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지인의 글을 공유한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라디오 뉴스에서 어제 발표된 지표를 다루는 걸 듣다보니, 중상주의적 관점이 다시 거슬렸다.
불황형 흑자 운운하며, 국가를 기업에 비교해서 물건을 예전보다 덜 팔았는데 씀씀이를 더 줄여서 흑자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의 경쟁력을 올려서 어떻게 수출을 더 잘할지 운운하는데 맛이 갔다. 그런 이야기는 대외의 유효 수요가 유지되고 있으나, 우리 나라의 특정 산업이 경쟁력 부족으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할 소리지 지금 유효 수요 부족으로 세계적 recession 여부가 다루어지는데 할 소리냐.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기업의 영업 이익이나 가계의 저축처럼 국가의 경상수지를 관념하는 것은 이미 200년 전에 끝나버린 중상주의이다.
불황형 흑자라고 부르는 글을 보면 일단 읽을 필요가 없는데, 불황이면 흑자건 적자건 크게 중요하지 않고, 그냥 불황이다. (물론 외환유동성이라는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경상수지가 흑자인지 적자인지는 살펴볼 필요는 있으나, 방송/신문에서 하는 이야기가 그런 의도는 아니다.)
호황형 흑자, 호황형 적자, 불황형 흑자, 불황형 적자로 2 x 2 매트릭스로 나누어서, 경상수지 흑자/적자를 어찌 감히 호황과 불황과 같은 위상으로 올린단 말인가. 호황형 적자라는 게 있으면 그게 불황형 흑자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기 때문에 2x 2가 아니라 단일 기준이다.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미국은 주구장창 경상수지 적자였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도 (과잉투자에 의한) 경상수지 적자였다. 수지 문제는 recession, depression, deflation 문제에 비하면.... 동레벨이 아니다.
그리하여, 불황형 흑자 같은 소리하지 말고, 그래도 그나마 흑자네..라고 정신적 위로를 받지말고, 흑자건 적자건 그냥 '불황'을 어떻게 다룰지 이야기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황에는 중앙은행의 완화된 통화정책 등 금융 정책과 정부의 확장된 지출인 재정 정책이라는 두 가지 확장 정책을 무기로 악셀을 밟고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퍼부어줘야 하고, 호황에는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으로 통화(신용)을 조이고, 정부는 재정 긴축을 하여 실물을 조이는 브레이크를 밟아주어야 한다.
불황의 정책이란 아주 디테일로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인데, 이걸 조금 더 공통점을 모으면 딱 하나다.
세 경제 주체 (가계, 기업, 정부) 가운데, 가계와 기업에게 더 빚을 내라는 게 바로 금융 정책이고 (빚을 더 싸게 낼 수 있게 해준다), 정부가 더 빚을 내라는 게 재정 정책이다. 그러니, 불황에 부채 운운하는 소리를 붙이는 건 내 생각에는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소리다.
거시 경제학에서 불황에 대한 정책은 그저 하나 밖에 없다. 빚으로(=미래를 땡겨서)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불꽃을 꺼트린 게 일본인데, 불씨를 다시 살리려고 찔끔찔끔 붓다가 정부 재정도 망가지고 불씨도 못 살려 20년 디플레를 겪다가 그나마 아베가 들어오면서 아베-구로다 2인조가 화끈하게 퍼붓고는 있다만, 다시 재점화될지 아니면 또 재정건전성만 날릴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 불꽃이 죽으면 다시 켜는데 너무 대가가 크기 때문이다. (다시 켜지기나 할까? 2차 대전이 없었다면, 불이 다시 켜졌을까....?)
그러니, 불황형 흑자를 다룰 게 아니라 '불황'을 다루어야 하고, 불황으로 crisis가 왔을 때 부채는 치명적이라 그걸 선제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고 경고하는 건 오케이지만, 이미 불황의 상황에서 그 대책인 빚을 늘리는 것에 대해 부채 규모 운운하는 것 자체는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시에 빚을 관리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불황에 무지하게 빚을 내기 위해서다. 그러니, 제발 recession의 기운이 스물스물 있을 때 재정건전성 운운하는 이야기는 집어 넣어주길 바란다. 내 평소에 재정건전성을 중시하지만, 그건 바로 recession에서 마구 퍼부으려면, 평소에 재정건전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recession에서 재정건전성 지키라는 소리가 아니다.
불황의 대책은 오로지 빚을 늘리는 것 뿐이다. 세 경제 주체 가운데 누가 늘릴지, 내 빚이 아니라 혹시 어메리카나 차이나가 늘린 빚에 올라탈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빚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터졌을 때처럼 전세계 재무 장관들이 모여서, 전세계를 잇는 해저 터널이라도 뚫자는 재정 정책이라도 의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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