동 중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부문을 유치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신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세금인하 등 직접적인 금전보조가 투자유치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령화, 복지, 통일 등과 관련하여 향후 우리나라의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이 큰 가운데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제약을 고려하면 조세부담 감축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공공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는 과감하고 효율적인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부분이 불황형 흑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경상수지와 금융계정 추이. 금융계정 가운데 준비자산 증감은 제외한 것이며 증권투자계정의 경우 외국인의 국내 투자와 내국인의 해외 투자를 함께 계산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