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왜 행복하지 않을까?
- 글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60대 은퇴자 A씨와 B씨가 있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큰 걱정 없어 보이는 그들을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막상 자신들은 행복하지 않으며, 힘들고 외롭다고 하소연이다.
A씨는 겉으로는 남한테 무관심하고 냉정한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한다.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인지 칭찬의 ‘인’이 박힌 것 같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은퇴와 함께 모든 일과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은 그를 한결 같이 칭찬해 주고 인정해줄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자존심이 강한 A씨는 친구들의 농담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는다. 그뿐인가. 은퇴한 후부터는 집에서 아내한테 매일 야단이나 맞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고 재미가 하나도 없다.
A씨는 행복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의 자존감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얼핏 보면 자기애가 넘치는 것 같지만, 실상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진정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B씨는 A씨와 정반대 타입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고, 만인의 필요에 항상 열려 있다. 그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않는(B씨 자신은 거절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를 사람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착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고, 희생적이라고. 전에 직장에서도 그랬지만, 은퇴한 후에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그는 하소연한다. 자기 딴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고, 날이 갈수록 힘들고 피곤하고 우울하다고. 단 일주일만이라도 아무도 없는 섬 같은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고 말한다.
젊을 때는 누군가의 칭찬을 통해서 나의 가치와 개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자존감도 갖추고 키우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칭찬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나의 자존감의 원천을 그 누군가로부터 찾으려 한다면? 그건 심각하다.
자신을 사랑해야 진정 행복하다
나이 들어 그 모든 것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나의 에너지는 항상 밖을 향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남을 의식하고 끝없이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 뭐 그렇게 해서라도 내 자존감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야 연예인이 된 셈치고, 그렇게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 과연 누가 나를 주야장천, 사랑해 주겠는가?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그 누가 쉬지 않고 나를 칭찬하고 응원해 주겠는가? 누가 나를 끊임없이 행복하게 해주겠는가?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로저스(C. Rogers)는 말년에 남긴 글에서, 그동안 다른 사람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을 더 잘해왔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그동안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몸도 약해지면서 스스로를 돌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이렇게 자신을 돌보게 되면서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매우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고,
비록 아내가 매우 아프지만,
내가 내 삶을 사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저스가 말년에 남긴 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것은 나이 들수록 자존감의 중심을 내 안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이 들수록 나 스스로 나의 가치와 개성을 인정해야 한다. 나 자신이 나를 아끼고 위해야 한다. 나 자신이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은퇴한 당신, 당신의 자존감을 밖에서, 외부에서, 타인에게서 찾으려 하지 마시라. 자존감의 중심은 당신 안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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