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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한국의 현재 통화정책과 관련된 세가지 쟁점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주간금융경제동향 제5권 제17호』에 포함된 글을 소개한다. 길이를  조정하느라 중간에 생략한 부분들이 있다. 보고서 전문은 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요약)
지난해 하반기부터 네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된 이래,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불안 우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유출과 국내 금리 상승 가능성, 통화정책의 유효성 저하 가능성 등이 확장적 통화정책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둘러싼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호황기의 자산가격 상승을 수반하는 레버리지 확대와는 구별되어야 하며,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대외여건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통화정책이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미래 금리에 대한 기대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경제의 회복세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재정과 통화정책 양 측면에서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통화정책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네 차례의 금리인하로 인해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1.5% 수준으로 낮아졌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초저금리 정책의 유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타당성을 둘러싼 세 가지 쟁점을 살펴봄으로써 바람직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
해보고자 한다.

■ 가계부채 증가가 금융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최근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금융불안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가계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는 주택가격의 상승 기대에 따른 투기적 수요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우리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주택가격의 상승 기대가 약화됨에 따라 우리 주택시장에 고유한 전세제도가 위축되면서 월세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인간의 사적 금융인 전세금이라는 부채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제도권 금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용도가 기존의 고금리 대출의 상환이라면 이는 가계의 부채부담이 그만큼 완화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의 개선을 의미한다. 또한 주택담보대출의 일부가 생계비 등으로 전용된다는 것은 불황의 심각성과 그에 따른 가계의 소득 및 소비여건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즉 주택담보대출이 주택구입 이외의 용도로 활용되는 사례들은, 금융불안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부채구조의 변화 또는 현재 불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최근에도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등 부채의 증가세가 소득의 증가세를 상회하고 있다.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 자체를 바람직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불황기의 부채 증가가 호황기의 부채 증가와 동일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호황기의 부채 증가가 과도한 낙관을 배경으로 자산가격의 상승을 수반하면서 레버리지 확대라는 형태로 나타날 때에는 향후의 금융불안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적절한 긴축이나 규제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 또는 불황을 배경으로 증가하는 부채에 대해 동일한 긴축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적절한 수준의 미시적인 규제와 감독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불황기의 부채 증가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방향은 긴축이 아니라 확장을 통한 부채부담의 경감, 그리고 소득증가를 비롯한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의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유출 및 환율상승 우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일정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양국 간의 금리차가 자본 유출입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라는 아니라는 점이 우선 지적될 필요가 있다. 과거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중반에도 미국의 정책금리가 올라가는 와중에 우리 기준금리가 반대로 내려가는 시기가 있었고 이른바 한미간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이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이러한 걱정이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물론 한미간 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2000년대의 경험은 비교적 단기적인 현상에 불과했고, 결국 중장기적인 흐름을 보면 우리 금리가 미국 금리의 움직임에 동조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은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미국 양적완화의 테이퍼링 가능성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계 자금은 점진적으로 유출되었지만 유럽계 자금 및 신흥국의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등의 원화채권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경제의 상대적으로 건실한 기초여건과 위상 제고 등으로 인해 원화가 준안전자산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게다가 금통위 내부에서도 논의되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가 기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양국 간의 금리차 변동에 따라 자본유출이 큰 폭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자본유출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원화가 큰 폭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 또한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2008년 하반기에 환율 급등을 야기했던 금융회사들의 단기외채 또한 이후 우리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거시건전성 감독 등에 힘입어 현재는 안정적인 수준이다.

단기간에 걸친 과도한 환율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변동환율제의 가장 큰 장점은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어느정도 확보해준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나라별로 경제여건의 차이에 따라 통화정책의 기조가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자본흐름에 변화가 발생하면서 환율이 변동하는 것은, 그 변동폭이 너무 과도하지 않은 한 변동환율제의 자연스런 작동 과정이다. 게다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상황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원화 약세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기대와 예상되는 효과에 대응하는 우리 통화당국의 모호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통화정책의 관건

전통적으로 경제이론에서 통화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논의되어 왔다. 1930년대에 케인즈가 제기한 이래 한동안 잊혀졌던 유동성 함정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간의 불황에 처하면서 다시 부활하였다. 이후 진행된 학계의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유동성 함정이 발생하는 원인은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련된다.

예를 들면 지금 금리를 내리더라도 현재의 금리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어서 조만간 정상화될 것으로 경제주체들이 예상한다면 금리 인하는 수요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금리 인하가 수요 증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의 지속성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금리 수준뿐만 아니라 미래의 금리 수준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요컨대 통화정책의 핵심은 미래 금리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관리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된 네 차례의 금리인하 과정에서 금통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경제주체들의 미래 금리에 대한 일관된 기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저물가의 원인으로 공급측 요인을 지목하면서 수요측의 물가상승압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주장했고, 끊임없이 가계부채의 증가라는 부작용을 우려했으며,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라 우리 (시장)금리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이에 따라 경제주체들은 저금리 기조의 장기지속 가능성에 대해 신뢰할 수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정책당국은 미래의 금리경로에 대해 혼란스럽고 모순된 신호를 전달하는 것에 그쳤다.

예를 들면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변경은 우리의 영향권 밖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당국은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대응방향과 정책기조에 대한 명료하고도 일관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금리 인하라는 확장적 통화정책의 효과를 정책당국이 스스로 제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통화정책 당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화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충분한 독립성이 보장되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으며, 그 독립성이 단지 정부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런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는 정책 결정의 주체와 결정의 배경, 향후 예상되는 정책경로 등이 분명해져야 금융시장과 경제주체들이 일관되고 명료한 기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반응을 통해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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