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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 경제학의 거두 케인스와 하이에크, 그들의 주장과 걱정

내가 살면서 아직도 "주의"가 붙은 용어의 개념을 외우고 나아가 다른 "주의"와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은 잘 못한다. 나는 어려서 예술에 높은 친근감을 갖고 있었고 그런 배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주의"가 붙은 용어들과 친해지려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해 결국 나는 예술에 소질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작품은 이래서 좋다, 저 작품은 이래서 좀 못하다, 혹은 이 두 사람은 이런 저런 면에서 서로 다르다고 말하라면 얼마든지 하겠다. 그런데 '이 작가는 A주의적 개념에 충실한 반면 저 작가는 B주의적 아집이 강해서 문제다'라는 식으로 멋진 말을 나는 할 줄 모른다. 이 치명적 결함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 담당 기자를 오래 해 오고 있지만 아직도 C주의와 D주의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차이를 간단히 말하라면 정말 자신이 없다. 

그런 내게 있어 Nicholas Wapshott이 지은 『Keynes Hayek』(Publisher: W. W. Norton & Company; September 10, 2012; ISBN-10: 0393343634; ISBN-13: 978-0393343632; 400 pages)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할 정도로 큰 감명을 준 책이다. 이 책은 케인스와 하이에크라는 두 경제학자 사이의 경제를 보는 시각 차이와 둘 사이의 직ㆍ간접적 논리 다툼을 소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생각은 없다. 이 책에 대한 거의 완벽한 소개의 글을 쓴 블로거들이 이미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네이버 블로그 "부엉이 소굴(Owl's nest)"을 운영 하는 필명 Dr OWL님의 글을 추천한다 (☞ 블로그 글은 여기를 클릭). Dr OWL님의 총평처럼 나도 이 책을 하반기 최고의 책으로 인정한다.

경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 케인스는 실업 해소를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하이에크는 정부의 개입은 가격 기능에 의한 경제의 자율적 작동을 왜곡하며 나아가 개인의 자유까지도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책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이 책이 대부분 두 사람의 경제에 대한 관점 차이를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이 두 사람의 견해가 영국과 미국이라는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한 양대 패권국 정책에 직ㆍ간접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수상에 올라 대대적 개혁 정책을 편 마거릿)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시절 하이에크의 'The Road to Serfdom'을 읽었고, 1974년에는 하이에크의 그 책이 새삼 시의적절하다고 느꼈다. 보수당의 당권을 장악한 직후, 대처는 보수당 내에서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 있는 연구 조직과 회동하게 된 어느 날 가방 속에서 하이에크의 'The Constitution of Liberty'를 꺼내 탁자에 내려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신념은 여기에 들어 있다!" (258p)
1979년 대처가 영국 수상에 선출된 날은 하이에크의 80회 생일이었다. 하이에크는 대처에게 "귀하의 당선이 내게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선물을 주었다"고 축하의 글을 보냈으며, 대처는 답장에서 "지난 몇년간 귀하에게서 그토록 많은 지식을 얻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제 대국 지도자와 당대 최고의 학자 사이에 진솔한 서한이 오고 갔다는 점도 감명깊다.

한편, 하이에크에게는 조국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전쟁 패배 이후 횡행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케인스식 정책으로 인한 순기능보다 그 정책이 과도할 경우 나타나게 될 부작용을 더 우려하게 된 계기가 됐다. 반면 케인스는 승전국 영국에서 줄곧 공부했고 부작용보다는 순기능에 더욱 치중했던 것이 그의 톱다운 정책 논리에 큰 기여를 했다. 이렇듯 위대한 이론도 사실 개인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엄연히 현대 자본주의 이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이론가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엉뚱한 교훈을 얻게 됐다. 어느 이론도 전지전능한 이론은 없다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 세계 경제 정책을 휩쓴 케인스의 이론이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이론 자체가 완벽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론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현실에 옮긴 정치인들의 역량과 시대적 상황이 없었다면 이론은 이론에 그쳤을 것이다.

또한 하이에크식 이론이 득세한 1970년대 말 이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앞선 정치인들이 케인스식 정책의 부작용을 최대한 예방하려 노력하고 성공했다면 하이에크 이론은 실제 정책에 채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케인스든 하이에크든 어느 한 쪽 정책 노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 수는 없다.

결국 아무리 위대한 이론도 어느 상황이든 어느 정부가 채택하든 모두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이 Keynes와 Hayek 사이에 "and"를 넣지 않은 것도 결국 그런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and"를 넣지 않음으로서 "Keynes Hayek"는 두 사람의 성씨로 이루어진 한 사람의 full name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나는 시간이 허락하고 기본적인 언어 능력이 뒷받침된다면 원어로 책을 볼 것을 언제나 권장한다. 한국 내 번역 수준이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할 정도로 많은 것이 첨가되는 것이다. 회화 작품을 예로 들면 원작과 사진으로 찍은 것과의 차이 만큼이나 다르다고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하이에크가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말도 소개하고 싶다. 이 강연에서 하이에크는 무언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 관련 블로그 글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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