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혜심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동아시아재단에 기고한 글 전체를 소개한다. 통일을 대비한다는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평소 우리의 삶의 자세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만한 점을 많이 제공해 준다고 생각해 소개한다. 이 글의 출처는 동아시아재단이다.)
연변(延邊)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교차지점인 지린성(吉林省) 동부에 위치한 조선족 자치주다. 그런데 연변은 한국의 일상에서 노동인력과 관련하여 일반명사처럼 사용되는 관념적 지명이기도 하다. 구인업체에 문의를 하면 “찾으시는 분이 연변아줌마예요 아니면 한국인예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마치 대한민국에 두 종류의 인적 구성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뚜렷한 임금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연변 출신’ 노동 인력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도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다. 도심을 벗어난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주변의 식당 등에서 늘 만나게 되는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조선족’ 이라고 불리는 ‘동포’ 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성은 많은 문제를 낳게 되는데, 그 근저에는 마치 내부 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와 흡사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내부 식민주의는 상이한 국가 사이에 작동하는 규범적(normal) 식민주의와는 다르게 국경 안에서 일어나는 식민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이탈리아의 남북간 격차를 지배적 중심과 종속적 주변으로 해석한 이래 독립 후 남미 국가들에서 유럽화된 지배 집단과 토착 집단과의 관계가 내부 식민주의로 풀이되었다. 비단 제3세계만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웨일즈를 합병하며 이루어진 영국의 역사에서도 내부 식민지론은 지역 간 차별을 설명하는 틀로 동원되었다. 한국에서는 군부독재 시절 전라도의 지역차별을 내부 식민주의로 해석한 연구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통일 이후 남북한의 관계가 내부 식민주의적 양상을 띨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에 대한 차별은 국경 내부가 아니라 탈영토적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족의 궁극적 귀속지점이 중국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혼란이 그렇다.
조선인이 중국 북동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시점은 1870년대로, 재해와 흉년 그리고 탐관오리의 수탈을 피해 떠난 일종의 디아스포라였다. 초기의‘개척형’ 이민은 일제의 식민 상황으로 인해 가속화 되었고 간도는 항일투쟁의 ‘정치적 진지’ 로서의 성격을 띠기도 했다. 이후 조선족은 연변지역에서 수 세대에 걸쳐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거의 완전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조선족이 자치주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중국 정부가 항일 운동과 국공 내전에서 조선족이 기여한 공로를 역사적 채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사성 위에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이라는 국민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함께 지닌 이중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 이중 정체성은 때때로 그들을 ‘선택의 딜레마’ 에 놓이게 하였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조선족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과 같은 정치적 풍랑 속에서 ‘지역 민족주의’ 로 인해 낙인 찍혔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남북 분단 이후 오랫동안 적대국의 공민으로 취급받기도 했던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친지방문의 형태로 한국에 입국하기 시작한 조선족은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이후 폭발적으로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한국으로의 이주와 체류 과정에서 조선족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를 경험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조선족이 동포라는 점을 고려하여 입국과 체류에서 특혜를 제공했지만 1999년 재외동포법에서 조선족을 배제해 버렸다. 많은 반발 끝에 개정된 2004년 법에서 조선족을 혜택 대상에 포함시켰고, 2007년부터는 연고가 없는 동포에게도 최장 5년까지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하여 취업할 수 있게 하는 ‘방문취업제’ 를 실시하여 조선족의 수가 급증하였다. 2012년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수는 전체 외국인 주민의 40%가 넘는 57만여 명에 달한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할 경우 60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이 같은 통계에서 주목할 점은 조선족을 ‘외국인 주민’ 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족을 동포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일상적 수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재미교포나 재일교포를 ‘교포’ 로 부르는 반면 유달리 그들은 ‘재중교포’ 가 아닌 ‘조선족’ 으로 부른다. 한국 땅에서 그들은 이른바 3D업종에서 최하층 단순노동자로 일하면서 임금 체불과 차별 대우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한국을 ‘모국’ 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차별과 멸시를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펼쳐지고 있다. 이미 88개국 이상으로 진출한 조선족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한인들의 커뮤니티로, 먼 땅에서도 여전히 한국 교포들에게 고용된 ‘연변아줌마’ 로서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별과 멸시를 경험한다는 보고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족의 대표적 출신지인 연변은 마치 한국 영토의 일부처럼, 한국과 해외 한인 커뮤니티에 단순노동자를 공급하는 거대한 인력수급원이라는 이미지를 띠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미디어가 연변과 조선족의 이미지를 갈수록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에 개봉된 <댄서의 순정> 은 한국 내 조선족을 고단한 일상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황해(2010)> 에서부터 연변과 조선족은 끔찍한 이미지로 변질되었다. <황해> 는 빚에 쪼들린 연변 조선족이 살인청부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에 들어오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중국과 한국의 중간 지대인 황해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특히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인물은 ‘면가’ 라는 조선족 폭력배 두목으로, 도끼와 소뼈를 양손에 든 야성과 살육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2013년 개봉한 <신세계> 에서도 조선족은 뒤틀린 이미지로 나타난다. 경찰의 잠입수사를 다룬 이 영화에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범죄를 저지르는 폭력 조직의 수장은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해 ‘연변 거지’ 를 불러들인다. 이 ‘연변 거지’ 들은 무시무시한 폭력을 휘두르는 전문 킬러지만 한국의 세련된 문화를 선망하며 자신들이 초라하고 촌스럽게 보일까봐 전전긍긍한다. 보편화된 서구적 근대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내부 식민주의의 전반적 단계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화 <황해> 는 이후 공영 방송인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2013년부터 무려 1년 동안 매주 방영되었다. 어눌한 조선족 특유의 말투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연변 조선족 캐릭터는 청부살인과 금융사기 등 한국에서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되는 공간으로써의 연변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미지는 ‘연변 흑사파’ 와 같은 조선족 조직 폭력배의 서울 진출에 대한 보도들과 더불어 더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들게 된다. 또한 조선족의 밀집 거주지인 가리봉동 등을 취재하는 르포 기사들은 그 곳의 ‘이방성’ 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시금 조선족을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인종처럼 그려내곤 하는데, ‘한국 내 연변’ 인 그 곳은 한국이 이미 극복한 낙후된 과거를 비춰낸다.
한국에서의 조선족 문제는 중앙과 주변, 그리고 지배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경제적 착취와 문화적 갈등을 보여주는 내부 식민주의의 단면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덕적 붕괴나 자본주의의 모순과 같은 어두운 현실을 특정 지역에 투사하여 그 곳을 근원적인 공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통일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반드시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인데, 남북 주민의 통합이라는 큰 과제와 직결된 일종의 선행 학습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 동안 세계 도처에 퍼져있는 한민족을 통합하기 위한 논리로서 민족의 동질성을 내세워왔다. 이제 한 핏줄이라는 정서에 근거한 민족 내셔널리즘(ethnonationalism)을 비단 수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책적, 문화적 측면에서 좀 더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먼 곳으로 이주한 교포에 대한 포섭적 제스추어만큼이나 이 땅에서 일하는 ‘동포’ 인 조선족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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